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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던 30세 여성 세라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직전 해고당했다. 3년도 지난 일이지만 올해 초까지도 충격과 외로움에서 헤어나기 어려웠다. 다른 도시에 사는 아널드라는 중년 남성은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다. 자녀가 셋 있지만 따로 산다. 아널드는 주로 친구들과 연락하고 지내며 고독감을 털어내려 애쓴다.
세라와 아널드처럼 외로움을 느끼는 미국인이 많아지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온라인에 의존하면서 타인과 대면하는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포브스는 최근 세라와 아널드 이야기를 소개하며 “만성 질환부터 실직,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까지 다양한 이유로 외로움이란 감정이 미국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외로움의 확산이 단순히 개인 감정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오게 한다. 의료 비용이 급증하고 기업 생산성이 떨어져 국가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보건 정책을 총괄하는 비벡 머시 의무총감은 뉴욕타임스에 “미국이 ‘외로움 유행병(loneliness epidemic)’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과소평가된 공중 보건의 위기”라고 했다.
◇연애도 결혼도 안 하는 미국 20대
미국인들은 점점 더 혼자가 되어 가고 있다. 연방 의무총감에 따르면 2003년에서 2020년 사이 17년간 미국인들이 혼자 지내는 시간은 한 달에 24시간 늘었다. 2003년에는 미국인들이 하루 평균 285분 혼자 있었지만 2020년에는 홀로 남은 시간이 하루 333분으로 늘었다. 친구와 대면하는 시간은 2003년 하루 60분이었지만 2020년에는 20분으로 줄었다. 친구가 3명 이하라는 응답은 1990년에는 27%였는데 2021년에는 49%였다. 친구 적은 사람 비율이 크게 늘었다는 뜻이다.
특히 요즘 미국 젊은이들이 연애·결혼을 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하다. 퓨리서치센터가 작년 7월 미국인 6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30세 미만 성인 중 47%는 결혼이나 동거를 하지 않은 상태이고, 진지한 연애 상대도 없다. 갈수록 인기를 끄는 데이팅 앱은 ‘연애 종말 시대’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 성인의 약 절반이 데이팅 앱을 사용해본 적이 있을 정도이지만, 이용자 중 12%만 데이팅 앱을 통해 진지한 연애 관계를 맺었다고 응답한 조사가 있었다. 스마트폰에서 쓱쓱 화면을 넘기며 이성을 찾다 보니 만남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얘기다.
1970년과 2021년을 비교할 때 미국인의 초혼 연령은 남성이 23세에서 30세로, 여성이 21세에서 28세로 각각 늦춰졌다. 사회학자 마크 레그누러스는 “미국인들이 성관계에 부여하는 가치가 과거보다 낮아지고 있다”며 “그러면서 결국 결혼 결정을 미루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미국인도 ‘나 혼자 산다’
‘외로움 유행병’이 번지는 이유로는 먼저 1인 가구가 많아졌음을 들 수 있다. 1960년 미국 전체의 13%를 차지했던 1인 가구는 2022년 29%로 증가했다. 미국인 10명 가운데 3명은 혼자 살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혼자 사는 노인이 많다는 특징도 갖고 있다. 2020년 퓨리서치센터가 130국의 거주 방식을 조사해보니 60세 이상인 사람 가운데 혼자 사는 비율이 평균 16%였지만 미국은 27%로 훨씬 높았다. 미 인구조사국은 혼자 사는 65세 이상 미국인이 1400만명에 가깝다고 집계한다.
사람을 대면하기보다 소셜미디어에서 교류하는 현상이 두드러진 것도 외롭다는 감정을 더 많이 느끼게 하는 요인이다. 미국 예방 의학 저널에 따르면 하루 두 시간 이상 소셜미디어에 접속하는 사람은 30분 이하로 접속하는 사람보다 사회적 고립감을 호소할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았다. 소셜미디어에 의지할수록 외로움이 커진다는 얘기인데, 소셜미디어를 이용한다는 미국 성인 비율은 2005년 5%에서 2019년 80%로 높아졌다.
강한 소속감을 갖게 하는 종교 활동도 줄었다. 오피니언리서치센터는 2020년 미국 성인의 종교 참여도가 47%라고 발표했는데 1937년 통계를 낸 이래 처음으로 50%를 밑돌았다. 1999년만 해도 미국 성인의 70%가 교회 등 종교 단체에 속해 있었다.
◇외로움이 국가 경쟁력 떨어뜨린다
의료 전문가들은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연방 의무총감은 사회적 연결감 부족이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보다 크다”고 했다. 지난해 미국심장협회는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고 답한 심부전 환자의 입원 위험이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68% 높고, 응급실 방문 위험은 57% 높다고 보고했다.
외로움이 건강을 해치다 보니 사회적으로 거대한 비용을 치르게 만들고 있다. 연방 의무총감은 노년층의 사회적 고립이 매년 약 67억달러(약 9조원)의 메디케어(미국의 노인의료보험제도) 초과 지출을 발생시킨다고 분석한다. 주로 병원 및 요양 시설 지출로 생긴 비용이다. 또 외로움으로 인한 결근이 고용주에게 연간 약 1540억달러(약 208조6000억원) 비용을 발생시킨다고 했다. 직장인이 외로움을 타면 생산성이 저하되고 기업의 비용 지출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하버드대 성인 발달 연구팀의 마크 슐츠 박사는 “중년에 접어들어서야 인간관계 대부분이 직장이나 자녀 위주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많다”며 “다른 사람들과 반복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사회적 연결을 회복하라”고 말한다. 미국 사회생활·건강·노화에 관한 국가 연구 프로젝트(NSHAP)는 50세 이상인 사람의 고혈압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으로 사회적 관계 회복이 다른 요인을 개선하는 것보다 효과가 더 크다고 분석했다.
온라인 시대를 맞아 음식 배달이나 쇼핑까지 혼자 집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연방 의무총감은 “개인은 친구들과 만날 때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둬야 하고, 고용주는 원격 근무를 더 신중히 결정해야 하며, 의사는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인지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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