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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부 간쑤성의 란저우대 영문과를 나온 제시 후(22)는 졸업식 때 특이한 사진을 찍었다. 잔디밭에 드러누워 학사모를 얼굴에 올려놓은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제시가 이런 ‘사진 퍼포먼스’를 한 이유는 좌절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학원 입학을 노렸지만 실패한 뒤 5개 회사에 이력서를 보냈다. 하지만 모두 서류 탈락이었다. 제시는 워싱턴포스트에 “대학원 진학, 유학, 취업 등 너무 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압도당하는 느낌”이라며 “부담감을 표현하기 위해 드러누운 졸업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높은 청년 실업과 불투명한 미래로 좌절을 느끼는 중국 Z세대 사이에서 ‘탕핑(躺平)’이 유행하고 있다. 탕핑은 ‘납작하게 눕는다’는 뜻으로서 결혼, 취직을 포기한 채 무기력해진 상태를 말한다. 중국 젊은이들은 대학 캠퍼스나 길거리에서 드러누운 사진을 찍어 소셜 미디어에 띄우며 자포자기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젊은이들을 ‘탕핑족’ 또는 ‘탕핑 세대’라고 부른다.
탕핑에는 노력해도 꿈을 이루기 어렵다는 좌절과 청년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무관심한 정부를 향한 분노의 의미도 담겨 있다. 그래서 탕핑 세대는 한국의 ‘N포세대’,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엇비슷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에 자포자기
난징대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한 브렌다 루(21)는 졸업 가운을 입고 벤치에 앉아 책을 얼굴에 덮는 탕핑 사진을 찍었다. 그는 “팬데믹 3년 동안 기숙사에 갇혀 온라인 강의를 들은 친구들이 탈출구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올해 구직 상황은 특히나 암울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항저우시의 저장과학기술대에서 디지털미디어를 전공한 레인 수(22)도 학교 체육관 바닥에 드러누운 졸업사진을 찍었다. 취업에 실패한 좌절감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직장을 잡은 친구들도 월급을 350달러 정도만 받는다”며 “항저우 월세가 너무 비싸 (350달러로는) 살아갈 수 없다”고 했다.
탕핑족이 속출하는 건 중국의 극심한 취업난 때문이다. 지난 6월 중국 청년실업률은 21.3%로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8년 이래 최고치였다. 16.7%였던 작년 12월과 비교해 반년만에 5%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7월 이후로는 청년실업률을 아예 발표하지 않고 있는데,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더 이상 공개하지 않는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중국의 실제 청년 실업률은 정부 발표보다 더 높다는 주장도 나온다. 장단단(張丹丹) 베이징대 교수는 지난 3월 중국의 실제 청년 실업률이 정부가 발표한 19.7%의 두 배 이상인 46.5%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무력감에 시달리는 중국 Z세대
탕핑이 유행하는 이유가 단지 취업난뿐만이 아니라 기성 세대에 대한 총체적인 불만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회가 정체되면서 노력해도 밝은 미래를 얻을 수 없다는 상실감이나 관료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실망이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갖가지 통제가 유독 중국에서 긴 시간 동안 강도 높게 이어지면서 젊은이들의 분노가 쌓였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게다가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월급에 비해 과도한 업무량을 강요당한다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베이징에 사는 살 항(29)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직장에서 일할 때 상사가 설정한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해 일에 대한 의욕을 상실했고 최소한의 노력만 하게 됐다”고 말했다.
탕핑은 2021년 무렵부터 퍼지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바이란(摆烂)’이란 용어도 유행하고 있다. 농구 경기에서 나온 표현인 바이란은 ‘점수 격차가 너무 커서 패배가 확실한 팀이 어쩔 수 없이 경기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무력감을 느끼는 많은 청년들 사이에서 바이란이 유행하고 있다”고 했다.
◇ “농촌으로 가라” 정부 해법이 반발 키운다
중국 정부는 탕핑 세대의 고충을 해소해주기보다는 강압적으로 누르려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관영매체 인민망은 사설에서 “탕핑이나 바이란의 유행은 책임 면피 풍조”라며 “대학생들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지난 5월 대학생들에게 “’고생은 사서 해야 한다(自找吃苦)’는 정신을 가지라”고 했다.
대졸자에 걸맞은 일자리가 부족한 현상을 쉽게 해결하기 어렵자 중국 정부는 블루칼라 직종을 택하거나 농촌에서 취직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젊은층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불만의 강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 SCMP는 “농촌으로 가서 취직하라는 건 마오쩌둥 시대 때 하방(下放) 운동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류사오광 런민대 교수를 비롯한 중국 경제학자들은 최근 보고서를 내고 “구조적인 청년실업을 해결하지 못하면 (중국 사회에) 사회적, 정치적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 경제학자들은 법치를 통한 국민 권리 보장, 사유 재산권 보호 강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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