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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에 있는 '나이키 하우스 오브 이노베이션' 매장. /어셉트앤드프로시드

2018년 10월 나이키는 중국 상하이에 ‘나이키 하우스 오브 이노베이션’이라는 특화 매장을 열었다. 4개층 3800㎡ 규모의 거대한 매장에는 이색 공간이 곳곳에 들어섰다. 꼭대기층을 방문하면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대로 맞춤형 신발을 만들어볼 수 있고, 로비에선 거대한 디지털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지시에 맞춰 움직이며 신발을 테스트해볼 수 있다. 개장 3개월 만에 하루 3만명이 방문하는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이 매장의 설계는 ‘어셉트앤드프로시드(Accept&Proceed)’라는 영국 디자인 회사가 맡았다.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매장 디자인 분야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이 회사의 데이비드 존스턴(46)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서울에서 WEEKLY BIZ와 만나 “미래의 상점은 물건을 사러 가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모여 어울리기 위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셉트앤드프로시드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존스턴. /이태경 기자

존스턴 CEO가 2006년 세운 어셉트앤드프로시드는 나이키와 협업을 꾸준히 이어왔을뿐 아니라 이탈리아 명품 문구 브랜드 몰스킨의 매장 콘셉트를 구성하고, 미 항공우주국(NASA)의 실시간 위성 데이터를 중계하는 4.5m 높이의 스크린 설치도 담당했다. 존스턴 CEO에게 온라인 쇼핑몰 시대에 오프라인 매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물었다.

“미래의 상점은 물건을 팔지 않는다”

시장조사업체 인사이더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세계 소매판매에서 전자상거래 비율은 올해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온라인 거래가 점점 늘어나면서 소매업체마다 오프라인 매장의 내부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심하고 있다. 존스턴 CEO는 “사람들이 박물관을 구경하러 갔다가 (부수적으로) 기념품도 사서 나오는 것처럼 앞으로는 매장도 경험이 우선인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전기차 업체 리비안이 캘리포니아에 연 '베니스 허브' 내부. /리비안

그는 미국 전기차 업체 리비안이 캘리포니아에 만든 ‘베니스 허브’를 예로 들었다. 재작년 문을 연 이곳에는 전기차도 전시돼 있지만, 동네 사람들의 모임 장소에 가깝다. 친구들과 거닐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정원과 산책로, 아이들을 위한 야외 놀이터가 있다. 건물 안 도서관에선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존스턴 CEO는 “차를 사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적고 그저 가족들과 한번 놀러 가고 싶은 공간일 뿐”이라고 했다.

어셉트앤드프로시드가 나이키 의뢰를 받아 재작년 세르비아에 조성한 친환경 놀이터·농구장도 마찬가지로 지역 주민을 모으는 기능에 중점을 둔 공간이다. 매장에서 모은 2만여개의 헌 운동화를 재활용해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을 만들었다.

존스턴 CEO는 “물건을 전혀 팔지 않는 이 운동장을 리테일 공간으로 볼 수 있는지 되묻겠지만 나는 상점의 미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잠재적인 고객이 모여들어 브랜드와 자연스럽게 친숙해지도록 유도하는 게 오프라인 매장의 목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브랜드가 사람들과 얼마나 강하고 신뢰 있는 관계를 구축하는지가 회사 가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나이키가 '무브투제로(Move to Zero)' 캠페인 일환으로 제작한 친환경 운동장. 어셉트앤드프로시드가 디자인했다. /어셉트앤드프로시드

“브랜드 본질을 먼저 물어라”

사람을 불러모으는 매장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존스턴 CEO는 “브랜드의 본질(essence)을 먼저 이해하라”고 했다. 어셉트앤드프로시드가 상하이의 나이키 특화 매장을 설계할 때 생각한 나이키의 본질은 ‘혁신’이었다. 운동화·운동복을 통해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일이 나이키의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이에 맞춰 존스턴 CEO는 상하이 매장에 나이키의 제품 개발 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전시장을 꾸며 넣었다. 축구화 한켤레를 개발하기 위해 30개 넘는 시제품을 만들고 연구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줬다. 맞춤형 운동화 제작 공간, 실시간으로 운동 기록을 측정해 보여주는 디지털 스크린도 이런 철학 위에서 나왔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몰스킨 특화 매장. 제품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매장 옆엔 카페도 연결돼 있다. /어셉트앤드프로시드

어셉트앤드프로시드가 2018년 작업한 몰스킨 매장의 경우 ‘여행하는 마음가짐’을 본질로 꼽았다. 존스턴 CEO는 “몰스킨 다이어리 뒷면에는 여행 중에 영감을 준 물건들을 담을 수 있도록 한 주머니가 하나 있다”며 “이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모든 풍경과 경험을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여행자를 지원하는 게 몰스킨의 본질이라고 봤다”고 했다. 이런 본질을 구현하기 위해 매장 옆 카페를 만들어 예술가·작가를 초대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했고, 매장 안에 몰스킨 제품을 자신만의 취향에 맞게 커스터마이징(맞춤 제작)할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만들었다.

“지역 특색 반영 디자인도 돋보여”

최근에는 오프라인 매장도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꾸미는 추세가 두드러진다. 패션업체 자라의 경우 증강현실(AR)을 이용해 가상으로 메이크업을 할 수 있는 매장을 선보였다. 존스턴 CEO는 이런 흐름도 무작정 따라갈 게 아니라 사업의 본질을 먼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중국 상하이 '나이키 하우스 오브 이노베이션' 매장 내부. /어셉트앤드프로시드

그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게 혁신을 추구하는 나이키 매장에선 효과적이지만, 모든 브랜드의 매장에서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스킨케어 브랜드 이솝을 사례로 들며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기보다는 현지 특색을 반영한 매장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솝은 일본 삿포로에선 설산(雪山) 이미지를 표현한 매장을 만들고,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선 재즈 클럽 같은 느낌으로 매장을 열었다.

존스턴 CEO는 다양한 요소를 결합시켜 흥미로움을 더하는 전략도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그가 예로 든 독일 베를린의 미첼베르거 호텔은 로비를 수백권의 서적을 갖춘 도서관처럼 꾸몄다. 원숭이 캐릭터가 그려진 자체 코코넛워터 캔 음료도 만들어 판다. 그는 “명품 브랜드 구찌가 세계 곳곳에 레스토랑을 내는 것도 비슷한 흐름”이라고 했다. 패션 매장이 아닌 식당으로 공간을 변주해 브랜드를 보다 흥미롭게 인식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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