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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 미국의 화물 중개 스타트업 ‘콘보이’는 기업 가치 38억달러(약 5조원)를 인정받았다. 1억6000만달러 투자금을 확보했고, 금융권에서 1억달러 벤처 대출도 끌어왔다. 화주와 트럭 운전사를 연결해주는 ‘트럭판 우버’ 모델에 투자자들이 주목했다. 하지만 콘보이는 자금을 조달한 지 18개월 만인 지난 10월 갑작스레 모든 직원을 내보내고 문을 닫았다. 마진이 낮은 화물 중개 사업에서 수요가 감소해 손실이 불어났고, 새로운 투자자나 인수처를 찾았지만 모두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한 스타트업은 콘보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정신건강 플랫폼 ‘마인드스트롱’, 영국 핀테크 ‘프론티드’ 등 잠재력 큰 기업으로 평가받던 스타트업들이 줄지어 문을 닫았다. 미국 벤처캐피털 회사 IVP의 톰 로베로 파트너는 “스타트업 ‘대량 멸종’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의균

코로나 팬데믹 기간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린 글로벌 스타트업 업계가 고난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초저금리 시절 ‘돈 잔치’가 막을 내리고, 올해 미국에서 16년 만에 5%대 기준금리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졌고 팬데믹 기간 폭발했던 디지털 전환도 주춤해졌다. 창업을 꿈꾸는 사업가나 아직 본궤도에 사업을 올려놓지 못한 스타트업 경영자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처럼 창업 환경을 둘러싸고 어두운 안개가 가라앉아 있는 시기를 맞아 WEEKLY BIZ는 스타트업이 어떤 방향으로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지, 그리고 예비 창업가는 어떻게 미래를 그려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손에 잡히는 조언을 듣기 위해 하버드대 경영대학원(HBS)에서 창업을 가르쳐온 토머스 아이젠먼 교수를 화상으로 만났다.

아이젠먼 교수는 “거품이 꺼지기 전까지 호황이 오래갈 수 있듯 붕괴 역시 생각보다 오래 지속할 수 있다”며 “지금은 무리한 확장을 추진하기보단 수익성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적자를 보면서까지 고객을 늘리기보단 작은 규모라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아이젠먼 교수는 “고금리 환경에서도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는 여전히 투자가 이뤄지고 있고 창업 비용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며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예비 창업가나 신생 스타트업이라면 지금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젠먼 교수는 HBS에서 예비 창업가 수천명과 스타트업에 통찰을 제시해온 ‘창업가들의 스승’이다. 미국 스타트업 분석 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은 HBS 출신 창업가는 1691명으로, 모든 경영대학원을 통틀어 가장 많다. 그중에는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도 여럿 탄생했다. 이들 창업가 가운데 상당수가 아이젠먼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토머스 아이젠먼 교수가 강의하는 모습. /본인 제공

“현금 소진 속도 늦춰라”

스타트업 투자는 작년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 인상을 시작하며 급감하기 시작했다. 시장조사 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재작년 4분기 1830억달러에 달했던 전 세계 투자금은 올해 3분기 646억달러로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세계를 통틀어 분기별로 100개 이상씩 탄생하던 유니콘 스타트업도 씨가 말랐다. 재작년 2분기만 해도 스타트업 148곳이 유니콘 자리에 올랐지만 올 3분기에는 12분의 1도 안 되는 12곳에 그쳤다. 아이젠먼 교수는 “스타트업 절반 정도는 B2B(기업 간 거래) 사업을 하면서 주로 구글·아마존 같은 대기업에 제품을 판다”며 “경기가 둔화하면서 이들 대기업도 지출을 줄이고 있어 스타트업엔 더 어려운 환경이 됐다”고 했다.

-불황기에 스타트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유일한 대응책은 현금 소진 속도(burn rate)를 늦추는 것뿐입니다. 마케팅용 투자에 신중해지고 인력 운용에도 까다로워져야겠죠. 가격을 올리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간단치 않은 일입니다. 예를 들어 이미 사무실 계약을 맺었다면 임차료를 계속 내야 합니다. 지금 비용이 많이 든다고 엔지니어를 해고하면 상황이 좋아졌을 때 다시 그들을 고용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수익성이 우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고객을 잃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모든 고객에게서 손해를 보고 있다면 고객 증가 속도를 늦추는 게 좋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진 투자자와 스타트업 모두 성장에 열광했고, 성장으로 (일시적으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회사가 모든 고객에게서 돈을 잃고 있다면 문제가 있는 겁니다.”

예컨대 호주 식료품 즉시 배달 스타트업 밀크런은 지난 4월 운영 중단 직전 주문당 10호주달러 이상씩 손실을 보고 있었다. 매장 임차료와 배달원 인건비, 마케팅 지출 때문에 고객 주문이 늘어날수록 적자 폭이 커지는 구조였다. 투자금이 넘칠 땐 늘어난 고객 수와 매출 증가를 내세워 추가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지만 투자자들이 옥석 가리기에 돌입하자 더 이상 이런 사업 방식을 유지하긴 어려워졌다. 아이젠먼 교수는 “지금은 (외형 확장이 아니라) 직원 해고와 가격 인상, 마케팅 축소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창업 비용 크게 줄었다”

아이젠먼 교수는 그래도 여전히 창업을 준비 중인 사업가에게 기회가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생 스타트업의 경우 고금리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다”며 “투자자들도 수천만달러 이상 투자가 필요한 후기 스타트업 대신 수십만달러만 투자해도 되는 신생 스타트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올 3분기 기준 북미의 후기 스타트업 투자 유치액은 155억달러로 2년 전 대비 65% 급락한 반면, 시드 단계 투자 유치액은 31억달러로 28% 줄어드는 데 그쳤다.

-신생 스타트업에 왜 기회가 있다는 건가요.

“좋은 아이디어와 추진력이 있는 경우라면 그렇다는 얘기죠. 이전보다 신중하게 접근하곤 있지만 벤처캐피털은 여전히 시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투자 규모가 작은 만큼 금리 영향을 덜 받고 위험도 적기 때문이죠. 또 시드 투자는 어차피 5~10년을 내다보고 하기 때문에 지금 같은 환경이 오래간다고 보지만 않으면 투자가 가능합니다. 자금 조달 환경이 악화했어도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창업하려면 적잖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시기 같습니다.

“지난 30년간 기술 발전으로 창업 비용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걸 눈여겨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말 인터넷 기반 창업을 하려면 50만달러를 들여 서버를 사고 설치해야 했죠. 고정비용을 감당하려면 벤처캐피털에서 대규모 자금을 투자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IT 인프라를 빌려 쓰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가 자리 잡아 트래픽에 맞춰 비용을 조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예전엔 500만달러 미만으론 창업이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5만달러만 있어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AI 역시 창업 비용을 낮춰줄까요.

“그럼요. 클라우드 컴퓨팅이 등장했을 때만큼 비용 절감이 극적이진 않더라도 20% 적은 직원으로도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운영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마케팅 담당자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AI를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픽=백형선

“AI 투자, 소수의 커다란 승자 나온다”

스타트업 혹한기를 지나는 와중에도 AI 스타트업에는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경제 매체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3분기 글로벌 AI 스타트업에 대한 자금 조달 규모는 지난해 동기 대비 27% 늘어났다. AI 개발자 협업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허깅페이스는 지난 8월 구글·아마존·엔비디아를 포함한 빅테크에서 2억35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오픈AI처럼 생성형 AI 모델을 개발하는 코히어도 지난 6월 엔비디아·오러클 등에서 2억7000만달러를 조달했다.

-AI 투자 붐이 계속될까요.

“물론이죠. AI에는 앞으로도 열광이 넘치고 많은 투자가 이뤄질 겁니다. 과잉 투자처럼 느껴지거나 관련 스타트업이 너무 많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은 큰 변화 속에서 무엇이 성공하고 무엇이 실패할지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많은 투자가 실패하겠지만 일부는 크게 성공할 겁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20여 년 전을 돌이켜보세요. 일반적인 회사는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혔지만 구글과 같은 거대한 승자도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AI 기술에서도 대부분은 실패하겠지만 일부는 큰 성공을 거두겠죠. 벤처캐피털 중에서도 많은 패자가 생기고, 또 소수 큰 승자가 생길 겁니다.”

아이젠먼 교수는 이전에 인터넷 기업 가치를 연구한 결과를 들려줬다. 1995~2001년 미국 2121개 인터넷 기업이 총 850억달러를 투자받았고, 2001년 기준 이들의 총 기업 가치는 투자액보다 높은 986억달러였다. 하지만 이런 기업 가치의 40% 이상이 이베이, 야후, 아마존을 포함해 단 5개 회사에서 나왔다. 인터넷 생태계가 뚜렷하게 성장했지만 개별 기업으로 보면 ‘소수의 커다란 승자’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아이젠먼 교수는 “AI 붐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AFP 연합뉴스

“사전 조사 소홀하면 4개월은 낭비”

아이젠먼 교수는 ‘스타트업 실패 수업’으로 유명하다. 재작년 그는 실패한 스타트업의 패턴과 이를 피하기 위한 가이드를 담은 책 ‘세상 모든 창업가가 묻고 싶은 질문들(원제 Why Startups Fail)’을 펴냈다.

-책에서 언급한 6가지 실패의 함정 가운데 가장 흔한 건 뭔가요.

“‘잘못된 시작’입니다. 많은 창업가가 그들이 정말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를 발견했는지, 또 적합한 해결책을 가졌는지 사전 조사를 하기도 전에 너무 빨리 서비스를 만들고 출시합니다. 하지만 실제 이를 문제라고 생각한 사람이 적거나 제대로 된 해결책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나면 다시 돌아가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최소 4개월이 소모됩니다. 사전 시장조사에 소요되는 4주를 아낀 대신 4개월을 낭비한 셈입니다.”

-왜 사전 조사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기업가이기 때문이죠. 기업가는 일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입니다. 만들고 싶어하고 팔고 싶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속도를 늦추면서 내가 문제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정말 좋은 해결책을 가졌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젠먼 교수는 HBS 재학생이던 수닐 나가라지가 2009년 설립한 ‘트라이앵귤레이트’를 예로 들었다. 나가라지는 사용자가 방문한 사이트 같은 디지털 행동 데이터를 수집해 데이트 상대를 매칭해주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창업 2년이 지나서야 수요가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가라지는 “사람들은 그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자신에게 호응해주길 바랄 뿐 좋은 알고리즘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함께 사업하는 사람들의 중요성도 언급하셨는데요.

“만약 공동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서로의 기술과 경험이 상호 보완적인지 확인하는 시간을 꼭 가지세요. 비슷한 두 사람이 팀을 이루면 인맥도 기술도 확장하지 못합니다. 적합한 투자자를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해당 투자자와 함께 일해본 다른 창업가, 특히 실패한 창업가와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습니다. 잘나가고 있을 때 열광하며 도와주지만, 실패를 관리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고 이때 투자자가 본색을 드러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픽=백형선

“한국, 사업 실패에 관대해져라”

-한국의 스타트업 업계에 조언을 하신다면요.

“한국의 창업 환경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HBS의 한국 학생들이 귀국한 이후에 대부분 삼성 같은 대기업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창업 환경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건 실패에 반응하는 문화입니다. 한국이 한번 실패하면 회복이 힘든 일본에 가까운지, 아니면 (실패에 관대한) 미국에 가까운지 생각해봐야 할 겁니다. 유럽에서도 실패에 대한 낙인이 비교적 강한 프랑스는 영국에 비해 기업가 정신이 낮은 편입니다.”

-한국 정부는 스타트업을 키우고 싶어합니다.

“한국은 정부가 대기업 집단이 강력한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대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너무 많으면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미국 정부는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거대 기업이 힘을 남용하지 않도록 많은 압력을 가합니다. 한국에서도 정부와 대기업 사이에 미국 같은 일이 벌어져야 스타트업 환경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픽=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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