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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명 디저트 요리사 피에르 에르메는 지난 2017년 2월 프랑스 우주 비행사 토마 페스케(46·사진)의 생일을 맞아 스페이스X 드래곤 우주선을 통해 라즈베리맛 ‘우주 마카롱’을 국제 우주정거장으로 실어보냈다. 페스케 비행사가 우주선 안에 떠다니는 동글동글한 마카롱을 먹으려고 입을 벌리고 있다. 전투식량 같았던 우주 음식이 달라진 것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

1961년 4월 옛 소련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 유리 가가린은 치약 모양의 알루미늄 튜브에 든 다진 쇠고기를 입에 짜넣어 식사한 뒤 디저트용 초콜릿 소스도 치약 짜듯 짜먹었다. 이듬해 2월 미국 우주선 ‘프렌드십 7호’에 탑승한 우주인 존 글렌 역시 튜브에 든 사과 소스, 갈아 만든 쇠고기, 채소 퓨레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우주 음식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튜브에서 진공 비닐팩, 통조림 형태로 진화했지만, 생존을 위한 ‘전투 식량’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랬던 우주 식량이 달라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우주 개발 열풍과 함께 민간 우주여행 시대가 열리며 ‘우주 맛집’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세계 무대가 좁은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코스 음식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가 하면, 우주에서 농사짓는 푸드테크 연구도 한창이다. 맛있는 음식을 향한 열망이 성층권을 뚫고 우주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그래픽=김의균

◇우주 맛집 ‘신장 개업’

지난해 여름 덴마크 셰프 토르스텐 슈미트(48)는 유럽우주국(ESA) 소속 우주 비행사 안드레아스 모겐센(48)을 위해 7년간 개발한 초콜릿 바 75개를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보냈다. 우주에서 피곤함을 떨쳐내고자 초콜릿을 즐겨 먹는 비행사들을 위해 식품 화학자와 함께 만든 이 특수 초콜릿의 이름은 ‘스페이스 크래프티드(Spacecrafted)’이다. 우주인에게 필요한 비타민, 셀레늄, 아연, 유산균 등 70가지 영양소가 들었다.

슈미트 셰프는 앞서 우주인을 위한 3코스짜리 유기농 식사를 연구하며, 비행사들이 우주에서 중력 문제로 미각이 둔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코에 압력이 가해지며 감기 걸린 듯 음식 맛이 밍밍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먹는 음식은 감각과 호르몬, 운동 능력, 정서와 연결돼있다”며 “우주 식량 개발에는 물리·생물·화학적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대로 ①덴마크 셰프 토르스텐 슈미트가 우주 초콜릿 ②1962년 미국 우주 비행사 존 글렌의 식사 ③2022년 민간 우주 여행선 ‘액시엄1호’가 제공한 스페인 스타 셰프 파에야. /스페이스크래프티드·스미스소니언항공우주박물관·호세안드레스 제공

프랑스 최고 요리사로 손꼽히는 알랭 뒤카스(68)는 일찌감치 은하계에 미식을 전파해 온 ‘우주 스타 셰프’로 통한다. 그는 2006년부터 ESA와 새해나 각종 기념일마다 우주인에게 축하 음식을 보내며 채식과 무(無)글루텐 메뉴를 포함한 우주 레시피 40종을 고안했다. ESA는 앞선 1993년 러시아 미르우주정거장에 다녀온 프랑스 우주 비행사가 “음식 말고는 모든 게 좋았다”고 말한 뒤부터 우주 음식 연구에 공을 들여왔다.

결과는 최근 빛을 보고 있다. 프랑스 미슐랭 스타 셰프인 티에리 막스(65)가 물리 화학 전문가인 라파엘 오몽과 개발한 우주 코스가 대표적이다. 지난 2021년 스페이스X 로켓을 타고 ISS를 유영한 프랑스 우주인 토마 페스케(46)가 맛본 우주 코스 메뉴는 랍스터부터 7시간 저온 조리한 비프 부르기뇽, 대구 스테이크, 트러플 감자 케이크, 캐러멜 배를 올린 아몬드 타르트 등으로 화려했다.

◇우주 식당 맛의 비밀

‘코스믹 퀴진’은 지구보다 간이 세지만, 화학 조미료 대신 유기농 재료만을 취급한다. 우주에선 둥둥 떠다니는 후추를 음식에 뿌릴 수 없으니, ‘후춧물’도 고안했다. 와인 소스는 화학 연구소에서 쓰는 회전 증발 농축기로 알코올만 날렸다. 모든 음식은 140도에서 60분 살균 과정을 거쳐도 맛을 유지한다. 뼈 건강을 위해 칼슘이 풍부한 물도 썼다. 디저트는 당뇨병 환자도 즐길 수 있는 무설탕이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①프랑스 미슐랭 스타 셰프인 티에리 막스(오른쪽)가 물리 화학 전문가인 라파엘 오몽과 우주 음식을 개발하는 모습 ②프랑스 최정상 셰프 알랭 뒤카스가 만든 우주 음식 '저온 조리 연어' ③티에리 막스가 만든 우주 디저트. /프랑스 파리 사클레대학·AP

막스 셰프는 “우주 비행사는 고도의 체력 관리가 필요한 스포츠 선수로 봐야 한다”며 “6개월 동안 우주선에 갇혀 있기 때문에 체중이 늘지 않도록 음식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프랑스 유명 디저트 셰프인 피에르 에르메는 지난 2017년 우주 환경에 맞게 구운 라즈베리 마카롱을 스페이스X에 태워 보냈다. 우주 마카롱은 잘 바스러지지 않도록 지구에서보다 딱딱하게 1시간 더 구웠다. 부스러기를 흘리면 여과 시스템에 걸려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 우주기업 액시엄 스페이스가 2022년 기획한 우주 여행 참가자들. 전직 나사 비행사와 미국·캐나다·이스라엘 사업가 3명이 1인당 5535만달러를 내고 참가했다. /액시엄 스페이스 제공

상업 우주 여행도 맛집 수준을 끌어올린다. 지난 2022년 4월, ISS 출범 22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인만으로 구성된 우주 여행팀이 우주선 ‘액시엄1호’를 타고 왕복 10일 여행을 떠났다. 민간 우주기업 액시엄 스페이스가 기획한 투어에 미국·캐나다·이스라엘 사업가 3명이 1인당 5535만달러(약 730억원)를 내고 참가했다. 이 ‘비싼’ 투어의 기내식으로는 스페인 스타 셰프 호세 안드레스가 1년간 개발한 우주 파에야(해산물 볶음밥)도 포함됐다. 영국 가디언은 “블루 오리진, 버진 갤럭틱 같은 민간 우주기업에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승객을 유치하면서 우주 여행의 콘셉트가 ‘극기훈련’에서 ‘웰빙투어’로 바뀌고 있다”며 “스타 셰프들이 우주 케이터링에서 창의적 도전과 기회를 포착했다”고 했다. 예술적 분자 요리로 유명한 안도니 루이스 아두리츠는 무뎌진 우주 미각을 깨워 줄 ‘딸기 크림을 곁들인 콜리플라워’ 등과 같은 우주 레시피를 개발하기도 했다.

◇인분과 페트병도 우주식량?

유럽에서 우주 미식 연구가 뜬다면, 미국은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중이다. 우주에서 농사짓는 자급자족 시스템을 넘어, 쓰레기와 인분을 식량으로 바꾸는 자원 순환 기술에도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우주 환경에서 샐러드 채소와 꽃을 재배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우주농업'도 각광받는 분야다. /미 인터스텔라랩 제공

미국 항공우주국(나사·NASA)에서 분사한 스타트업 비헥스는 지난해 플라스틱을 식량으로 변환하는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이 업체는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지원을 받아 폐플라스틱을 미생물과 반응시켜 만든 바이오매스(biomass)로 인공 스테이크·닭가슴살을 배양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NASA는 지난 2015년 우주인의 인분을 재활용해 얻는 음식에 대한 기술 연구에 20만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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