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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기기가 삶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신체의 일부로 느껴지는 시대다. 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은 하루 평균 6시간 37분을 스마트폰, 태블릿PC, TV 같은 스크린을 쳐다보며 살아간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우리는 자꾸 스마트폰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집중력을 잃어가고 있다.
킹스칼리지런던 조사에 응한 영국 성인들은 하루 평균 스마트폰 확인 횟수가 25차례일 거라고 답했지만, 실제로는 잠금 해제를 한 횟수가 49~80회에 달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예전보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졌다” “소셜미디어와 TV가 주의력을 끊임없이 빼앗고 있다”고 답했다.
인간이 집중력을 상실한 시대를 맞아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극복해내야 하는지를 끈질기게 파고든 영국의 중견 언론인 요한 하리(44)에게 전 세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인간이 집중을 못하는 병리 현상을 분석해 하리가 지난해 출간한 ‘도둑맞은 집중력(원제 Stolen Focus)’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책을 내기 위해 그는 3년간 세계를 누비며 200명 넘는 전문가를 만났다.
하리는 WEEKLY BIZ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우리의 주의력은 무너졌다기보다는 아주 강력한 힘에 빼앗겼을 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빅테크가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을 활용해 스마트폰을 자주 열고 오래 머물게 하면서 돈을 버는 사이 당신의 주의력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방식으로 인간의 주의력이 나빠질수록 테크 기업이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한국인들에 대해 하리는 “지나치게 긴 근로시간 탓에 집중력을 잃고 있다”며 “충분한 숙면을 취해 생산성을 끌어올리라”고 조언했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정치학·사회학을 전공한 하리는 2003년 ‘올해의 젊은 영국 기자상’, 2007년 국제엠네스티의 ‘올해의 신문기자상’을 수상했다. 뉴욕타임스, 가디언, 르몽드 등 유력 일간지에 기고를 해왔다. 그의 테드(TED) 강연은 9300만회 이상 조회됐다. 작년에 출간한 ‘도둑맞은 집중력’은 40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으며, 지난해 아마존의 ‘올해의 3대 도서’ 중 하나로 선정됐다. 한국에도 지난 4월 출간돼 7개월 만에 15만부가 팔려나갔다.
◇산만함은 전 세계적 유행병
-집중력 위기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산만함은 이미 전 세계인이 맞서 싸워야 하는 질병이 됐다. 서구 세계의 유행병이 된 비만처럼 말이다. 주의력을 빼앗기는 시간 자체보다도 다시 집중할 수 있도록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게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낮은 인지 능력으로 작업하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사람은 문자 메시지를 받으면 읽고 답장하는 데 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전의 집중 수준으로 돌아가기 위해 평균 23분이 걸린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이것이 바로 전환 비용(switch cost)이다.”
인간이 하루에 전자기기 화면을 보고 있는 ‘스크린 타임’이 평균 6시간 37분이지만, 집중력을 잃음으로써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하리는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두뇌 연구를 진행하는 얼 밀러 교수를 만났을 때 “인간은 의식적으로 한 번에 한두 개의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힌트를 얻었다. 사람들은 일할 때 스마트폰을 켜두고 수시로 확인하고 있는데, 이런 ‘멀티 태스킹’을 하면서 주의력을 잃는 값비싼 전환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하리는 지적했다.
-멀티 태스킹이 왜 나쁜가?
“프린터를 만드는 회사인 휼렛패커드에서 직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실험했다. 이메일과 전화를 받으며 일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IQ가 평균 10점 떨어졌다. 이는 대마초를 피웠을 때 단기적으로 IQ에 가해지는 타격보다 두 배나 크다. 일할 때 문자와 페이스북 메시지를 자주 확인하느니 책상에서 마약을 하는 쪽이 집중력에 미치는 타격이 덜하다는 뜻이다. 우리 뇌는 끊임없이 저글링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한 대가는 크다. 스마트폰을 가진 거의 모든 사람이 20~30% 정도의 지적 능력을 잃고 있다.”
-디지털 기기를 멀리함으로써 집중력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나?
“그건 마치 개인에게 다이어트 책을 주며 비만을 해결하겠다는 것과 같다. 우리 문화에 근본 원인이 있는 거대한 문제를 개인 차원의 해결책을 제시하며 끝내려는 잔혹한 낙관주의다. 중독적인 고가공 식품을 양산하는 식품 공급 체계, 인간을 과식으로 몰고 가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바꾸지 않고서는 사회적 유행병인 비만을 고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의력 뺏어 돈 버는 인스타그램
하리는 인간의 집중력을 도둑질하는 주범이 소셜 미디어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얻고 있는 구글과 메타 같은 테크 기업이라고 본다. 메타의 경우 인스타그램을 인수한 2012년(50억달러)과 비교하면 작년 매출이 1116억달러(약 147조원)로 10년 만에 23배로 뛰었다. 하리는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소셜 미디어 세계를 구축한 이들을 만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테크 기업이 무슨 죄라는 건가.
“실리콘밸리에서 지금의 세상을 설계한 이들이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웠다. 소셜 미디어가 광고로 돈을 버는 방식이 집중력 위기의 핵심 요소라는 걸 그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 인스타그램을 열면 메타는 두 가지 방식으로 즉시 수익을 낸다. 첫 번째는 광고이고, 두 번째는 훨씬 중요하다. 사용자가 하는 모든 행동을 알고리즘으로 스캔하고 분류해 무엇이 당신을 자극하고 화나게 하는지 알아낸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신이 계속 화면을 내리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집중력을 잃게 한다는 것인가.
“빅테크는 당신의 취향을 파악해 무한 스크롤을 하게 만든다. 당신이 우익 성향이고 컨트리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관련 영상을 많이 보여줄 것이다. 이런 알고리즘의 목표는 하나다. 당신이 스마트폰을 최대한 자주 열고 최대한 오래 거기에 머물도록 하는 것. 그럴수록 더 많은 광고가 표시되니 수익은 더 커진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당신의 주의력은 나빠지고 산만해진다.”
-그런 식의 알고리즘이 집중력 위기만 일으켰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적으로 끔찍하게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인간 심리에는 부정성 편향이 있다. 예쁜 꽃보다는 교통사고를 더 오래 바라보는 본성이 있다. 그래서 테크 기업은 당신이 앱을 열 때 무엇이 당신을 화나고 슬프게 하는지 알아내고 계속 관련한 콘텐츠를 보여준다. 그게 성별이나 세대, 정치적 대립이 극심하게 충돌하도록 부추긴다. 독일에서는 네오나치 단체에 가입한 사람들 중 3분의 1이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특별히 추천해 가입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기업에 수익을 포기하라고 할 순 없지 않나.
“빅테크는 인간에게 해가 덜 미치도록 충분히 소셜 미디어를 재설계할 수 있다. 페이스북이 하루 한 번만 푸시 알림이 뜨도록 하거나, 일일이 누가 내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고 댓글을 남겼는지 알려주는 대신 신문처럼 모든 정보를 요약한 내용을 하루 한 번만 보낼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 일주일도 걸리지 않는 일이다. 이렇게 바꾸지 않는 이유는 테크 기업의 수익에 더 많이 기여하는 주된 고객이 이용자보다는 광고주이기 때문이다. 테크 기업이 이용자의 주의력을 약화시켜 돈을 버는 인센티브 구조를 중단해야 한다.”
◇ “아이들을 밖에서 뛰어놀게 하라”
하리는 소셜미디어가 인간의 집중력을 침해하도록 설계된 방식을 간파한 이후로는 사용법을 바꿨다. 1년 중 6개월은 소셜 미디어를 전혀 쓰지 않고, 그 기간엔 친구에게 소셜 미디어 비밀번호를 바꿔달라고 부탁한다. 또 글을 쓰기 위해 하루 3시간씩 일정 시간 절대 열리지 않는 금고에 스마트폰을 넣어둔다. 반드시 매일 한 시간 산책을 하며 주의력을 회복할 시간을 갖는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외딴 마을인 프로빈스타운에서 3개월간 인터넷을 쓰지 않으며 생활해보기도 했다.
-인터넷 없는 생활은 어땠나.
“모든 것이 느긋해졌다. 평소에 거의 한 시간마다 뉴스를 확인하며 불안을 일으키는 불확실한 정보를 끊임없이 접했었는데, 거기서는 그럴 수 없었다. 아침마다 종이 신문 세 종을 사서 읽었다. 내가 평소에 온라인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이 공포를 유도한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날 사람들은 1950년대보다 더 빨리 말하고 더 빨리 걷는다는 연구가 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주의력을 기울이기 어렵다. 빨리 읽을수록 기억력과 흡수력, 이해력이 떨어진다. 뉴스를 스마트폰이나 트위터 피드로 훑어보면 빠르게 읽지만 신문으로는 훨씬 더 천천히 읽는다. 하루 종일 무언가를 걱정할 필요 없이 중요한 일들에 대한 요약본을 인쇄해서 읽을 수 있으니 신문은 정말 비범한 현대적 발명품 아닌가?”
하리는 또한 어린아이들이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어른들이 세심하게 보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중력 저하로 고통받는 건 어른들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놀아야 집중력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밖에서 뛰어노는 것과 집중력은 어떤 상관 관계가 있나.
“1960년대 미국에서는 말 그대로 모든 아이들이 밖에서 놀았다. 혼자 걸어서 학교에 가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집 밖을 떠돌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그렇지 않다. 어른의 감독 없이 밖에서 노는 아이들이 크게 줄었다. 이렇다 보니 아이들이 삶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는 작은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위험과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고 주의력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독립심을 키우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렛그로(let grow) 같은 비영리단체도 생겼다는 걸 눈여겨봐라. 한국에서 아이들이 잠을 덜 자고 시험을 위해 무의미한 것들을 암기하도록 설계된 학교를 다니면서 산만함을 더 심하게 느끼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 “한국인은 일 덜하고 숙면 취하라”
하리는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장시간 근로에서 벗어나고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해야 집중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싱가포르국립대와 핀란드 스타트업 오우라헬스가 2021년 한 해 35국 22만명 수면 습관을 분석했는데, 한국인의 수면 시간은 평균 6.3시간으로 일본(6.1시간)에 이어 뒤에서 둘째였다. 근로시간도 연평균 1910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다섯째로 오래 일한다.
-잠을 덜 자고 일을 많이 하면 왜 집중력이 떨어지나.
“한국인의 수면의 질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낮다는 게 문제다. 수면 전문가인 찰스 자이슬러 박사에 따르면, 우리가 깨어 있을 때 뇌세포 폐기물을 쌓아간다. 8시간 동안 숙면을 하면서 뇌는 이런 폐기물을 청소할 기회를 얻는다. 만약 19시간을 깨어 있으면 술에 취한 것처럼 주의력이 떨어진다. 한국인이 지쳐 있는 정도는 나 같은 외부인이 보기에 극심한 편이다. 수면과 스트레스가 특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집중력이 떨어지다 보니 길게 일하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역설이 연출되고 있다고 하리는 지적했다. 한국인이 시간당 벌어들이는 국내총생산(GDP)은 43.1달러로 OECD 하위권인 28위다.
-오래 일해 집중력이 떨어지면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치나.
“한국은 생산성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갖고 있다. 아침에 제일 먼저 출근하고 밤에 가장 늦게 퇴근하며, 이메일에 즉시 답장하고, 쌓인 스트레스는 모두 흡수하고 절대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직원이 유능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전날 밤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고 지친 상태로 스마트폰을 쥔 채 경기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산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직장인들을 비생산적으로 만들고 있다.”
-근로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내 밥줄이 달려있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한다. 2017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구조적 변화를 말해주고 싶다. 당시 프랑스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제화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정말로 이런 변화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촉구하고 싶다. 개인이 스마트폰을 스스로 자제하려고 금고에 넣어놓으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렇게 하면 직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못 하는 것 아닌가.”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으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리는 “주의력은 인간의 초능력”이라고 했다. 그는 “당신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취가 있다면 엄청난 양의 지속적인 주의력이 필요하다”며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즐거움은 인스타그램 업데이트에서 얻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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