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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우크라이나 전장에는 러시아군만큼이나 위협적인 적이 등장했다. 바로 항생제를 써도 죽지 않는 세균인 ‘수퍼 버그(super bug)’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최근 “심각한 화상을 입어 독일의 미군 병원으로 이송된 우크라이나 병사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여러 항생제에 복합 내성을 가진 세균 6종류를 발견했다”고 학계에 보고했다. 항생제 내성은 항생제를 사용해도 세균이 항생제에 저항하며 죽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병사들은 전장에서 총상이나 화상을 입으며 세균 감염에 쉽게 노출되는데, 적절한 검사·진단 없이 항생제를 남용하다 보니 항생제를 써도 듣지 않는 세균이 늘어난 것이다.

알렉산드라 캐머런 WHO(세계보건기구) 항생제 내성 총괄/WHO 제공

앞으로 수퍼 버그의 창궐로 인류가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보건 위협 중 하나로 ‘항생제 내성’을 꼽는다. 알렉산드라 캐머런 WHO 항생제 내성 대응 총괄(선임 전문가)은 WEEKLY BIZ와 화상으로 만나 “항생제 내성 때문에 해마다 글로벌 금융 위기에 버금가는 경제적인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항생제 내성은 전 세계적으로 한 해 500만명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중대한 보건 위험 요인”이라며 “치매나 당뇨병, 에이즈나 말라리아처럼 잘 알려진 질환보다 무서운 ‘적’”이라고 말했다.

◇한 해 세계 GDP 8000조원 증발할 수도

항생제 내성은 2020년 발생한 코로나 사태처럼 심각한 경제 위기의 촉매가 될 수 있다. 세계은행은 “항생제 내성 문제가 계속 악화할 경우 2050년 한 해 동안에만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8%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한 해 동안 6조1000억달러(약 8000조원)가 증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수퍼 버그가 다수 등장하면 2008~2009년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충격(GDP 3.6% 감소)을 넘어서는 피해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캐머런 총괄은 “항생제 내성 문제는 단순히 보건 비용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며 “글로벌 무역의 위축, 식량과 가축 사료 생산 감소, 빈곤 증가 같은 후폭풍이 이어지게 된다”고 했다. 항생제 내성 문제가 악화되면 하루 1.9달러 미만의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극빈층이 전 세계적으로 2830만명 정도 늘어날 수 있다는 게 세계은행 분석이다.

그래픽=김의균

당장 세균·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망자가 급증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2022년 항생제 내성 관련 공동 연구진이 빌앤드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2019년에만 495만명이 수퍼 버그 감염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사망했다. 혈액 공급에 문제가 생기는 허혈성 심장 질환(914만명)과 뇌졸중(655만명)에 이어 전 세계 사망 원인 3위였다. 치매(162만명)나 당뇨병(155만명), 에이즈(86만명)처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질병보다 치명적인 위협이란 뜻이다. 캐머런 총괄은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와 어린이, 암 환자,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항생제 내성은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2016년 영국에서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항생제 내성 문제로 한 해 1000만명이 사망할 것이란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제시되기도 했다.

◇'세균 잡는 바이러스’로 수퍼 버그도 잡을까

수퍼 버그들은 비극 속에서 힘을 키운다. 우크라이나나 중동의 전쟁터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면 세균 등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항생제를 이겨내는 힘을 얻는다. 코로나 사태 같은 대규모 감염병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항생제 사용이 증가하는데, 이럴 때 내성을 키운 수퍼 버그가 출현하기 쉽다.

세균을 숙주 삼아 자가 복제하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파란색)가 대장균(핑크색)을 감염시키고 있는 모습(일러스트레이션). 박테리오파지는 자신이 숙주로 삼는 세균만 죽이기 때문에 ‘완벽한 포식자’라고도 불린다. 이에 박테리오파지는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수퍼 버그’에 대응하는 인류의 ‘반격 무기’로 주목받고 있다./게티이미지코리아

인류도 재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바이러스를 활용한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으로 항생제 내성 문제를 극복하려는 연구가 대표적이다. 가장 주목받는 것이 세균을 죽이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다. 이 바이러스는 ‘세균(bacteria)을 먹는다(phage)’는 뜻에서 이름 붙었다. 캐머런 총괄은 “항생제 내성에 대응하는 새로운 개념의 치료법 32개 중 9개가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방식”이라고 했다. 2016년 미국에서는 해외여행 중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이라는 수퍼 버그에 감염된 남성이 박테리오파지를 활용한 치료법 덕분에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프랑스의 엘리고 바이오사이언스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박테리오파지의 DNA를 수정해 환자의 장에 있는 수퍼 버그를 제거하도록 만드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완벽한 포식자’라는 별명을 가진 박테리오파지를 활용하면 인간에게 유익한 균은 죽이지 않으면서 문제가 되는 항생제 내성균만 죽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전자 현미경으로 촬영한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Acinetobacter baumannii)균. 대표적인 항생제 내성균 중 하나. /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전자 현미경으로 촬영한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Acinetobacter baumannii)균. 대표적인 항생제 내성균 중 하나. /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잘못된 항생제 사용 막아야”

하지만 아무리 첨단 기술을 쓴다 해도 아직은 수퍼 버그를 박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캐머런 총괄은 “새로운 항생제가 나오자마자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들은 이를 이겨내기 위한 진화를 시작한다”고 했다. 아무리 효능이 뛰어난 항생제를 개발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약품에 내성을 가진 수퍼 버그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에 세균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키울 ‘기회’ 자체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수란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중요한 노력 중 하나가 항생제 오·남용을 줄이는 일이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성 질환인 감기에 걸렸을 때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복용하면 치료 효과도 없을뿐더러 세균이 항생제 내성만 키우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질병관리청이 2022년 11월 일반인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8%가 “바이러스성 질환 치료에도 항생제가 필요하다”고 할 정도로 ‘항생제는 만능’이란 의식이 팽배한 상태다.

캐머런 총괄은 “세균성 질환을 치료하는 도중에 증상이 호전됐다고 완치가 되기 전에 항생제 복용을 중단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아직 남아있는 세균들이 항생제 내성균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손을 잘 씻거나 필수적인 예방접종을 받는 등 질병을 예방하려는 노력 역시 항생제 내성 문제를 악화시키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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