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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1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2014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미국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칼럼이 실렸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20년, 30년, 50년 후 음악 산업은 어디에 있을까?’ 음반 판매 시장이 스트리밍 플랫폼 기세에 짓눌리던 굴절의 시점이었다. 당시 데뷔 8년차였던 스위프트는 그 해 발매한 앨범 ‘1989’를 계기로 세계적 팝 스타로 부상했다.
스위프트는 반 세기 후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칼럼에서 “불법 복제, 파일 공유, 스트리밍으로 앨범 판매량이 부쩍 줄면서 많은 아티스트가 타격을 입었다”며 “음악은 예술이고, 예술은 희소한 것으로, 가치가 있는 것에는 응당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썼다. 디지털 기술 변화가 음악 산업의 오랜 사업 모델을 잠식하고 있었다. 세계 음악 시장은 1999년 223억달러에서 2014년 131억달러로 추락했다.
2024년, 이제 서른 넷이 된 스위프트는 ‘현대 음악 산업 그 자체’(블룸버그)를 의미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통한다. 2014년 바닥을 찍었던 음악 시장은 2022년 262억달러 규모로 2배가 됐다. 이런 부흥을 이끈 스위프트를 ‘2023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예술가로서 이룬 업적이 문화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했다.
스위프트의 경영 전략은 산업 전환기의 시장 개척자에게 통찰을 안기는 훌륭한 본보기다. 시대 변화를 포착해 과감한 방향 전환으로 상품 가치를 극대화한 스위프트노믹스(스위프트 경제학)의 성공 비결을 WEEKLY BIZ가 살펴봤다.
◇지진까지 일으켰다…콘서트 여왕
지난해 7월 22일 스위프트의 ‘디 에라스(The Eras) 투어’가 열린 미국 시애틀 루멘필드 경기장. 개장 이래 최대 인원인 7만2171명의 관객이 운집했다. 첫 곡인 ‘미스 아메리카나&하트 브레이크 프린스’가 흘러나오자, ‘스위프티’(스위프트 팬)가 일제히 환호했다. 이날 경기장 주변에선 진도 2.3 규모 지진이 감지됐다.
압도적 규모와 화려함으로 무장한 콘서트는 스위프트를 억만장자로 만든 대표 상품. 지난해 3월 미국 글렌데일에서 막을 연 디 에라스 투어는 올해 연말까지 5개 대륙에서 151차례 열릴 계획이다. 투어의 위력은 물리적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스위프트는 투어 시작 8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단 60회 공연으로 매출 10억4000달러(약1조3000억원)를 쓸어 담았다. 미국 대중음악 콘서트 투어 사상 최초로 10억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스위프트는 3시간30분짜리 공연에서 44곡을 부른다. 16차례에 걸쳐 옷을 갈아 입고, 불꽃, 연기, 색종이, 레이저, 3D 매핑 조명을 헤치며 무대 위를 날아다닌다. 다채로운 예술 세계, 야심찬 공연 기술이 집약된 디 에라스 투어에 대해 빌보드는 ‘반드시 봐야 할 블록버스터’라고 극찬했다. 공연 전문 매체 폴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스위프트의 공연에는 관객이 회당 평균 7만2489명 찾아왔다. 티켓 값은 평균 238.95달러로 일반 공연보다 배 이상 비쌌으며, 재판매 사이트에서 거래된 표 값은 1600달러를 웃돌았다.
◇무엇이든 끼워판다…굿즈 대란
비싼 티켓을 구입한 ‘큰손’ 팬들은 공연장 주변 상권을 점령했다. 뮤직비디오와 가사에는 충성 팬을 위한 ‘이스터 에그’(복선)가 빼곡하다. 이는 곧 굿즈(관련 상품)로 재탄생했다. 구슬 팔찌와 새빨간 립스틱, 티셔츠, 웨스턴 부츠, 맥주 등 먹고 마시고 여행하는 생활 소비재를 망라했다. 시장조사업체 퀘스천프로가 지난해 콘서트 관객 596명에게 설문 조사해 보니 관객 한 명이 공연 도시에 머물며 쓰는 금액은 평균 1279달러(약 166만원)에 달했다.
인플레이션과 싸우던 금융 당국마저 스위프트를 요주의 인물로 주시한다. 미 연방준비은행은 경기동향 보고서 ‘베이지북’에서 “스위프트 콘서트로 지난해 5월 필라델피아 지역 호텔 매출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했다. 8월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는 3300개의 일자리, 1억6000만달러 상당 지역 소비가 일어났다. 지난해 스위프트 공연으로 미국에서 50억달러 경제 효과가 있었다는 분석과 함께 ‘스위프트 리프트(lift·끌어올리다)’란 신조어도 생겨났다.
‘오바마의 경제 스승’으로 유명한 앨런 크루거(1960~2019) 전 프린스턴대 교수는 “1999년 냅스터(최초의 MP3 공유 서비스) 등장 이후 팬이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과 가수가 돈을 버는 방식에 지나친 괴리가 생겼다”며 “이런 상황에서 스위프트는 라이브 콘서트·굿즈 판매를 주요 수입원으로 삼아 팬과 접점을 확대한 시장 개척자이자 경제 천재”라고 평가했다.
◇중요한 건 타이밍…유통의 기술
스위프트는 음원 발매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스위프트는 2014년부터 3년 간 세계 최대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 음원 제공을 거부하는 초강수를 두며 갈등한 적이 있었다. 그는 “스포티파이에서 한 곡이 재생될 때 가수가 얻는 수입은 0.006~0.0084달러에 불과하다”며 거대 플랫폼을 공격했다. 이후 스위프트는 음원 유통 전략을 바꿨다. 2017년 ‘레퓨테이션’을 발표할 때 앨범을 먼저 발매한 뒤, 일정 기간 시차를 두고 스트리밍 플랫폼에 음원을 공개했다. 이렇게 레퓨테이션 앨범은 발매 첫 주에만 120만장이 넘게 팔리며 2017년 최다 판매 앨범으로 등극했다.
암표상과도 전쟁에 나섰다. 스위프트는 콘서트 티켓을 한꺼번에 팔지 않고 오랜 기간에 나눠 판매했다. 상황에 따라 가격을 바꾸는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유동 가격제)’ 전략으로, 일찌감치 암표상이 챙겼을 수입 일부를 끝까지 챙길 수 있었다.
올해 하버드를 비롯한 미국 대학 10여곳에서는 스위프트 영문학, 심리학 등 강의가 잇따르고 있다. 스위프트노믹스와 관련해서는 UC버클리 하스비즈니스스쿨이 올해 그녀의 기업가 정신에 관한 강의를 개설했다. 크리스탈 하란토 교수는 “공연과 인터뷰, 언론 보도를 분석해 팝스타가 어떻게 열성 팬덤을 확보하고, 매력적인 브랜드를 갖추며 음악 산업을 장악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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