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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를 석기 시대로 되돌릴 수 있다.’
지난달 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하마스를 지지하는 친(親)이란 성향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깔린 해저 통신 케이블에 대한 공격을 암시했다는 소식이 소셜미디어로 확산했다. 홍해를 지나는 민간 화물선을 잇따라 공격하며 세계 공급망을 흔드는 후티 반군의 다음 타깃이 해저에 매설된 국제 통신 케이블이라는 것이다.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소문이었지만, 글로벌 빅테크 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초연결 시대, 인터넷 통신 회선이 마비되면 재난 상황에 준하는 정치·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인터넷의 고속도로, 해저 통신 케이블이 국가와 IT 기업의 핵심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인터넷의 시답잖은(dull) 배관으로 여겨지던 해저 케이블이 중요한 경제적·전략적 자산으로 거듭나고 있다”며 “아마존·구글·메타·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지정학적 긴장으로 디지털 인프라가 분열될 위험이 커지고 있음에도 케이블 통제권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데이터 업체 텔레지오그래피가 공개한 ‘해저 케이블 지도 2023′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는 총 길이 140만km에 달하는 529개 통신 회선이 평균 수심 3600m 깊이 해저에 깔려있다. 이 케이블들은 세계 인터넷 통신량의 99.4%를 책임진다. IT 업계는 2025년까지 100억달러 이상 건설 비용을 투입해 해저 케이블 44만km를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다.
해저 케이블 수요가 늘어난 건 영상 스트리밍 시대가 열리면서 데이터 사용량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구글(유튜브)·넷플릭스·메타 같은 콘텐츠 제공 업체(CP)의 맹활약으로 국제 인터넷 대역폭 수요는 2020년 이후 배 이상 늘었다. 2012년 전체 인터넷 사용량의 10% 미만을 차지했던 CP사들의 케이블 점유율은 2022년 71%로 급증했다. 이에 인터넷 통신 기업(ISP)과 CP사의 ‘망 사용료’ 갈등도 불거졌다. 여기에 AI 열풍까지 가세하면서 데이터 폭증 사태가 벌어지는 양상이다.
결국 빅 테크 업계는 자체적으로 해저 케이블을 구축하고 나섰다. 구글은 현재 사용 중인 해저 케이블 26개 회선 중 12개를 직접 소유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3억6000만달러를 투입해 북미 동부 해안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이르는 1만4000㎞ 길이 해저 케이블 ‘피르미나’를 완공했고, 지금은 호주와 칠레를 잇는 1480km 길이 해저 케이블 ‘훔볼트’를 매설 중이다. 메타도 해저 케이블 1개 회선을 가지고 있으며, 14개 케이블에 투자한 상태다.
각국 정부도 해저 케이블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영국, 덴마크 등 10국이 참여하는 유럽 합동원정군(JEF)은 최근 발트해에 깔린 해저 케이블을 보호하기 위해 영국 지원함 ‘마운츠 베이’호를 상시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중국을 해저 케이블 시장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며 안보 강화에 나섰다. 지난해 3월 미국 하원에선 자국 해저 케이블 기술에 대한 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해저 케이블 통제법안’을 통과시켰다. ‘바다 밑 신(新)냉전’ 시대가 열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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