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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리의 지표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지난 19일 5%선을 넘어섰다.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16년 만이다. 세계 금융 시장은 고금리 공포에 다시 한번 요동쳤다. 이미 미국 기준금리는 22년 만에 가장 높은 연 5.5%까지 치솟아 있다.
어느새 투자자들은 저금리 시절을 아득한 과거로 느끼고 있다. 동시에 고금리 충격이 예상보다 길게 유지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각국 정부도 폭증하는 부채, 탈세계화, 지정학적 갈등과 같은 위기 요인이 겹치는 가운데 맞이한 고금리 태풍 앞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
다시 찾아온 고금리 시대가 만들어낼 미래에 대한 시계(視界)를 넓혀보기 위해 WEEKLY BIZ는 세계적인 통화 이론가인 찰스 굿하트(87) 런던정경대(LSE) 명예교수를 화상으로 만났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 5시간 이상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굿하트 교수는 “앞으로 30년은 고물가·고금리가 이어지기 때문에 경제적 행동 양식도 그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며 “50세 미만 인구는 지금껏 저금리와 금리 하락만을 경험해왔다”고 말했다. 앞으로 30년간 진행될 고물가·고금리 사이클에 이제 막 들어섰기 때문에 이런 ‘뉴노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서둘러 사고방식과 행동을 ‘개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굿하트 교수는 “지난 30년간 세계화와 인구 증가가 세계 경제를 추동하고 낮은 물가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생산 가능 인구 감소와 탈세계화가 성장을 막고 물가를 끌어올리는 재앙이 될 것”이라며 “고물가·고금리 추세는 2050년 무렵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19년 탈고한 저서 ‘인구 대역전’에서부터 이 같은 숙명적 비관론을 주장해왔다. 앞서 팬데믹이 한창일 때도 굿하트 교수는 “봉쇄가 풀리고 회복이 시작되면 통화 확장의 여파로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밀어닥칠 것”이라며 한발 앞서 경고를 해왔다. 그는 한국에 이른바 ‘영끌 투자족’이 많다는 얘기에 “조심하라(be careful), 조심하라, 조심하라”며 세 번 이야기했다.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굿하트 교수는 거시경제 구루로 인정받아왔다. 케임브리지대·런던정경대 교수로 활동했고, 영국중앙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내며 통화정책 집행에 직접 참여했다. 영국 재무부에 근무한 경력도 있어 이론과 실무에 두루 능하다. 평소 통화론자들의 근시안적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통찰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특정 경제지표를 정책 목표로 삼는 순간 지표가 본래 움직임을 상실한다’는 ‘굿하트의 법칙’으로도 유명하다.
◇금리 상승 30년 사이클 시작됐다
굿하트 교수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우선 요즘 흔히 쓰는 ‘고금리’라는 표현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고 제안했다. 현재 금리 수준은 1800년 이후 220여 년을 볼 때 평균보다 약간 높은 정도라서 고금리로 볼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는 “지금이 고금리라는 말보다는 지난 30년간 금리가 이례적으로 매우 낮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며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저금리의 배경을 먼저 이해하는 게 앞날을 예측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왜 오랫동안 금리가 낮았다가 갑자기 치솟고 있나.
“장기적으로 볼 때 요즘 금리 수준은 평균값으로 돌아간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은 금리와 물가가 워낙 낮았기 때문에 대규모 팽창적인 통화 정책을 내놔도 물가가 많이 오르지 않았다. 거대한 노동 공급으로 번영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경제 성장률은 꾸준했고, 실업률은 낮았다. 추가 근로자가 너무 많은 까닭에 임금도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1990년부터 30년은 분명 세계 역사상 경제적으로 최고의 시기였다.”
-거대한 노동 공급이란 건 어떤 의미인가.
“지난 30년 사이 세계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중국의 부상이었다. 중국이 세계 제조업 시장에 참여하면서 경제 활동 인구가 폭증했다. 여기에 (소련 해체로) 동유럽도 세계 무역 체제에 편입됐다. 인구 구조도 축복이었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 인구로 자리 잡는 동안 이들이 부양해야 할 노인 및 유소년 인구가 빠르게 늘지 않았다. 게다가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도 늘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양적 완화를 해도 물가가 치솟지 않았던 까닭은 풍부한 노동 공급 때문이었다.”
세계 생산 가능 인구는 1991년부터 2018년까지 27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했다. 덕분에 임금 수준이 낮게 유지돼 저물가가 오래 지속되는 황금기를 누렸다는 게 굿하트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안타깝게도 중국의 부상과 인구 변동이 만들었던 ‘스위트 스폿’(경제 변수의 최적 조합)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최근 금리 인상 속도는 충격적이다.
“30년 흐름을 깨고 1년 반 동안 금리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올랐다. 갑작스러운 인상 충격으로 주택 산업과 건설업이 어려움을 겪고, 경제 성장률·생산량 둔화, 부동산 가치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11월에는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지만, 앞으로 금리가 한 차례 더 0.25%포인트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앞으로 물가는 어떻게 될까.
“미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지금보다 안정되더라도 3~3.5% 정도에 머무르며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2%까지 내려가기는 매우 어렵다고 본다. 그로 인해 단기 금리는 현재 시장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3~4%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앞으로 수년간 단기 금리는 약 3.5%, 장기 금리는 4.5%가량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경제 성장률도 1~1.5% 정도로 낮은 수치를 보일 것이다.”
◇중국 때문에 물가·금리 치솟는 세상 온다
굿하트 교수는 “세계 경제가 직면한 위험은 지난 30년간 경제 성장을 주도한 나라들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시작으로 인구 변동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유엔은 미국이 2035년에 초고령 사회(65세 이상 비율 20% 이상)에 진입하고, 중국도 불과 5년 후인 2040년이면 초고령 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고령화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영향이 그렇게 크다는 말인가.
“노인은 대개 생산 활동을 하지 않고 주로 소비를 한다. 고령 인구는 치매, 파킨슨병과 같은 질병에 시달릴 확률이 높고, 의약품과 돌봄이 필요하다. 부양비가 급증하면, 가계 저축도 줄어든다. 고령자 간병 비용이 치솟고 있다. 의료비와 연금 부담으로 세금이 오르면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도 거세질 것이기 때문에 금리 상승은 필연적이다. 고령자가 늘어날수록 국가 재정에 큰 압박이 될 수 있으며, 정부 부채가 지속 불가능한 상태로 빠져들 수 있다.”
일본에서 노동력 감소가 10년 넘게 이어졌는데도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닥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굿하트 교수는 “당시 세계의 나머지 국가에서 노동력이 넘쳐 났기 때문에, 일본은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생산 시설을 돌리며 해외 노동력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는 중국의 고령화가 핵심 변수”라며 “정치적으로도 자국 중심주의가 기승을 부려 탈세계화가 되면서 앞으로는 인건비가 저렴한 나라의 노동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2년 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했다.
“정말 무서운 수치다. 고령화나 인구 감소 자체보다는 단기간에 출산율이 급락한 것이 큰 문제다. 출산율이 높았던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노년층이 되고, 이들을 부양할 인구는 적다. 이 불균형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더 이상 가족 구조 안에서 자녀가 어르신을 돌보는 시스템은 불가능하다. 대부분 국가가 세금 인상, 정년 연장 같은 닥쳐 올 문제에 대해 대책이 없어 보인다.”
-지금 같은 물가·금리 상승세가 이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주택, 토지, 주식, 채권 등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서 자산가들의 수익이 줄어들 것이다. 반면 물가 상승, 세금 인상, 노동 공급 감소에 따라 근로자들의 임금이 올라 불평등은 완화될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로 해외 제조업 생산기지와 이민지와의 경쟁이 느슨해지면서 자국 근로자 입지가 한층 강화될 것 같다. 신흥 경제에 일자리를 빼앗긴 선진국 하위 중산층을 매혹하던 극단적 포퓰리즘은 잦아들 것이다.”
굿하트 교수는 “여전히 대다수 거시경제 분석이 경기 순환에 초점을 맞추고, 국가 단위 정책에 매몰돼 세계화, 인구 변동 같은 크고 중대한 변수를 간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30년에 걸친 장기적 관점에서 위기를 진단해보니 앞날을 비관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생산성 전쟁이 시작된다
경제 인구 급감으로 인한 저성장 위기를 극복하려면 근로자 1인당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굿하트 교수는 “저렴한 노동력과 재화를 세계에 공급했던 중국의 역할을 대신할 ‘세계의 공장’ 후보로 인도와 아프리카가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와 아프리카가 제2의 중국이 될 수 있을까.
“인도는 앞으로 10년간 경제 성장률에서 중국을 능가할 것이다. 다만 민주적 견제·균형 시스템 부족으로 중국만큼 경제 규모를 끌어올리지는 못할 것 같다. 아프리카는 교육 수준이 높지 않고, 54개에 달하는 국가 정책이 파편화돼 있어 중국에 맞설 ‘제조업 복합체’를 만들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은퇴 연령을 늦추고, 노년층을 생산에 투입해야 하나.
“많은 나라가 검토하고 있지만, 이 또한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고령 인구의 경제 활동을 늘린다고 해서 전반적인 근로 역량이 하락하는 여파를 막아낼 순 없기 때문이다. 역시나 정치적 반발을 고려해야 한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19년 말 은퇴 및 연금 구조 개혁에 나섰다가 곤경에 처했다.”
-결국 생성형 AI 같은 기술 혁신이 중요할 것 같다.
“기업은 노동 절약 기술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임금이 오를 것이므로 충분한 인력 확보가 어려울 것이다. AI, 챗GPT가 상당히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장비에 투자해야 한다.”
굿하트 교수는 “고물가·고금리가 지속될수록 대다수 정부가 중앙은행에 금리를 낮추라는 압력을 가하며 독립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각국 정부가 (높은 금리에 국민이 불만을 가지는) 정치적 부담을 느끼더라도 중앙은행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무능한 정치 세력의 등장을 경계해야 한다”며 “미래를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경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부를 선출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조심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굿하트 교수는 요즘도 매일 5~8시간씩 연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런던 시각으로 오전 8시에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그는 분홍색 옥스퍼드 셔츠에 넥타이, 갈색 헤링본 재킷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모습이었다. 그는 이미 조간 신문을 정독했다며 “오늘 아침에도 영국의 간병 일자리가 아프리카 인력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고 했다.
굿하트 교수는 일주일에 사흘은 오후 내내 요양원에 가서 중중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를 돌본다. 그는 “나 역시 돌봄이 필요한 때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며 “아내와 관련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인구 구조와 물가·금리 사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했다.
-고금리 시대에 재정 위기로 세금이 오를까 걱정이다.
“공공 부문의 지불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증세가 불가피하다. 그런데 정부가 재산세·법인세를 가파르게 올리면 숙련 근로자와 기업이 소재지를 아예 바꿔버리는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조세 반발 없이 취약층을 보호할 수 있는 선에서 국경세·토지세·탄소세 등을 세심하게 설계해야 한다.”
-고금리 시대에 개인의 경제 행동 양식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1990년대부터 2020년까지는 주택, 주식, 채권 어디에 돈을 투자하든 상관없었다. 자산 가격은 거의 정점에 도달했다. 위기가 발생하면 회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특히 채권 시장은 더욱 그렇다. 만기가 짧은 유동성 자산은 합리적인 이자율을 적용받고 있다. 은행 예금을 통해 연 3~4% 수익을 누리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에서 이른바 ‘영끌’ 투자를 한 사람이 많다고 했더니 굿하트 교수는 “조심하라(Be careful)”를 세 번 연속 힘주어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부동산은 주식과 채권 가치와 함께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며 “가상 화폐 투자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굿하트 교수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노후를 위해 저축하라”고 했다. “여러분이 늙었을 때 국가 재정은 넉넉지 않을 것이다. 돌봐 줄 손주도 형편이 여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은 혼자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직시하라.” 진심이 느껴지는 석학의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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