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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

2023년 세계 경제는 높이 올라간 놀이공원의 청룡열차 같았다. 지상에서 번지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불길을 피하느라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서둘러 끌어올렸다. 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는 16년 만에 5%대 금리로 인상했고, 유로존(유로화 쓰는 20국)도 15년 만에 4%대 금리 시대를 맞았다.

이제 금리 인상은 마무리됐다. 2024년에는 청룡열차가 얼마나 더 정점에 머물다가 하강하게 될지, 어떤 속도로 내려갈지에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잦아들지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뿐 아니라 내려가는 길목에 중국 경제 둔화, 세계 각지의 지정학적 갈등과 같은 잠복한 다른 요인들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게다가 미국 대선을 비롯해 주요국의 다양한 선거도 고려 대상이다.

2024년 세계 경제 앞에는 이처럼 경기 하강을 부채질할 수 있는 다양한 변수가 놓여 있다. 물론 인플레이션 위험이 옅어지고 그에 따라 금리가 하락하면서 경기를 띄울 수 있는 상승 연료도 준비돼 있다. 안갯속에서 조금이라도 가시 거리를 확보해보기 위해 WEEKLY BIZ는 세계 경제·경영 분야 석학이나 글로벌 투자기관의 이코노미스트 또는 투자책임자 24명에게 내년 세계 경제의 향방을 물었다.

그래픽=양진경

◇24명 중 21명 “성장 속도 느려질 것”

전문가 24명 가운데 21명은 내년 세계 경제의 성장 속도가 올해보다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보다 가시밭길이 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셈이다.

무엇보다 가파르게 금리를 끌어올린 후폭풍이 내년에 본격적으로 다가오면서 성장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2022~2023년 통화 긴축의 영향이 시차를 두고 나타나면서 선진국, 특히 미국의 성장률 둔화가 예상된다”고 했다.

세계 경제의 양대 기둥인 미국과 중국의 여건이 모두 좋지 않다는 데 주목하는 전문가도 여럿이다.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는 “미국의 일자리 창출이 둔화하고 있고, 중국은 (국가부채 부담을 고려해) 거시경제 부양책을 사용하는 데 신중한 상태”라고 했다. 존 퀠치 전 마이애미 경영대 학장도 “세계 경제의 주요 엔진인 미국과 중국이 모든 실린더를 가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2024년 하반기까지는 성장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역시 “부동산 침체로 둔화되기 시작한 중국 경제의 부진이 2024년에도 계속되고, 미국 경제 역시 급격한 금리 인하 여파로 성장 속도가 늦춰질 것”이라고 했다.

국제기구들도 이런 전문가들의 의견과 궤를 함께한다.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은 3%에서 2.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9%에서 2.7%로 하락할 것으로 내다본다. 욘 파렐리우센 OECD 한국경제담당관은 “긴축적인 금융 상황, 교역의 약화, 소비 심리 악화 등이 세계 경제 성장률 둔화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다만 성장 속도가 올해보다 낮아지더라도 대다수 전문가들은 급격한 추락이 아니라 완만한 하강을 점친다. 앤젤 유비데 시타델증권 채권·거시경제 리서치 대표는 “성장 속도가 느려질뿐 경기 침체를 예상하지는 않으며, 침체가 발생하더라도 경미할 것”이라고 했다. 존 롱고 럿거스대 교수는 “미국 경제가 내년에 침체에 진입하더라도 6개월 정도 지속되는 짧은 종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고, 마크 헤펠레 UBS글로벌WM 최고투자책임자는 “불확실성이 크지만 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한 성장도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의균

◇지정학적 불안이 위험 요인

2024년 세계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전문가들은 지정학적 불안을 꼽았다. 요시 셰피 MIT 교수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과 러시아·중국·이란·북한·테러단체 사이의 긴장이 증폭되는 부분이 위험 요인”이라고 했다. 마크 잰디 무디스 애널리틱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긴장관계 고조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세계 무역과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마크 레빈슨 전 이코노미스트지 금융·경제 에디터는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이후 홍해에서 선박을 공격하는 일까지 번진 것처럼 일단 총성이 울리면 지역 분쟁은 쉽게 확산한다”며 “예상치 못한 무력 충돌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게다가 내년에 예정된 주요국 선거가 지정학적 요인과 결합해 경제에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퀠치 전 마이애미 경영대 학장은 “미국 대선이 있는 해에 러시아나 북한의 기회주의적 행동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찰스 굿하트 런던정경대 명예교수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이 세계 경제에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필 매킨토시 나스닥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기 둔화가 해고로 이어지면 소비자 지출이 줄어들고 기업 매출이 감소하면서 다시 경기가 둔화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반대로 경기를 반등시키거나 급격한 추락을 막을 긍정적인 기회 요인도 다양하게 제시됐다. 프레데릭 에릭손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 소장은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면서 글로벌 경제가 보다 나은 상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고, 란 하 유로모니터 이코노미 프랙티스 글로벌 총괄도 “인플레이션 둔화는 가계에 숨통이 트이게 해서 소비 동력을 일정 부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했다. 페드로 팔란드라니 글로벌엑스 리서치센터장은 수치로 설명했다. 그는 “1년 전만 해도 주요 13국 기준금리가 연 2.53%, 물가가 7.91%였지만 이제 기준금리가 4.24%로 거의 2배가 된 반면 물가는 2.53%로 내려갔다”고 했다.

AI(인공지능)가 경기를 떠받치는 안전판이 될 가능성을 지켜보라는 의견도 있다. 안토니오 파타스 인시아드 교수는 “AI 관련 기술이 거시경제 데이터에 나타나기 시작하면 경제 전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했다.

◇금리 인하 시기, 하반기에 무게

투자자들의 관심은 연준이 언제 금리를 내리기 시작하느냐에 쏠린다. 연준은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내년 말 기준금리를 현재보다 1%포인트 가까이 낮은 연 4.6%로 낮추겠다고 시사했다. 금리 인하에 돌입하는 시기에 대해 24인의 전문가 중 내년 상반기(8명)라고 내다본 이들보다는 하반기(14명)라고 응답한 이들이 더 많았다. 2025년 이후라고 했거나 응답하지 않은 전문가는 2명이었다.

상반기에 바로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물가 부담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데이비드 웡 얼라이언스번스타인 선임투자전략가는 “금리가 급격히 하락할 것으로 보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내년 3분기에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로치 예일대 교수는 “연준의 물가 목표치(2%)를 훨씬 상회하는 4% 내외의 근원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연준이 예상보다 더 오랫동안 고금리를 유지할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란 하 유로모니터 이코노미 프랙티스 글로벌총괄은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 완화)이 지속되고 일자리 증가를 포함한 경제 활동이 더 크게 약화되면 하반기쯤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상반기에 연준이 서둘러 금리를 내리기 시작할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롱고 럿거스대 교수는 “첫 번째 인하가 5월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만 경제가 약해지면 3월로 당길 수도 있다”고 했다. 러스 몰드 AJ벨 투자책임자는 “금리 인하가 경기 연착륙이나 물가 안정 때문이 아니라 성장세 약화나 높은 국채 금리에 대한 채권 시장의 우려 등 예상치 못한 이유로 단행될 수 있다”며 상반기 인하를 점쳤다. 스티븐 도버 프랭클린템플턴 리서치센터장은 상반기에 금리 인하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2%대 물가 복귀가 쉽지 않아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금리 인하 시기가 미국 대선 일정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레빈슨 전 이코노미스트지 금융·경제 에디터는 “미국 대선이 임박해 정치적 편향성을 보인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상반기부터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굿하트 런던정경대 명예교수는 “5월에 금리를 내리지 않을까 싶다”며 “하반기가 되면 선거와 너무 가까워진다”고 했다. 반대로 셰피 MIT 교수는 “(연준이)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재선을 돕기 위해서라도 하반기에 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미국 주식시장에는 파란불

불확실성이라는 안개가 드리워져 있지만 내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주식시장의 전망은 어둡지는 않다. 무엇보다 금리 인하가 예고돼 있어 주가가 순풍을 탈 가능성이 작지 않다. 전문가 24명 가운데 전반적인 상승세를 예견한 이가 9명으로서 전반적인 하향세를 내다본 이들(2명)보다 훨씬 많았다. 물론 시장을 예측하는 건 쉽지 않다. 횡보에 머무를 것으로 본 전문가도 7명이었고, 6명은 답변을 피했다.

켄 피셔 피셔인베스트먼트 회장은 “내년이 강세장이 될 이유가 많다”며 “코로나 사태에서 정상적인 경제 상황으로 복귀가 내년에도 계속되면서 봄이 오듯 거시경제는 물론 주식시장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도버 프랭클린템플턴 리서치센터장은 “디지털 전환이 기업들의 사업 운영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으면서 고객과 주주에게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마이클 하트넷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수석투자전략가는 “2024년에 S&P500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5000선도 넘어설 것”이라며 “거시 측면에서 불확실성 국면이 지났고 시장은 상당한 규모의 지정학적 충격을 이미 흡수했다”고 말했다. 웡 얼라이언스번스타인 선임투자전략가는 “기업 이익이 반등하고 소수 종목 쏠림 현상이 완화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식시장에 대해서는 신중한 전망도 적지 않다. 기우치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본격적 불황이 찾아온다면 주가가 20% 하락하는 수준의 증시 불황도 예상한다”고 했다. 몰드 AJ벨 투자책임자는 “(애플·엔비디아 등 핵심 빅테크 7종목을 말하는) ‘매그니피센트 7′이 과도하게 커졌고, 이런 종목에서 중소형주로 (투자가) 이동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이지만 당장 (내년에) 증시의 빠른 상승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횡보를 점친 전문가들은 “2023년이 주식시장이 강세였고 내년에는 경기 둔화에 의한 횡보가 예상된다”(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거나 “‘랜덤워크’(주가 변화가 과거 변화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무작위 행보를 의미)를 상대로 베팅하지 말라”(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는 의견을 냈다.

◇AI 돌풍은 계속 이어진다

내년에 산업계를 주도할 이슈를 묻는 질문에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AI 돌풍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파타스 인시아드 교수는 “(과거의) 디지털화처럼 AI는 은행이나 헬스케어를 포함해 많은 산업의 중심이며, 이처럼 중요한 기술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라고 했다.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도 “앞으로 1~2년에 AI만큼 중요한 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에릭손 ECIPE 소장은 “바이오 분야를 지켜보라”며 “세부적으로 mRNA(메신저 리보핵산)에서 새로운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헤펠레 UBS 글로벌WM 최고투자책임자는 탈세계화, 인구통계학, 디지털화, 탈탄소화, 부채 등 5가지 키워드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했다.

현명한 투자를 위해서도 AI를 포함한 산업계 둘러싼 변화를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다. 팔란드라니 글로벌엑스 리서치센터장은 “AI와 관련된 테마의 성장이 예상된다”며 “데이터센터, 로봇, 유전자 치료 등이 그런 분야”라고 했다. 사이라 말릭 누빈 최고투자책임자도 “데이터 스토리지와 연결된 산업이 AI의 영향을 받아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잰디 무디스 애널리틱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미국 주식 상승은 일부 테크 기업에 집중돼 있었다”며 “내년 주가 상승은 나머지 기업에서 대부분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하트넷 BoA 수석투자전략가는 “고금리로 징벌에 가까운 충격을 받은 바이오와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했다.

투자할 때 정치나 국제 정세의 동향을 살펴야 한다는 조언도 많다. 말릭 누빈 최고투자책임자는 “달러 강세가 완화되더라도 신흥국 증시는 지정학적 위험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매킨토시 나스닥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선거는 새로운 정책 제안이나 세제의 변화로 이어진다”며 투자를 위해 내년에 치러지는 많은 선거를 눈여겨보라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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