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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모빌리티와 e-퓨얼, 우리의 미래 전략은 ‘더블-e’입니다.”
올리버 블루메 폴크스바겐그룹 회장은 ‘더블-e’라는 표현을 강조한다. 전기차 기술을 빠른 속도로 발전시키고, 동시에 이퓨얼(e-fuel·electricity-based fuel)을 정착시키겠다는 의지를 표시하기 위해서다. 이퓨얼은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합성해 만든 액체연료다. 기존 가솔린, 디젤 자동차에 엔진 개조 없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이퓨얼을 널리 사용하자고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 전기차 주도권을 빼앗긴 터라 내연기관 차량을 만드는 시대를 조금이라도 연장시키기 위해서다. 지난달 열린 뮌헨 모터쇼에 참석한 메르세데스 벤츠, BMW, 르노의 경영진이 일제히 “친환경 연료 이퓨얼이 구형 차량의 배기가스 배출량을 줄일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유럽 자동차 업계 구세주 될까
이퓨얼은 물을 전기분해해서 얻은 수소를 이산화탄소 또는 질소와 결합해 만든다. 무색무취다. 기름 한 방울 안 섞였지만, 석유와 화학적 구성이 같은 ‘유사 석유’다. 기존 주유소 인프라를 그대로 쓸 수도 있다.
이퓨얼에선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그럼에도 친환경 연료로 분류되는 까닭은 생산 단계에서 이미 대기 중으로 뿜어져 나온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원료로 쓰기 때문이다. 즉, 이퓨얼이 연소될 때 탄소가 내뿜어지기는 해도 추가로 배출되는 탄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퓨얼이 새로운 에너지원은 아니다. 발명된 지 100년이 넘었다. 하지만 저렴한 석유에 밀려 상용화될 기회가 없었다. 그랬다가 뒤늦게 이퓨얼을 널리 사용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미국 테슬라와 중국 비야디에 밀려 전기차 개발에 한 박자 늦은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기 모빌리티 시장에서 따라잡을 시간을 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는 “갑자기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중단하면 일자리 수십만개가 사라지면서 유럽 경제가 연쇄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퓨얼을 만들면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는 엑손모빌·셸 같은 대형 정유회사들도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과 뜻을 모으고 있다.
◇전기차 전환 늦어지자 관심 커져
유럽 자동차 업계의 끈질긴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 3월 EU 집행위원회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을 장착한 신차에 대한 판매 금지 방안을 통과시킬 때 ‘이퓨얼을 사용한 내연기관 차량은 금지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예외 조항을 넣었다. 2035년 이후에 가솔린 또는 디젤을 넣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지만, 이퓨얼을 연료로 사용하면 주행이 가능한 내연기관 차량은 만들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EU 결정을 계기로 이퓨얼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지는 중이다.
앞서 지난해에는 ‘포뮬러 원(F1)’이 경주용 자동차에 2026년부터 이퓨얼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블룸버그는 “EU가 (내연기관 스포츠카인) 포르셰 911에 생명선을 던져줬다”고 했다.
최근 들어 전기차 전환이 예상보다 느린 것도 이퓨얼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되고 있다. 완전 전동화를 달성할 때까지 화석연료 대신 이퓨얼이 ‘틈새 연료’로 널리 사용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거대한 이퓨얼 시장이 등장할 가능성에 대비해 글로벌 자동차·에너지 기업들은 이퓨얼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우디(2017년)를 시작으로 도요타·닛산·혼다(2020년), 포르셰·지멘스·엑손모빌(2021년) 등이 잇따라 이퓨얼 연구·개발에 뛰어들었다. 국내에서는 현대차·SK이노베이션(2022년)이 이퓨얼 개발·투자를 이끌고 있다.
이퓨얼은 자동차뿐 아니라 기존 비행기나 선박의 연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퓨얼을 지지하는 178개 자동차·정유 기업 협의체 ‘이퓨얼 얼라이언스’는 “현재 기술로 전기 동력으로는 불가능한 장거리 대량 화물 운송에 이퓨얼을 쓸 수 있다”며 “기존에 운행 중인 비행기 2만대, 선박 5만척, 2000만개 난방 시스템에도 기존 연료 공급 인프라를 통해 이퓨얼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가격 얼마나 낮추느냐가 관건
일각에서는 이퓨얼이 생산 단가가 너무 높아 쉽게 대중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회의론을 제기한다. 포르셰가 지난해 12월부터 에너지 기업 HIF와 함께 칠레에서 생산 중인 이퓨얼은 L당 50유로다. 일반 휘발유 도매가(0.5유로)의 100배 수준이다.
친환경 운송 수단을 연구하는 비영리 단체 ICCT는 2030년에는 이퓨얼 가격이 L당 3~4유로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도 휘발유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다. 그래서 전기차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거친 엔진음을 느껴보고 싶어하는 소수의 부유층이 사용하는 ‘상위 1%용’ 연료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이퓨얼은 생산 과정에서 에너지 효율도 낮다. 100㎞ 주행에 필요한 이퓨얼을 만드는 데 드는 전력은 103kWh로, 전기차(15kWh)와 수소연료전지차(31kWh)의 3.3~6.8배다. 유럽운송환경연합의 윌리엄 토츠 이사는 월스트리트저널에 “2035년이 되더라도 이퓨얼로 운행하는 자동차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유럽을 중심으로 석유에 탄소세를 과도하게 부과해 휘발유나 디젤 가격을 크게 높이는 방식으로 이퓨얼 사용을 유도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낮은 경제성과 에너지 효율이란 난제를 기술적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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