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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는 포뮬러원(F1) 그랑프리를 유치해 지역 경제가 12억달러를 벌어들이는 잭팟을 터뜨렸다. 지난달 17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이 기습 해고 통보를 받았던 장소도 바로 F1 경기를 지켜보던 호텔 방 안이었다. /포뮬러원

지난달 1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사흘에 걸쳐 모터 스포츠 경기의 꽃인 ‘포뮬러원(F1) 그랑프리’가 열렸다. 관광 비수기인 11월에 그야말로 ‘잭팟’이 터졌다. 직관을 위해 라스베이거스에 몰려든 관광객만 31만여 명에 달했다. 경주가 열린 사흘간 도시 전체가 12억달러(약 1조5600억원)를 벌어들였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도시 역사상 최고의 달’ ‘수퍼볼 두 번 치른 경제 효과’와 같은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라스베이거스에서 13개 카지노 호텔을 운영하는 MGM리조트는 이번 F1으로 2019년 CES(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때 세운 매출 기록을 깨고 사상 최대 수익을 냈다고 했다.

세계 경제가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활력을 찾고 있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금리 장벽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세계 경제에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져 있지만 메가톤급 스포츠 행사가 가져오는 막대한 경제적 효과가 단비가 되고 있다. 대형 스포츠 대회를 직관하러 떠나는 스포츠 관광은 최근 여행 산업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라고 세계관광기구(UNWTO)는 설명한다. 현장에 찾아간 스포츠 팬들은 호텔, 식당, 주유소, 백화점, 관광 명소를 누비며 거침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여행업계는 스포츠 관광이 경기 침체와 여행 비수기를 메우는 거대 산업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래픽=김의균

◇스포츠 관광, 경제에 단비

도박과 유흥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던 라스베이거스는 요즘 ‘스포츠 메카’로 변신 중이다. 지난달 F1 그랑프리에 이어 내년 2월에는 NFL(미 프로풋볼) 수퍼볼이 개최된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은 F1 그랑프리와 수퍼볼을 합쳐 18억달러(약 2조3400억원)의 경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내다본다.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은 “요즘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스포츠 열풍이 도시에 진정한 기회가 된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동부에서는 보스턴이 매년 4월 스포츠 특수를 누린다. 유서 깊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4월마다 도시 전체에서 1억달러(약 1300억원)를 벌어들인다. 보스턴 관광청에 따르면 100여 국에서 참가하는 마라톤 주자 3만여명은 통상 3명의 여행객을 대동하고 와서 평균 3박을 묵는다. 대회 기간에는 70% 중반인 호텔 점유율도 90% 이상 치솟는다.

지난달 5일 열린 미국 뉴욕 마라톤은 참가 희망자가 사상 최고치인 12만5000명에 달했다. 주최측은 이 중 5만명을 추첨해 참가 자격을 부여했다. /AP 연합뉴스

스포츠 관광을 통한 거대한 돈벌이는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언스트앤영(EY)에 따르면,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코로나 팬데믹이 확산한 2019~2020 시즌에 영국 경제에 76억파운드(약 12조5000억원)의 부가가치와 9만4000개 일자리를 창출했다. EY는 “프리미어리그는 매년 50만명 넘는 해외 관광객을 영국으로 끌어모은다”며 “65만여 건에 달하는 영국 여행 상품과 결합해 4억4200만파운드(약 7300억원) 관광 수익을 창출하는 중요한 국가 자산”이라고 했다.

120년 전통의 국제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는 유럽을 넘어 미국과 아시아 관광객까지 끌어모으고 있다. 지난해 출발지였던 덴마크에는 관광객 72만2000명이 몰려 나흘간 1억760만달러(약 1400억원)에 달하는 지역 소비를 일으켰다. 크리켓이 ‘국민 스포츠’로 통하는 인도에서는 지난 10~11월 열린 인도 ICC 크리켓 월드컵을 통해 2200억루피(약 3조4500억원) 상당의 경제 효과를 얻었다. 조지워싱턴대 스포츠경영학과 리사 네이로티 교수는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응원하는 멕시코 팬, 독일의 NFL 팬, 영국의 MLB 야구팬이 선수를 따라다니며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고 CNBC에 말했다.

지난 7월 16일 세계 최고 권위 사이클 대회인 뚜르 드 프랑스의 15스테이지 결승선에서 최고 스타 요나스 빙예고르와 타데이 포가차가 질주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라커룸 방문부터 한정판 명품까지

스포츠 관광객을 잡기 위한 유통업계의 마케팅 전쟁도 치열하다. 해외 경기까지 쫓아가는 열성팬들이 굿즈를 사모으기 위해 지갑을 거침없이 연다는 걸 노린다. 스위스 명품 시계 리처드 밀은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을 기념하는 100만달러(약 13억원)짜리 초고가 한정판 시계 50점을 모두 팔아치웠다. 2000년대생 테니스 스타 카를로스 알카라즈(스페인)와 야닉 시너(이탈리아)의 경쟁은 알카라즈를 후원하는 루이뷔통과 시너를 후원하는 구찌 사이의 코트 밖 명품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올해 1월 호주 오픈에서 라파엘 나달이 리처드 밀 시계를 차고 경기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이 밖에 에너지 음료 기업 레드불은 축구, 모터 스포츠부터 절벽 다이빙·윙슈트 종목까지 두루 후원한다. 레드불은 직접 스포츠 의류 브랜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샤넬, 휴고 보스와 타미 힐피거도 모터 스포츠 인기에 탑승해 잇따라 F1 콜렉션을 내놓고 있다.

떠오르는 테니스 스타 야닉 시너는 경기에 구찌 투어백을 들고 다니며 큰 화제를 모았다. /구찌

미국의 일부 대형 여행사들은 고급 스포츠 관광에 특화한 패키지 상품을 선보이며 부유층 스포츠 팬을 겨냥한다. 수퍼볼, NBA 결승전, 윔블던, PGA 챔피언십 등이 열릴 때마다 VIP용 입장권, 스타 선수와의 만남, 라커룸 방문 상품을 묶어 파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부킹닷컴은 올해 미국 MLB와 여행 파트너십을 맺었다. MLB 노아 가든 최고수익책임자(CRO)는 “매년 여름 미국 전역에서 열리는 2000여 개 경기 관람객들이 야구 여행을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부킹닷컴과 손잡고 MLB 예매 사이트에서 경기장 근처 숙박 상품을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 ‘스포츠 워싱’ 논란도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 돈 잔치가 벌어지면 이면에는 그늘이 드리워진다. 국가나 도시를 둘러싼 부정적인 평판을 스포츠로 세탁하는 이른바 ‘스포츠 워싱’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1월 사우디 아라비아 알나스르로 이적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성대한 입단식을 갖고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대표적인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다. 사우디는 막대한 오일 머니를 풀어 e스포츠 월드컵(2024), AFC 아시안컵(2027), 동계 아시안게임(2029), 하계 아시안게임(2034), FIFA 월드컵(2034)까지 대규모 대회 유치를 싹쓸이하고 있다. 사우디 국부 펀드는 378억달러(약 49조원)을 투입해 사우디를 글로벌 스포츠 허브로 키울 방침이다. 지난해 열린 카타르 월드컵도 여성 및 성 소수자 차별과 이민자 학대 논란을 덮는 행사라는 비판이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일 머니가 세계 스포츠 권력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며 “적지 않은 리그, 팀, 선수들이 막대한 오일 머니를 거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스포츠 워싱으로 국내총생산(GDP)이 1% 늘어날 수 있다면 스포츠 워싱을 계속하겠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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