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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대형 부동산 기업 CDL은 지난달 일본 도쿄의 주거용 건물 25동, 총 832가구를 사들였다. 투자금은 350억엔(약 3200억원). 경기 회복과 임금 상승, 인구 유입으로 도쿄 주택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투자에 나선 것이다. 이 회사는 앞서 지난 8월에는 오사카의 256실 규모 호텔을 85억엔(약 770억원)에 인수했다. CDL은 “엔화 약세로 외국인 관광객이 팬데믹 이전보다도 많아진 데다, 2025년 오사카 엑스포 개최로 관광 수요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던 일본 부동산 시장이 올해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 금리를 대폭 올린 탓에 부동산 경기가 냉각된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초저금리가 이어지고 있고, 그에 따른 기록적인 엔화 약세로 자금 융통이 쉽고 경기가 살아나는 중이기 때문이다. 주택부터 호텔·물류센터·쇼핑몰·오피스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큰 규모의 거래가 줄지어 이어지고 있다.

오는 11월 개장하는 도쿄 시내의 초고층 복합시설단지인 아자부다이 힐스 단지./로이터 연합뉴스

도쿄 부동산 투자, LA 이어 2위

요즘 일본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는 투자가 물 밀듯 몰려오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JLL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일본 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 투자액은 2조1500억엔(약 19조원)으로 전년 상반기 대비 52% 증가했다.

분야별로 보면 오피스(40%), 물류센터(28%) 투자가 많았다. 호텔, 상가, 임대주택도 전체 투자의 10%씩을 차지했다. JLL은 “올 상반기 도쿄에만 93억달러가 몰리며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음으로 투자 규모 2위를 차지했다”고 했다. 작년보다 14계단 뛰어올랐다.

일본 부동산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외국 ‘큰손’은 싱가포르 자본이다.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은 지난 4월 블랙스톤이 보유 중이던 일본 내 물류시설 6개를 8억달러에 사들였다. 싱가포르 부동산 업체 캐피털랜드는 지난 4월 오사카의 아파트 6동을 1억590만달러에 인수했고, 5월엔 싱가포르 부동산 투자신탁 메이플트리 인더스트리얼 트러스트가 오사카 데이터센터에 520억엔을 투자했다.

그래픽=김의균

도쿄 아파트값 50년 사이 최고

오랫동안 일본 주택시장에서는 ‘사는 순간부터 감가상각이 시작된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다르다. 집값이 쑥쑥 오르고 있다. 일본 부동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도쿄23구내 신축 아파트 평균 가격은 올 상반기 1억2960만엔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0% 상승했다. 이 연구소가 집계를 시작한 1973년 이후 최고치다.

일본인들의 소득이 부쩍 늘어나면서 도쿄를 중심으로 새집을 사서 이사하는 흐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집계에 따르면 올해 봄철 임금 협상에서 대기업 임금 인상률이 3.91%로 30년 만에 가장 높았다. 박용식 KB자산운용 해외부동산투자3팀장은 “소득이 늘어난다는 건 결국 일본 경제가 탄탄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의미”라며 “좋은 집에 살려는 주택 임차•매입 수요가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외국인 부호들이 일본으로 몰려들면서 고급 아파트 판매가 특수를 누리고 있다. 블룸버그는 “일본 부동산을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세컨드 하우스로 여기는 해외 구매자가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홍콩·싱가포르·대만 부자들이 자산을 다각화하고 중국 주변의 지정학적 긴장을 피하기 위해 일본을 택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당국의 눈 밖에 나 해외에 있었던 알리바바 창립자 마윈도 작년 도쿄에 6개월 이상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초저금리·엔저가 황금기 불러

금리가 유독 낮은 일본에서는 부동산용 ‘이지 머니’를 끌어오기 편리하다. 주택담보대출 고정 금리는 연 1~2% 수준이고, 변동 금리의 경우 연 1% 미만도 있다. 미국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가 7%대로 고공행진 중인 것과는 정반대다. 외국인 부유층은 엔화 약세를 이용해 현금으로 부동산을 사들이거나 일본 내 지점이 있는 외국 은행으로부터 저리로 대출받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도쿄 아파트 가격이 글로벌 대도시에 비해 저렴한 것도 매력적이다. 글로벌 부동산 회사 나이트프랭크에 따르면 도쿄에서 100만달러로 살 수 있는 고급 아파트 넓이는 홍콩의 3배, 뉴욕의 2배에 달한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엔화가 쌀 때 일본 부동산을 사들였다가 나중에 엔화 강세 시점에 팔면 환차익까지 노려볼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했다.

일본 경제가 전반적으로 살아나는 추세를 보이는 것도 부동산 시장이 달아오르는 배경이다. 엔저 효과를 누리려는 관광객이 급증해 호텔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다른 선진국보다 덜 발달한 온라인 유통업이 앞으로 확대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일본의 물류창고에 투자하기 좋은 시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래픽=김의균

공급 과잉·지방 소외 우려 커져

일본 부동산 시장이 마냥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오피스가 과잉 공급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면서 도쿄의 경우 오피스 공급량 연면적이 작년 48만㎡에서 올해 128만㎡로 뛰어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니치신문은 “도쿄 중심부에 새 사무실 공간이 대규모로 공급되면서 기존 오피스의 공실이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 중개업체 미키쇼지가 집계한 올해 9월 도쿄의 사무실 공실률은 6.15%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9월 1.64%였던 것을 감안하면 빈 사무실이 크게 늘었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재택근무 확산을 반영해 사무실을 축소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어 오피스 임대업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 최대 통신기업 NTT는 지난 6월 기본 근무 장소를 자택으로 정하고 출근을 출장으로 취급하는 새로운 규칙을 발표했다. 주택설비 업체인 릭실은 작년 본사를 이전하며 공간을 90% 가까이 줄였고, IT 기업 후지쓰는 내년에 본사를 도쿄에서 근교 가와사키시로 옮길 예정이다.

일본의 고질병인 인구 감소와 지역 양극화가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009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일본 인구는 작년에는 80만명 넘게 줄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재 부동산 활황도 도쿄·오사카 등 일부 대도시에 국한돼 있다. 지방 소도시에는 여전히 투자가 부진하다.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장기간 방치된 빈집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인구 감소와 느린 경제 성장 속도를 고려하면 부동산은 일본이 큰 이익을 얻는 시장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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