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빚을 늘리느니 저녁을 먹지 않고 침대에 눕는 것이 낫다.” 미국 재무부 홈페이지에 있는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2001년에 마지막 재정 흑자를 기록한 이후 20년 넘게 적자 행진 중이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지난 9월 33조달러(약 4경4600조원)를 넘어섰다. 지난 8월에는 국제 신용 평가사 피치가 미국 국가 신용 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하기도 했다.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는 나랏빚을 미국 내부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미국 재정의 ‘파수꾼’인 의회예산처(CBO)를 이끌고 있는 필립 스와겔(57) 처장은 WEEKLY BIZ와 화상으로 만나 “올해도 재정 적자가 GDP의 5%를 넘고, 앞으로도 이 정도 수준의 적자가 이어질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속도로 국가 채무가 늘어나는 것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재정의 힘은 경제 성장이나 위기 극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건전한 재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필립 스와겔 미국 의회예산처장./의회예산처 제공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스와겔 처장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2002년 사이 연방준비제도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했고, 2006~2009년에는 재무부 차관보로 근무하며 두루 경험을 쌓았다. CBO는 미국 경제·재정에 대한 중·장기 전망을 내놓고, 갖가지 법률 제정·개정에 따른 비용을 계산하는 독립 기관이다.

◇”미국도 국채 발행 무제한적일 수 없어”

스와겔 처장은 “올해 미국 정부가 지급해야 하는 국채 이자만 6400억달러(약 86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올해 우리나라 정부 예산(약 639조원)을 훌쩍 뛰어넘고, 미국 정부 세수의 13.8%에 해당하는 액수다. 미국은 작년 GDP가 25조4600억달러(약 3경4400조원)이므로 재정 적자가 GDP의 1%만 발생해도 340조원이 넘는 적자가 쌓인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느라 2020년에만 GDP의 14.9%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는 등 매년 천문학적인 빚을 내고 있다. CBO는 올해부터 5년 연속 GDP 대비 5% 이상의 적자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스와겔 처장은 “미국 경제가 양호한데도 정부가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는 않은 현상”이라며 “미국이 당장은 더 많은 돈을 빌려 쓸 여력은 있지만 부채를 무제한적으로 늘릴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기축통화인 달러를 사용하는 나라지만 국채를 무한정 발행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래픽=김의균


CBO는 미국 정부의 채무 가운데 사회복지 기금이나 연금 기금이 보유한 ‘정부 내 채무’를 제외한 순 채무를 기준으로 재정 상태를 진단한다. 이와 관련, 스와겔 처장은 “올해 초 CBO는 GDP 대비 순 채무 비율이 2022년 97%에서 올해는 98%로 높아지고 내년에는 100.4%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며 “하지만 금리 상승과 부채 규모 증가로 채무 비율은 최근 예상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국 정부가 20년 넘게 재정 흑자를 기록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공화당이 집권하면 감세를 추진해 수입을 줄이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각종 보조금 지급을 늘려 지출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10년간 이자 비용 가파르게 오를 것”

스와겔 처장은 본격적인 고금리 시대를 맞아 미국의 적자 폭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작년 말에는 장기금리인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연 3.8% 수준이었는데 최근에는 연 5%를 넘기도 했다”며 “내년 1월 새로운 전망을 내놓을 때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하면 이자 비용, 재정 적자, 전체 채무가 모두 증가할 수 있다”고 했다.

스와겔 처장은 “연방준비제도가 물가 상승률을 일정 수준 낮추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목표치(2%)를 달성하려면 앞으로 몇 년 정도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기준 금리가 상당 기간 높은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앞으로 10년간 이자 비용을 포함한 채무 변제 비용이 가파르게 오를 것”이라며 “채무가 많은 상태에서 금리도 올랐기 때문에 이자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CBO는 2033년이 되면 미국 정부가 지급해야 할 국채 이자가 1조459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스와겔 처장은 “그렇다고 해서 당장 미국 재정에 임박한 위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 경제에서 (안전 자산인) 달러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전 세계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를 계속 찾고 있다”고 했다.

◇“저출산은 미래 성장을 제약”

스와겔 처장은 누적되는 재정 적자가 미국 정부가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대비하는 데 제약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저출산이 미래 경제 성장의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당면 과제”라며 “미국 역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출산율이 대체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스와겔 처장은 다만 미국에는 꾸준히 이민자들이 유입되고 있는 점이 한국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현재 많은 이민자의 ‘목적지’가 아닌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이러한 ‘글로벌 파워하우스’의 지위가 (이민자를 늘리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스와겔 처장은 한국이 남북 통일이라는 변수를 염두에 두고 건전한 재정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과거 독일 통일 이후 동독 지역에 엄청난 재정 투자가 필요했던 사례가 있듯 (한국이 통일을 하면) 정부 재정 차원에서는 큰 도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