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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틀랜타 바인 시티에 있는 월마트는 요즘 매장에 경찰들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새로 만들고 있다. 지역 경찰관들이 마트에서 휴대폰이나 바디캠을 충전하고 회의도 할 수 있게 해 절도 예방 효과를 노렸다. 해당 매장은 지난해 절도범이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고 불을 내 폐쇄됐고 재개장을 준비 중이다.

안드레 디킨스 애틀랜타 시장은 지역 신문에 “도둑이 물건을 훔치려고 월마트에 들어가려다 경찰들이 드나드는 것을 보고 ‘아, 오늘은 안 되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아마존이나 이베이에서 중고로 팔기 쉬운 화장품이나 미용용품이 절도의 주 품목이 되고 있다.

‘부자 나라’ 미국에서 도둑들이 판치고 있다. 팬데믹이 끝난 후 미국 소매업체들의 요즘 풍경이다. 배고파서 빵 하나 훔치는 장발장 얘기가 아니다. 요즘 소매 절도는 훔친 물건을 온라인에서 되팔아 현금화하는 경우가 많다. 월마트와 타깃, 홈디포 같은 유통 체인은 도둑질이 기승을 부리자 실적 악화 우려로 절도 예방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진열대에 자물쇠를 걸어잠그는 것을 넘어 이제 매장에 ‘미니 경찰서’까지 만드는 대책까지 나온 것이다.

◇진열대에 자물쇠, 나갈 때는 영수증 검사

미국 워싱턴과 버지니아, 메릴랜드 일대 소매품 체인인 자이언트는 워싱턴 전체 매장에서 콜게이트 치약, 타이드 세제, 애드빌 진통제 같은 대표 상품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자주 도둑질 당하는 품목을 아예 팔지 않기로 한 것이다. 매장에 들른 고객은 출구를 나가려면 영수증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일부 유통 체인은 절도가 빈번히 일어나는 지역에서 진열대를 잠가두고, 물건을 사려면 직원을 불러 꺼내달라고 하게끔 한다. 유통 체인 월그린은 시카고 도심에서 반창고나 배터리, 과자 같은 품목을 진열대에 빼놓지 않고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미국소매협회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미국 소매업체가 절도로 입은 피해액은 1조달러에 달한다. 이러한 절도 피해가 기업 실적 악화의 주범으로 지목받기도 한다. ‘다이소’처럼 저가품 판매 체인인 달러트리는 실제로 절도로 인해 경영 악화가 나타났다. 이 회사의 올 2분기 매출총이익률은 전년 동기 33%에서 올해 30%로 떨어졌다. 리처드 드라일링 달러트리 최고경영자(CEO)는 이를 두고 “절도가 그 원인 중 하나”라고 했다.

지난달 24일 도둑질을 막기 위해 진열대를 잠가놓은 미국 뉴욕의 한 점포. /AFP 연합뉴스

스포츠용품 소매업체 딕스스포팅굿즈도 올 2분기 매출이 3.6% 증가했지만 이익은 23% 감소했다고 밝히며, 수익 부진 주원인으로 절도범 증가를 들었다. 실적 발표 후 이 회사 주가는 24% 이상 폭락했다. 타깃은 작년 절도로 연간 4억 달러에 달하는 타격을 입었다고 밝혔고, 나이키, 메이시백화점 등은 절도 때문에 순익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도둑질에도 트렌드 있다

미국 소매업체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물품은 뭘까? 바로 빨래 세제다. 개인이 손쉽게 아마존이나 이베이에서 중고 거래로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알레르기약이나 면도날, 화장품처럼 중고거래 수요가 많은 품목이 절도의 주 타깃이 되고 있다. 온라인 거래 시대가 ‘빵을 훔치는 좀도둑’을 ‘세제를 훔쳐 현금을 만드는 절도범’으로 이끈 것이다.

'미국판 다이소' 달러트리는 절도로 인해 올 2분기 매출 총이익률이 떨어졌다. /연합뉴스

이처럼 개인 온라인 거래가 활발해져 훔친 물건을 현금화하기 쉬운 점도 미국에서 소매 절도가 늘어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밖에 팬데믹을 거치며 사상 최악 수준으로 치솟은 물가, 점원의 눈을 피하기 좋은 셀프계산대 확산 등도 소매 절도 증가를 부추겼다. 지난 6월 미국소매협회 설문에 따르면 소비자 53%가 팬데믹 이후 지역 사회에서 절도 범죄가 늘었다고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셀프계산대를 이용한 절도 수법을 가리키는 ‘바나나 트릭’이라는 말도 생겼다. 바나나처럼 저렴한 농산물의 바코드를 찍고 실제로는 무게가 비슷한 더 비싼 품목을 가져간다는 뜻이다.

◇결국 소비자들이 피해

절도 범죄로 인한 피해는 소매업체에 그치지 않고 결국 소비자에 전가된다. 생리용품을 고를 때도 뒤에서 지켜보는 직원의 따가운 감시를 받아야 하고, 잠긴 진열대를 열어달라고 벨을 누를 때마다 직원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홀푸드, 월그린, 월마트는 도난이 끊이지 않자 포틀랜드,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의 주요 점포를 폐쇄했거나 폐쇄하기로 했다. 대형 마트가 사라지면 지역 주민들 불편은 가중되고, 일자리도 줄어든다.

직접 물건을 골라가며 쇼핑하는 재미도 줄어든다. 소비심리학자 안젤라 Y.리는 “점원이 손님이 도둑질을 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분위기는 손님에게 마치 인종 차별을 당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며 “그 후에는 그 매장에서 쇼핑할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했다.

지난 2021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유니언스퀘어 루이비통 매장 앞에 있는 경찰차. /AP연합뉴스

안그래도 치솟은 물가에 추가적 가격 인상 부담까지 소비자가 질 수 있다. 작년 말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는 CNBC 인터뷰에서 “절도가 잠잠해지지 않으면 가격을 올리거나 일부 점포 문을 닫을 것”이라고 했다. 파멜라 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소매 절도로 마트뿐 아니라 우리 모두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절도 범죄 증가가) 소비자에게 더 높은 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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