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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영석

미국 보스턴에 사는 벤처캐피털 투자자 제이든 브라이든(23)은 딩크족(DINK·맞벌이 무자녀)이다. 결혼 전 남편과 합의했다. 한 명의 수입으로 생활하고, 나머지 한 명의 수입으로는 저축과 투자를 하기로 했다. 그녀는 시사 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딩크는 재정적으로 현명한 선택”이라며 “자녀 없이 맞벌이로 은퇴 자금을 마련하고 부동산 투자로 자산을 빨리 늘릴 것”이라고 했다.

딩크족이라는 표현은 1987년 타임의 ‘딩크족이 온다’는 기사를 비롯해 이 해에 여러 영미권 매체에 등장하며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36년이 흘러 핵가족이 가속화된 지금 딩크족은 가족 형태의 한 갈래로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자녀 양육이라는 짐을 짊어지지 않는 이점을 활용해 딩크족은 젊은 시기에 자산을 빠른 속도로 불린다. 그러나 이제 노년기에 들어선 딩크족 1세대의 경우 자녀가 있는 또래보다 빈곤율이 높아 인생의 황혼기에 어려움을 겪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딩크족 자산, 자녀 있는 부부보다 많다

미 연방준비제도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딩크족이 자녀가 있는 부부보다 자산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순자산 중간값을 볼 때 자녀 없는 부부(딩크족)가 39만9000달러(약 5억4200만원)를 보유하고 있고, 자녀 있는 부부의 자산은 25만6000만달러로 딩크 부부보다 14만3000달러나 적었다.

딩크족의 자산은 팬데믹 시기 급증했다. 2019년 대비 37% 증가해 10만달러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자녀 있는 부부의 자산이 30% 늘어난 것보다 증가 폭이 컸다. 미스티 헤게니스 캔자스대 교수는 “팬데믹 기간 미국인들이 집에 머물며 소비가 줄어들자 더 많이 저축할 수 있는 딩크 부부의 자산이 더 많이 늘어났다”고 했다. 팬데믹 기간의 특수성이 딩크족에게 유리했다는 얘기다.

그래픽=김의균

딩크족은 자녀 양육비를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자산 쌓기가 수월하다. 지난해 브루킹스 연구소는 자녀 두 명을 둔 중산층 부부가 2015년생 둘째를 만 17세까지 키우는 데 31만605달러(약 4억2200만원)가 든다고 추정했다. 이는 중간값으로 딩크 부부 순자산의 80%에 해당하는 액수이며, 비싼 대학 학비는 포함되지 않은 액수다. 뉴저지주에 사는 50대 남성 스티브 매킨타이어는 지역 언론 인터뷰에서 “결혼한 지 35년이 됐지만 한 번도 부모가 되기를 원한 적이 없다”며 “자녀 학교 일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양육과 관련한 막대한 비용을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딩크가 딩콰드로 진화

요즘 미국 딩크족은 자녀 없이 맞벌이를 하며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을 칭하는 딩콰드(DINKWAD·Double Income No Kids With A Dog)로 진화하고 있다. 파멜라 아론슨 미시건디어본대 교수는 “MZ세대의 경제적 불안이 커지면서 젊은 부부들이 다른 생활 양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며 “딩콰드의 삶이 소셜미디어에서 빠르게 퍼지며 아이를 갖지 않는 데 대한 부정적인 낙인이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아이 대신 반려동물을 기르는 맞벌이 부부를 일컫는 '딩콰드'라는 말도 생겼다. 사진은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에 조성된 펫파크 모습. /뉴시스

미국에서는 금융 위기가 있던 2008년부터 합계 출산율이 매년 떨어져 팬데믹 첫해인 2020년 1.59명까지 내려갔다. 출산율이 낮게 유지되던 시기에 더 많은 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는 1억2300여 만가구가 있다. 그중 4800만가구 이상이 반려견을 키우고 있으며, 팬데믹 기간 2300만가구가 반려동물을 입양했다. 미국에서 반려견 한 마리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연평균 2000달러다. 15년을 키워도 3만달러다. 자녀와 반려견을 동등한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아이를 고등학생까지 키우는 돈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노년 딩크, 빈곤율 높다

미국에서는 베이비부머(1946~1964년생)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들도 내년에 60대에 접어든다. 1세대 딩크족도 노년을 맞이하면서 고령의 딩크족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시기가 됐다는 얘기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55세 이상 성인 9200만명 중 적어도 16%에게 자녀가 없었다.

이와 관련, 딩크족이 나이가 많아지면 경제적으로도 자녀가 있는 또래보다 반드시 유리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인구조사국은 2021년 조사에서 자녀가 없는 노인이 자녀가 있는 노인보다 자산을 많이 갖고 있지만, 빈곤율은 더 높다는 결과를 얻었다. 빈곤율은 벌어들이는 돈이 중위 소득의 절반에 못 미치는 사람의 비율이다. 구체적으로 55세 이상의 순자산 중앙값은 무자녀 남녀가 15만3900달러로 유자녀 남녀(13만400달러)보다 높았다. 하지만 빈곤율은 무자녀 남녀(12.4%)가 유자녀 남녀(9.1%)보다 높았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이런 결과에 대해 노년에 딩크족의 경제적 여건이 불리해지는 측면이 반영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야후파이낸스는 “자녀 없는 노년층은 나이가 들면서 요양원에 가거나 간병인을 고용하는 등 비용이 많이 드는 돌봄 서비스를 필요로 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젊을 때는 자녀를 키우지 않아서 절약이 가능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 비용이 자식이 있는 또래보다 많이 들어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노인 요양 정보 업체 ‘시니어홈즈’에 따르면, 미국 요양원의 평균 비용은 월 2432달러(약 330만원)다. 즉, 한 사람이 5년 동안 요양원에 머무른다면 14만5920달러(약 1억9700만원)가 필요하다. 딩크족은 자식의 도움을 배제해야 하므로 이런 비용을 혼자 또는 배우자하고만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금융 전문가 빌 라이즈는 “딩크족은 자녀를 키울 때 다양한 정부 지원을 간과하기 때문에 아이 양육비를 과다하게 계산하는 경향이 있다”며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줄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산 관리에 집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게다가 미국을 비롯해 각국에서 저출산이 심각해질수록 무자녀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세제 혜택을 점점 줄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딩크 부부는 둘이 벌어야만 가계가 지탱되는 소득 구조를 갖고 있다”며 “고령의 딩크족은 질병을 얻을 경우 소득 단절과 비용 발생을 동시에 겪게 되므로 노후용 병원비가 마련돼 있는지 미리 점검해 보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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