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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120세까지 살기’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냈다.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사람이 훨씬 오래 살 수 있어 근로 수명 연장부터 가족 구성 변화까지 광범위한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노화를 지연시키는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인간이 100세 넘어서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장수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커지고 있다. 저출산과 맞물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자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소비 시장이 축소될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각국 정부는 연금과 의료비 지출이 급증해 재정이 망가질까 봐 겁내고 있다. 그래서 ‘회색 쓰나미’ ‘인구학적 시한폭탄’ 같은 부정적 표현이 부쩍 자주 등장하고 있다.

미국에서 정부·기업에 고령화 트렌드와 관련한 조언을 하는 연구·컨설팅 회사 ‘더 수퍼 에이지(The Super Age)’의 창립자 브래들리 셔먼(46)은 고령 사회가 몰고 올 수 있는 부정적인 통념에 당당하게 반기를 들고 있는 인구 전문가다. 셔먼은 고령층을 ‘힘없고 무기력하며 부양받아야 할 집단’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고령자가 노동·소비 시장 주요 참여자가 되면 고령화는 위기가 아닌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령화에 대한 역발상을 주창하는 셈이다.

'더 수퍼 에이지' 창립자 브래들리 셔먼. /본인 제공

셔먼은 ‘더 수퍼 에이지’ 설립 전에는 3800여 만명을 회원으로 둔 단체인 ‘AARP(미국은퇴자협회)’에서 선임 어드바이저, 파트너십·협력 관계 담당 이사 등으로 14년간 일했다. 이곳에서 고령 근로자를 고용해 성과를 거둔 기업에 주는 ‘고령자 친화 기업 국제 대상’을 만들었다.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 이코노미스트지와 함께 세계 각국의 고령화 상황을 분석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세계경제포럼(WEF) 등에 고령자 지원과 관련한 자문을 했다. 셔먼은 현재 CVS헬스·다우존스·웰스파고 같은 미국 대기업 및 전략국제문제연구소·전미고령화위원회를 포함한 다양한 단체와 협력하고 있다.

모두가 고령화 사회가 가져올 암흑을 두려워하는 지금 “미래는 회색빛이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밝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셔먼을 화상으로 만났다. 최근 ‘슈퍼 에이지 이펙트’라는 책을 펴낸 셔먼은 “사람들은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예전보다 많이 기여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셔먼은 특히 “일정한 나이가 됐다고 은퇴하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며 인류 역사에서 최근의 개념”이라며 “더 오래 일하는 사회를 위해 고령자 친화적인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퍼 에이지’ 시대가 온다

셔먼의 회사 이름인 ‘수퍼 에이지’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를 뜻한다. 세계 65세 이상 인구는 작년 7억8000만명에서 2050년 16억명으로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같은 기간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10%에서 17%로 늘어난다. 이미 일본(29%)·이탈리아(24%)·독일(22%)·프랑스(21%)는 고령 인구 비율이 20%를 넘었고, 한국(18%)은 2025년, 미국(17%)은 2030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김성규

-많은 나라가 고령화로 인한 부작용을 걱정합니다.

“지금 부모에게 ‘당신의 부모 세대와 비슷하다고 느껴지느냐’고 물으면 모두 아니라고 답할 겁니다. 우리는 (예전 세대보다) 훨씬 젊다고 느끼고 더 건강해졌고 더 활동적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당신은 늙었으니 회사에서 나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 건강하고 활동적인데도 일터에서 쫓아내는 거죠.”

-이런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뜻인가요.

“맞습니다. 사람들이 더 오래 일하면 정부는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돈을 벌면 더 적극적인 소비자가 되기 때문에 당연히 기업에도 도움이 됩니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도 일하는 사람은 사회와 더 적극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건강한 경향이 있습니다. 아픈 사람이 줄어들어 의료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각국 정부는 고령화에 맞서 출산율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쏟아졌지만 인구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 2.1명에 도달한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인구가 계속 증가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따라붙습니다. 100년 전만 해도 세계 인구는 20억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80억명에 달합니다.”

셔먼은 출산율을 높이려 애쓰기보다는 전통적인 은퇴 연령을 넘긴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처럼 출산율이 매우 낮은 국가에선 새로운 현실로 빠르게 전환하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규

“은퇴가 오히려 비정상”

현재 고령층이 앞선 세대보다 젊고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는 속속 나오고 있다. 2020년 핀란드 유바스쿨라대 연구진이 1910~1914년 태어난 75~80세와 1938~1943년 출생한 75~80세의 신체 능력을 비교했더니, 후자가 악력·폐활량 등에서 5~47% 좋은 결과를 냈다. 또 노스웨스턴대 연구에 따르면 50세 창업가가 성공할 확률은 30세 창업가보다 1.8배 높았다. 미국에선 75세 이상 인구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2000년 5.3%에서 2020년 8.9%까지 증가했다.

셔먼은 “우리는 은퇴를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믿지만 나이가 들면 일터를 떠난다는 생각이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했다. 대부분 인류 역사에서 사람들은 더는 일할 수 없을 때까지 일했고, 은퇴라는 개념이 오히려 짧은 역사를 지닌 현대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20세기 서구에서 연금제도가 확립되면서 은퇴라는 ‘새로운 개념’이 퍼져 나갔다.

-나이가 들면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나요.

“일하는 방식이 달라질 뿐입니다. 당신이 대학에 다닐 때와 지금 일하는 방식이 달라졌듯 말이죠.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고령층은 오히려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도 있습니다.”

일러스트=김성규

-하지만 기업들은 보통 나이 든 직원을 꺼립니다.

“나이가 들수록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편견은 베이비붐 시기의 특수성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1950년만 해도 미국에선 65세 이상 남성 2명 중 1명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베이비붐으로 노동 시장에 젊은 인구가 갑자기 쏟아지면서 고용 비용이 저렴해졌죠. 그래서 기업들이 인건비가 높은 고령 인력을 해고할 기회를 얻어 실행에 옮겼을 뿐이지 늘 그래 왔던 건 아닙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건가요.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반세기 만에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그만큼 취업 기회가 많기 때문에 노동 시장 밖에 있던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당연히 고령 근로자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몸이 아프거나 그만 쉬고 싶어서 은퇴를 원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 만성질환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지긴 하지만 일을 하는데 반드시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한국에서도 조사에 따르면 고령층 10명 중 7명이 계속 일하기를 희망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들은 젊은 때만큼 (많이) 일하고 싶지는 않아 유연·시간제 근무를 선택할 수 있을 겁니다.”

셔먼은 “신체·정신적 문제로 일할 수 없거나 충분한 재정적 여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모든 사람이 지난 세대보다 훨씬 오래 일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며 “세제 혜택을 비롯해 기업이 더 많은 고령자를 고용하도록 유도하는 장려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래픽=김성규

“고령자 친화적인 일터를 만들어라”

고령 근로자가 증가하면서 작업 환경에도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BMW다. 지난 2007년 독일 딩골핑의 BMW 공장은 당시 39세이던 근로자 평균 나이가 2017년이면 47세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작업 환경을 바꾸기로 했다. 10년 후를 내다보고 바닥재·근로화 등을 나이 든 직원에 맞게끔 교체했다. 키에 맞춰 조절 가능한 작업대와 앉아서 일할 수 있는 특수 의자를 설치했고, 확대 렌즈로 작은 부품도 손쉽게 구별할 수 있게 했다. 셔먼은 “BMW가 이런 변화를 택한 건 고령자 친화적인 일터가 결국 기업 수익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BMW 같은 기업이 많은가요.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셰 같은 여러 독일 자동차 회사가 허리를 굽히지 않고 차량 아래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든 작업 의자, 작업자 어깨·팔에 무리가 덜 가도록 돕는 장치 등을 도입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젊은 근로자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반복적이고 위험한 동작을 덜하게 만들어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죠.”

-직원 연령대가 높아지면 회사 복지 제도도 바꿔야 할 것 같은데요.

“이미 고령 인재를 붙잡으려 폐경 휴가, 손자·녀 육아휴직 같은 새로운 복지 제도를 마련한 기업들이 등장했죠. 유연 근무제의 경우 고령층뿐 아니라 모든 연령대의 직원을 도울 수 있습니다. 젊은 직원과 나이 든 직원의 통합도 중요합니다. 나이가 다른 직원들 사이의 양방향 멘토링이 필요하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을 잘 통솔하는 관리자에 대한 추가 보상도 도움 될 수 있습니다.”

“50~74세가 소비 시장 주역”

셔먼은 소비 시장에선 ‘미들-플러스’ 세대를 주목하라고 했다. 나이로는 50~74세 정도다. 이들은 대체로 어떤 형태로든 일하고 있다. 건강이 조금 나빠졌을 수도 있지만 남에게 노쇠하고 무기력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싫어한다. AARP는 전 세계 50세 이상 인구 소비액이 2020년 35조달러에서 2050년 96조달러로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픽=김의균

-고령층이 젊은층보다 중요한 소비자로 부상할까요.

“앞으론 일하는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더 큰 소비 집단이 될 거라고 봅니다. 보통 은퇴하면 옷이나 외식보단 공과금 납부 같은 필수 항목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하게 되고 전반적으론 소비가 줄어들죠. 반대로 말하면 이들이 계속 일하게 되면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사실 요즘 젊은 세대는 급격한 주거비·교육비 상승, 임금 정체 등으로 소비를 많이 늘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기업이 젊은 소비자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일종의 문화이고요. 그렇게 하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입니다. 1946년 베이비붐이 일어나자 기업들은 청소년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전엔 돈을 버는 성인에게만 마케팅했다면 (인구 구성이 변하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죠. 그런데 이제는 베이비붐 세대가 반대로 (소비가 왕성한) 고령층이 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제품과 서비스의 주된 목표 세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다르게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세대를 포용하는 제품 만들어라”

셔먼은 단순히 고령층에게만 초점을 맞추기보단 ‘고령층을 포함한 다양한 소비자를 포함하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고객을 특정 연령대나 세대로 구분하기보다는 구매력이나 건강에 대한 관심도를 중심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통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예컨대 독서용 안경은 이전에는 노인들만 썼지만 요즘엔 컴퓨터·스마트폰에서 온종일 눈을 떼지 못하고 사는 젊은 층도 찾고 있다.

셔먼은 애플워치 광고를 다양한 세대를 포용하는 마케팅 전략의 사례로 꼽았다. 산에서 자전거를 타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자 그의 애플워치가 이를 감지하고 응급서비스에 자동으로 연락한다는 내용이다. 쓰러진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연령대는 알 수 없다.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기능에 대한 메세지만을 담았다.

-고령층을 포용하는 마케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컨대 애플워치 같은 디지털 기기의 건강 정보 추적 기능은 40세 이상 소비자를 염두에 두고 설계됐습니다. 고령층 친화적인 디자인을 고려한 가구·인테리어 회사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본 유통업체 이온은 매장 3개를 고령자 친화 매장으로 고쳤습니다. 1인용으로 포장한 제품을 늘려 고령층을 포함한 혼자 사는 소비자 모두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죠. 이런 회사 목록은 점점 길어지는 중입니다.”

셔먼은 “이제 기업들은 폭넓은 고객층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유연한 전략을 도출해야 한다”며 “고령층을 타깃으로 한다면 광고에 노인 모델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40세가 지나면 우리는 자신을 실제 나이보다 20% 정도 젊게 보기 시작하고, 그 때문에 80세처럼 보이는 모델을 등장시켜도 막상 그 나이대 소비자에겐 먹히지 않을 수 있다”며 “그래서 (세대가 아닌) 제품의 효능을 마케팅하는 게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브래들리 셔먼(46)은

1996~2001년 아메리칸대 커뮤니케이션·정부학 학사, 응용정치학 석사

2000~2004년 리딩에이지 프로젝트 매니저

2004~2009년 미국은퇴자협회 매니저

2009~2018년 미국은퇴자협회 선임 어드바이저

2019년~ 더 수퍼 에이지 창립자 겸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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