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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의균

중국 경제에 불황의 그림자가 깊다. 11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0.5% 하락했다. 2020년 11월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10월(-0.2%)에 이어 두 달 연속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에 머물자 중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진에 빠진 중국 경제에 대해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의 리처드 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과거 버블 붕괴기 일본과 같은 대차대조표 불황에 빠져들었다”고 진단했다.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 Sheet Recession)은 쿠 이코노미스트가 불황을 설명하려 고안해 낸 분석 틀로서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비롯한 세계적인 석학들이 인용한 개념이다. 가계 빚이 많은 상황에서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의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부채 상환에 전념하기 때문에 경기가 얼어붙는 현상을 말한다.

쿠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WEEKLY BIZ와 화상으로 만나 “중국은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와 중진국 함정이라는 문제를 동시에 떠안고 있다”며 “중국이 막대한 돈을 푸는 재정 정책을 펴지 않는다면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리처드 쿠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쿠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에서 태어난 대만계 미국인이다. UC 버클리를 졸업하고, 존스홉킨스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뉴욕 연방준비은행을 거쳐, 1984년부터 노무라종합연구소에 몸담고 있다.

◇일본 버블 붕괴보다 타격 크다

쿠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일본의 버블 붕괴와 비교해 지금 중국의 상황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불황과 인구 감소가 맞물렸다는 점이다. 쿠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에서는 1990년 버블 붕괴 이후로도 2009년까지 19년간 인구가 증가했다”며 “중국에서는 자산 거품이 꺼지는 동시에 인구도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이 다르다”고 했다. 그는 “이제 중국에서는 모두가 인구 감소를 걱정하며 집을 사려고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둘째는 중국에서 주택 가격이 하락하며 가계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쿠 이코노미스트는 “1990년대 일본에서는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에 가계가 아닌 기업이 문제의 중심에 있었다”며 “중국의 경우 많은 가계가 부동산 거품과 연결돼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했다.

쿠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주택 시장 붕괴가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2010년대 유럽을 덮친 경제 위기도 일종의 대차대조표 불황이었는데 정부 대응은 성공적이지 못했다”며 “스페인에서는 실업률이 20% 넘게 치솟으면서 정권이 교체됐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는 위기 시 개인들을 보호할 복지 제도가 아직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불황의 늪이 깊어지면 국민의 불만이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의균

◇“거대한 재정 투입 필요”

지난 10월 중국 정부는 1조위안 규모의 국채를 추가 발행하기로 했다. 자산 가격 급락에 대응하면서, 지방정부의 자금난을 해소해 주는 차원이다. 쿠 이코노미스트는 “1조위안 규모의 재정 부양책으로 부족하다”며 “3조~4조 위안 규모는 되어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같은 일부 석학은 중국이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펴더라도, 기존의 부동산·인프라 사업에 돈을 쏟아붓는다면 경기 부양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쿠 이코노미스트는 “경제가 빠르게 무너지는 상황에서는 당장 돈을 쓸 수 있는 곳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맞는다”고 강조한다. 중국이 돈을 써야 할 분야를 가릴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얘기다.

중국 정부가 대규모 재정 투입을 망설이는 것은 이미 큰 폭의 재정 적자로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중앙정부는 재정상 큰 문제가 없지만 지방정부와 합쳐서 보면 재정 적자와 부채 증가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금 당장 재정 정책으로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많은 조치를 취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쿠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국채 수익률만 봐도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책에 쓸 자금을 충분히 끌어올 여력이 있다”고 했다. 그는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연 2.6%대라는 것은 여전히 시장에서 중국 국채를 환영한다는 의미”라며 “자금 조달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침체, 일본에는 기회”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인 갈등이 고조된 것도 중국의 경기 위축에 영향을 미쳤다. 쿠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기업들은 대차대조표 불황이 시작되기 이전에도 생산 시설에 대한 투자를 줄여왔다”며 “(지정학적 갈등의 여파로) 서방 시장에 대한 접근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서방시장을 구성하는 국가의 경제력은 전 세계 GDP의 60% 정도 된다”며 “중국 제조업체들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고객들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 불황의 여파는 전 세계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위험 요인이다. 다만 일본에는 ‘기회’가 되는 측면이 있다고 쿠 이코노미스트는 진단했다. 그는 “중국에 투자하던 외국인 사업가들이 일본에 투자하게 되면서 일본 경제에는 도움이 된다”며 “심지어 중국 부동산 기업이나 투자 회사들도 자국에서 자금을 빼서 일본으로 옮기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중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 다시 복귀하려면 정부의 정책 수정이 필요하다고 쿠 이코노미스트는 말한다. 그는 “중국이 무역 흑자를 기록한 건 WTO(세계무역기구) 규정을 수없이 위반한 결과였다”며 “지식재산권을 존중하고 과도한 보조금 지급을 없애는 방향으로 보호주의 정책을 철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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