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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 CBS 스튜디오 한 층에 마련된 ‘오징어 게임’ 체험 공간. 이곳에서 파는 한국 음식과 한국풍 칵테일까지 큰 인기를 끌면서 ‘소음 방지 대책’까지 내놓아야 할 정도였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는 지난해 일본 인기 만화인 ‘원피스’ 실사(實寫)판 드라마 개봉 시점에 맞춰 캐릭터 피겨, 열쇠고리, 초콜릿, 패스트패션 브랜드 자라와 협업한 티셔츠 등 온갖 굿즈(관련 상품)를 동시다발로 쏟아냈다. 지난해 11월에는 미국 뉴욕 핫소스 편집숍 히터니스트와 함께 인기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핫소스 3종 세트(30달러)를 출시하기도 했다. 그동안 기묘한 이야기로 아이스크림, 냉동 피자, 롤러 스케이트 등 수백가지 상품을 팔아 온 넷플릭스는 기묘한 이야기를 연극 무대에도 올렸다. 올해 마지막 시즌 개봉을 앞두고 지난해 12월부터 영국 런던에서 ‘기묘한 이야기: 첫 번째 그림자’란 연극을 선보인 것이다.

최근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출시된 핫소스와 롤러 스케이트. /넷플릭스 제공

마리안 리 넷플릭스 최고 마케팅 책임자(CMO)는 “열성팬들은 멈추지 않는 식욕으로 내놓는 콘텐츠를 모조리 먹어 치운다”며 “굿즈와 체험 마케팅은 우리가 팬과 교감하는 새로운 방법”이라고 했다. 최근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과 유명 드라마·영화 제작사가 ‘화면 밖 콘텐츠 전쟁’에 화력을 모으고 있다. 박스 오피스 매출이 급감하고, 스트리밍 플랫폼 성장세가 둔화하자 오프라인 현장에서 수익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집 밖에서 팬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드라마 굿즈와 체험 상품은 이제 단순한 부업 수준을 넘어선 상태”라고 보도했다.

◇화면 밖 전쟁, 드라마 멀티버스

스크린 안팎을 넘나드는 ‘콘텐츠 멀티버스(다중우주)’는 요즘 영화 제작 업계의 뜨거운 화두다. 지난 10일 세계 최대 IT 가전 박람회인 CES 2024에서는 넷플릭스·월트디즈니·워너브러더스 등 콘텐츠 공룡 기업이 총출동해 ‘콘텐츠 커머스’의 미래를 논의했다. 넷플릭스는 혼합현실(XR) 장비를 활용해 3월 공개될 공상과학(SF) 드라마 ‘삼체’ 체험 부스를 마련했고, 월트디즈니는 드라마 팬덤을 2000개 잠재 고객층과 150개 핵심 타깃층으로 나눠 쇼핑·게임 수익으로 연결하는 최신 광고 기법을 소개했다.

1990년대를 풍미한 시트콤 '프렌즈'의 주요 배경이었던 '센트럴 퍼크 커피하우스'(오른쪽)가 지난해 가을 보스턴에 문을 열자 소셜미디어에서는 인증 사진(왼쪽)이 잇따르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워너브라더스 제공

영상 콘텐츠 상품은 패션, 가구, 식음료, 공연·전시, 테마파크 등 유통 산업의 모든 영역으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 사업 중요성은 사전 제작 시스템에서 확인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과거 콘텐츠 업계는 프로그램이 히트하고 나서야 굿즈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영상 기획 단계에서 제작자와 협의해 선제적으로 준비한다”고 했다. 뚜껑을 열어 시청자 반응을 확인한 다음 굿즈를 만들면 판매 적기를 놓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2년 흥행작인 드라마 ‘웬즈데이’는, 넷플릭스가 굿즈 판권을 미리 확보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라이선스를 사들이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미국 경제지 포천은 “넷플릭스가 웬즈데이 열풍 초기에 굿즈 사업으로 ‘0달러’를 버는 실수를 했다”며 “틱톡에서 웬즈데이 댄스 영상이 수십억회 조회수를 올리는 동안 팬들은 비공식 굿즈를 사들였다”고 했다.

일본 인기 만화 '원피스' 실사 드라마 개봉에 맞춰 넷플릭스가 쏟아낸 굿즈들. /자라·넷플릭스 제공

◇디지털 격변, 오프라인 시장 키웠다

온라인 콘텐츠 산업이 소비자를 방구석에 붙들어 놓으면서 오프라인 유통을 잠식할 것이란 우려는 이제 구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격렬한 디지털 전환이 (역설적으로) ‘플라스틱 광선검’(스타워즈 굿즈)과 롤러코스터 의존도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월트디즈니의 지난해 3분기(회계연도 4분기) 엔터테인먼트(영화·TV·OTT) 사업 부문 매출은 95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 늘어난 반면, 체험(테마파크·굿즈·호텔) 사업 부문 매출은 81억6000만달러로 13% 증가했다. 디즈니는 향후 10년간 테마파크와 크루즈 사업에 600억달러(약 79조원)를 투자한다는 전략이다.

그래픽=김의균

워너브러더스도 체험 상품을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다. ‘해리포터’를 주제로 한 인터랙티브 전시, ‘프랑켄슈타인’ 공포 체험, ‘배트맨’ 레스토랑 등 오프라인 상품을 잇따라 내놓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워너브러더스가 미국 보스턴에 마련한 시트콤 ‘프렌즈’ 속 카페 ‘센트럴 퍼크 커피하우스’는 주인공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던 주황색 소파를 매장 곳곳에 배치해 큰 인기를 끄는 중이다.

◇남산 돈가스에 줄 서는 외국인들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 중심가 CBS방송국 스튜디오에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 체험 공간(스퀴드 게임: 더 트라이얼 익스피리언스)이 들어섰다. ‘달고나 뽑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게임과 한국 음식을 즐기는 놀이 공간이다. 삼성전자는 이곳에 갤럭시 S23 울트라의 S펜을 설치해 ‘디지털 달고나 게임’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2021년부터 넷플릭스가 오프라인 공간에 마련한 오징어 게임 팝업(임시) 행사에는 지금까지 400만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 문을 연 미국 LA 오징어게임 체험 공간 영상. /넷플릭스 제공

거실 소파에 파묻혀 드라마 정주행을 마친 시청자들은 직접 씹고(음식), 뜯고(언박싱), 즐길 수 있는(공간) 몰입된 경험을 원한다. 요즘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드는 서울 잠수교와 남산 일대 돈가스 식당,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와 김밥집은 모두 드라마 주요 소재로 나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잠수교는 비릿한 범죄 거래 현장(‘발레리나’)이었고, 남산 돈가스는 초능력 엄마와 아들의 기지(‘무빙’)였으며, DDP는 국제학교 신입생 환영 파티장(‘엑스오, 키티’), 김밥은 ‘더 글로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이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국 관련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지역 경제에도 선순환 효과가 일어나고 있다”며 “지난해 ‘엑스오, 키티’ 등 4개 해외 작품에 3억2000만원을 지원한 효과를 분석했더니, 스태프·단역 배우 등 570명 이상의 고용 효과는 물론 제작 과정에서만 5배 이상의 소비 창출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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