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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미국 올랜도의 디즈니랜드는 “숙녀와 신사 여러분, 소년과 소녀 여러분들”이라고 부르는 오래된 불꽃놀이용 인사말을 없앴다. 성 중립을 지향한다는 취지였다. 이런 변화를 주도한 이는 월트디즈니의 최고다양성책임자(CDO·Chief Diversity Officer)인 흑인 여성 래톤드라 뉴튼이었다.

그런데 최근 뉴튼 CDO가 돌연 사표를 내 설왕설래를 낳고 있다. 사임 이유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디즈니가 문화 전쟁의 한복판에 놓이면서 스트레스를 느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디즈니는 인어공주 실사판 영화에서 ‘블랙 워싱(흑인 배우가 백인 역할을 맡는 것)’을 하고, 애니메이션에 성적 소수자 캐릭터를 늘려 거센 찬반 논란을 불렀다.

6년간 월트디즈니의 CDO(최고다양성책임자)로 일하다 최근 사표를 낸 흑인 여성 래톤드라 뉴튼./링크드인

뉴튼뿐 아니라 최근 미국 기업에서는 CDO들이 잇따라 퇴사하고 있다. CDO는 회사 내부에 성별·인종·성적지향성 같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도록 이끄는 직책이다. 3년 전 경찰 과잉 진압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사건 이후 기업들은 앞다퉈 CDO 직책을 신설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왔다. S&P500 기업 가운데 CDO를 둔 기업은 2018년에는 절반에 못 미쳤지만, 작년에는 4개 기업 중 3개꼴로 늘어났다.

한동안 CDO는 유행처럼 늘어났지만 최근 상황이 바뀌고 있다. 넷플릭스,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를 포함해 여러 기업에서 다양성 책임자가 사임하거나 해고되고 있다. 새로운 CDO를 구하는 움직임도 눈에 띄게 줄었다. 채용 플랫폼 링크드인에 따르면 다양성·포용성 임원 채용은 2019년 대비 2022년에 169% 늘었다가 작년에는 전년 대비 4.5% 감소했다.

그래픽=김의균

잇따른 CDO 사직을 두고 보수층을 중심으로 ‘정치적 올바름(PC)’에 염증을 느끼고 공격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맥주 버드라이트를 중심으로 트랜스젠더 친화적인 마케팅을 한 기업들은 불매운동 직격탄을 맞았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공공정책연구센터는 유통업체 홈디포에 인종 형평성을 준수했는지를 점검하는 감사를 중단하라는 주주 제안을 제출했고, 스타벅스엔 “다양성을 고려한 채용 정책이 오히려 차별”이라며 주주 소송을 제기했다.

그동안 자질을 인정받지 못하던 사람이 소수 인종이라는 이유로 임원급 CDO로 고속 승진한 것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디어 조사 업체 닐슨의 데이비드 케니 CEO는 “회사가 감원에 들어가려고 하면 직원들은 회사의 다양성 증진 움직임에 더 저항한다”고 했다. 다양성을 강조하고 보상 제도를 좀 더 평등하게 바꾸려는 노력이 ‘자기 몫을 빼앗긴다’는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이다.

디즈니 영화 ‘인어공주’의 한 장면. 흑인 배우가 인어공주 역할을 맡아 논란이 됐다./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회사 내·외부에서 모두 반발이 커지면서 CDO 임원들은 피로를 느끼고 있다. 올봄 138명의 다양성 임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업무 수행에 충분한 영향력이 있다고 느낀다’는 응답자가 82%로 전년보다 6%포인트 감소했다.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포용성 담당 임원이었던 제넬 잉글리시는 최근 사임 의사를 밝히며 소셜미디어에 “이 일은 쉽지 않으며 종종 외롭고 힘든 싸움”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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