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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봤는데 이게 ‘안 사오면 후회할 쇼핑 필수템’이래!” “일단 10엔빵(10엔 동전 모양 빵)부터 사 먹자.”
지난달 29일 일본 도쿄 시부야의 메가 돈키호테 매장. 여기가 한국인가 싶을 정도로 한국 관광객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돈키호테’는 “없는 게 없다”는 일본 최대 할인 잡화점. 간식거리부터 화장품, 의약품, 스포츠용품 등을 풀라인으로 갖춘 데다 가격도 저렴해 여행 기념품을 사려는 한국인 여행객들에겐 일본 여행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일반 돈키호테 매장보다 큰 규모의 시부야 메가 돈키호테엔 이날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이 물건 계산대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선 모습이었다. 스웨덴에서 왔다는 프레드리크(37)씨는 “도쿄는 첫 방문인데 돈키호테엔 가성비 좋은 물건도 많은 데다 면세 혜택도 크다고 들었다”며 “곳곳에 영어로 손 글씨가 크게 적혀 있어 외국인 입장에서도 쇼핑할 재미가 났다”고 했다.
◇영업이익 1000억엔 돌파
돈키호테를 운영하는 팬퍼시픽인터내셔널홀딩스(PPIH)는 1989년 도쿄에 돈키호테 1호점을 연 후 올해 6월 기준 1년 결산 영업이익이 처음으로 1000억엔을 돌파했다. 현재 일본 소매업계 매출 순위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세븐앤아이홀딩스가 1위고, 쇼핑몰 이온몰을 운영하는 이온,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퍼스트리테일링, PPIH가 순서대로 뒤를 잇는다. 그런데 영업이익률에서는 4위인 PPIH(5.43%)가 1위인 세븐앤아이홀딩스(4.29%)와 2위인 이온(2.3%)을 모두 뛰어넘은 것이다.
PPIH는 1989년 창사 이래 올해까지 34년 연속 성장세가 꺾이지 않는 진기록도 세우고 있다. 팬데믹으로 일본을 찾는 여행객이 대폭 감소한 시기에도 PPIH 매출은 꾸준히 늘었다. 싱가포르 등 해외 매장에서 일본산 제품을 소개하는 식으로 매출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엔데믹으로 하늘길이 다시 열리면서 올해 매출은 가파른 성장세다. 올해 6월 기준으로 1년 결산 매출액은 1조9368억엔으로 2조엔에 육박했다.
◇쇼핑 ‘재미’ 강조한 저가 백화점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에서 온라인 쇼핑이란 강력한 경쟁 상대까지 맞이한 가운데 돈키호테가 ‘불사조 기업’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첫손에 꼽히는 영업 전략은 바로 ‘재미’다. 우선 돈키호테 매장은 간판을 안 보고 매장에 들어가도 단박에 돈키호테임을 알아챌 정도로 ‘손 글씨’ 광고 문구가 트레이드 마크다. 가격표도 직접 손으로 써서 붙이는 경우가 많다. 매장 특성에 따라 주력으로 내세우고 싶은 상품이나, 할인 품목, 계절성 상품을 화려하고 큼직한 글씨로 써서 강조한다. 이를테면 도쿄역 앞에 외국인이 많이 찾는 돈키호테 매장에선 ‘기념품으로 사 가기 좋은 간식들’을 손 글씨로 큼지막하게 써놓고 전면 배치한다. 지난달 29일 찾은 시부야 메가 돈키호테 매장에서도 매장 한편에 온열팩을 전시해 놓고 팔 모양을 그려 둔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어를 모르는 손님까지 온열팩을 한번 체험한 뒤 구매하라는 의도를 쉽게 알아챌 수 있도록 해 둔 것이다.
여기에 의외의 재미가 더해진다. 이른바 ‘뒤죽박죽 진열’ 작전이다. 허리를 굽혀야 볼 수 있게 바닥 공간에도 상품을 전시하고, 손을 뻗어도 잘 닿지 않게 머리 위까지 물건을 잔뜩 쌓아두고 판다. 그런데 이런 진열 방식이 오히려 돈키호테의 의도된 전략이라고 한다. 돈키호테 창업주인 야스다 다카오는 그의 자서전에서 “쇼핑은 즐거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긴부라(긴자를 하릴없이 걷는 행위)’처럼 ‘돈부라(돈키호테를 찾아와 매장 안을 돌아다니는 것)’를 하는 게 우리의 강점”이라고 했다. 뒤죽박죽 진열된 공간에서 마치 보물찾기하듯 좋은 물건을 찾아내는 기쁨을 느끼도록 하자는 취지다. 시부야 매장을 찾은 사토 아야카(23)씨는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스마트폰을 꾸밀 액세서리를 보고 있다”며 “특별히 필요한 물건이 없어도 약속 시간 전에 들러서 구경하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면세 매출 3분의 1 책임지는 한국
돈키호테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매장의 관광지화’도 꼽힌다. 유명 관광지인 오사카 도톤보리 앞 매장의 경우 외국인 발길이 이어지며 한때 전체 매출의 40%를 면세품이 차지할 정도였다. 매장 외부를 화려한 조명으로 꾸며 야경 명소가 된 도쿄 아사쿠사 돈키호테, 간식과 술 판매로 특화한 도쿄역 야에스 지하상가에 있는 오카시앤오사케 돈키호테 같은 매장도 관광객들이 여행 코스로 많이 들르는 곳이다. 돈키호테의 마스코트인 푸른 펭귄 ‘돈펜’은 돈키호테 매장 건물 외부나 가격표 등 곳곳에 꾸며져 있어, 젊은 세대에게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도 준다.
특히 한국에선 맘카페 등에 ‘돈키호테 쇼핑 리스트’가 돌아다닐 정도로 돈키호테 인기가 계속된다. 지난달 30일 오전에 찾은 오카시앤오사케 돈키호테 매장 안에도 손님 대부분이 한국인 관광객이었다. 점원은 “한국인 손님들이 많이 찾는데 위스키를 사 가는 손님이 특히 많다”고 했다. 면세 혜택, 엔저로 인한 환율 등까지 고려하면 위스키 가격이 국내보다 저렴해 여행 마지막 날 술 사 가는 한국인 관광객이 몰린다는 것이다. 이 매장에선 이런 한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미니어처 술들을 전면에 전시해 두기도 했다. 이날 매장에서 만난 한국인 서모(21)씨는 “3박 4일 일정 중 돈키호테 매장만 세 군데 들렀다”며 “아사쿠사 돈키호테엔 매장에 수족관이 있다고 해서 일부러 여행 계획 코스로 넣기도 했다”고 했다.
돈키호테의 호실적 배경엔 한국 관광객의 힘이 컸다는 분석도 나온다. 엔데믹에 엔저 특수까지 누리며 일본을 찾는 한국 여행객이 크게 불면서, 돈키호테 매장의 면세 매출도 덩달아 뛰었다는 것이다. PPIH 의 올해 6월 기준 1년 결산 치 면세 매출액은 383억엔인데, 이 중 한국인 매출이 약 130억엔(33.7%)으로 압도적 1위였다. 이어 아세안(21.3%), 대만(19.7%), 중국(11.6%), 미국(4.7%) 등의 순이었다. 돈키호테는 외국인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가 매장에선 24시간 영업을 하고, 한국어·중국어로 면세 카운터를 안내하는 식으로 ‘외국인 맞춤형’ 마케팅에도 심혈을 기울여 관광객들의 쇼핑 메카로 등극했다는 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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