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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국인이 사랑하는 맥주 버드라이트가 20여 년 만에 미국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잃었다. 버드라이트를 밀어내고 왕좌에 오른 맥주는 멕시코의 ‘모델로 에스페셜’. 지난 5월 소매점 점유율 8.6%를 기록하며 버드라이트(7.6%)를 제쳤고, 이후 점점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역전의 계기는 버드라이트가 트랜스젠더에게 우호적인 마케팅을 하자 불만이 커진 보수층의 불매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 이전부터 히스패닉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모델로 인기가 꾸준히 오르고 있어 점유율 역전은 시간문제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모델로 판매량은 2013년 이후 10년 사이 3배 이상으로 늘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모델로의 빠른 성장은 미국에 히스패닉 인구가 많아진 동시에, 이런 변화가 미국 문화에 점점 스며들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미국 경제에서 라틴계 파워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라틴계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데다, 소득 상승으로 구매력도 커지자 기업들이 라틴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라틴계는 중남미 출신을, 히스패닉은 스페인어권 출신을 뜻하지만 서로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히스패닉 인구는 1980년 1480만명에서 재작년 6250만명까지 늘었고,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7%에서 19%로 급증했다. 라틴계가 소비 시장에 차지하는 힘과 이들을 공략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을 WEEKLY BIZ가 살펴봤다.
미 라틴계 경제력, 세계 5위
지난달 미국 비영리 단체 라틴계기부자협의회(LDC)는 웰스파고·애리조나주립대와 함께 2021년 기준으로 미국 내 라틴계 경제 규모가 3조2000억달러에 달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LDC는 “미국 라틴계가 하나의 국가라면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째로 큰 경제 규모인 셈”이라고 했다. 6위 인도와 7위 영국을 근소하게 제쳤다.
성장 속도도 빠르다. 2011년부터 2021년 사이 미 라틴계 총소득은 매년 4.7%씩 늘어 비라틴계(백인·아시아계·흑인 등)의 소득 증가율(1.9%)을 크게 앞섰다. 같은 기간 라틴계 구매력은 연간 3.9%씩 증가해 비라틴계(1.6%)보다 증가 속도가 2배 이상 빨랐다. 소득이 늘면서 소비 시장에 미치는 힘도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라틴계가 미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힘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인구 집단에 비해 젊은 데다, 학력 수준도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히스패닉 인구의 중위연령은 30세였다. 비히스패닉(41.1세)보다 열 살 이상 낮다. 캘리포니아·텍사스·플로리다처럼 인구가 많은 주에선 새 일자리의 상당수가 라틴계로 채워지고 있다.
6250만 소비자를 공략하라
히스패닉 인구가 재작년 6250만명까지 증가하자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을 겨냥해 생산품에 영어와 스페인어를 병기하거나, 스페인어로 광고 캠페인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국 핀테크 기업 스퀘어는 465만여 곳에 달하는 히스패닉계 사업장을 위해 작년부터 35개 이상의 제품·서비스를 스페인어로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판매관리시스템(POS)부터 직원 급여 관리 시스템까지 식당·가게를 대상으로 다양한 제품을 판다. 홀에서 서빙을 맡은 직원이 POS에 주문을 입력하면 주방 화면에는 영어와 스페인어 중 주방 직원이 익숙한 언어로 바꿔 보여주는 기능을 추가했다.
미국에서 ‘히스패닉 문화유산의 달(9월 15일부터 한 달)’이 되면 유통 업체 타깃은 라틴계 브랜드 제품을 모아 판매하는 행사를 연다. 히스패닉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은 인플루언서를 활용하는 마케팅도 등장했다. 맥도널드는 2020년 라틴팝 스타 제이 발빈과 협업한 한정판 메뉴를 내놨다. 그가 평소 맥도널드에서 즐겨 먹는 품목을 모아 세트로 구성한 제품이다. 신발 브랜드 컨버스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인플루언서 레이 폴랑코 주니어와 협업한 운동화를 내놨고, 스타벅스는 라틴계 예술가가 디자인한 텀블러·머그잔을 판매하고 있다.
스포츠 시장도 히스패닉 파워
히스패닉 인구 증가로 스포츠 시장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 프로축구(MLS)가 대표적이다. MLS는 1996년 10개 팀으로 시작해 현재 29개 팀으로 성장했고, 총 관중 수도 280만명에서 작년 1000만명으로 늘었다. MLS가 급성장한 원동력은 중남미에서 대거 유입된 히스패닉 인구다. 작년 여론조사 업체 모닝컨설트 조사에 따르면 미국 축구 팬의 27%가 히스패닉계였다. 올해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리오넬 메시가 MLS 인터마이애미로 이적하자 MLS 인기가 더 오르고 있다.
구단들도 히스패닉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올해 MLS는 ‘히스패닉 문화유산의 달’을 앞두고 아이다스와 협업해 스페인어가 새겨진 특별 유니폼을 선보였다. 재작년 MLS에 들어간 오스틴FC는 굿즈(기획 상품) 문구 대부분을 스페인어로 넣었다. 팀 상징색으로 녹색을 사용하는데 이동식 매장 등에 ‘Verde(녹색을 의미하는 스페인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오스틴은 라틴계 인구가 전체의 33%에 달한다.
미 프로풋볼(NFL)이 스페인어로 된 공식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처럼 다른 스포츠 종목도 히스패닉 관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백인과의 격차는 여전히 커
히스패닉 영향력이 커졌지만 아직 백인과의 격차는 작지 않다. 재작년 미 히스패
닉 가구의 중위 소득은 5만8000달러로, 백인(7만4000달러)보다 눈에 띄게 낮다. 또 라틴계가 미국 인구의 19%에 이르지만 포천 500대 기업 이사회에서 히스패닉 비율은 5%에 불과하다. 이런 차이가 부각되자 기업들은 라틴계 직원을 늘리는 추세다. 히스패닉에 대한 채용을 확대하자는 취지로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시작된 ‘히스패닉 약속 2.0′ 캠페인에는 나이키·IBM·에어비앤비를 포함해 300여 개 미국 기업들이 참여를 선언했다.
컨설팅 회사 매킨지는 “백인과 라틴계 사이의 격차를 줄이면 라틴계 소비자가 5540억달러를 더 지출하게 돼 미국 경제에 도움이 것”이라며 “기업 의사 결정 과정에서의 라틴계의 참여도를 높이고, 라틴계 기업가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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