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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우크라이나의 한 인부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에 무너져 내린 아파트에서 복구 공사에 나선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 5일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유럽 각 국의 내로라하는 우크라이나 전문가가 총집결했다. EU 최고 권위 싱크탱크인 유럽정책연구센터(CEPS)가 마련한 ‘아이디어스랩(IDEASLAB)’ 연례 포럼에 참석한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 회원국과 EU 산하기관의 정책 담당자 50여 명은 유럽 내 여러 금융기관과 싱크탱크 소속 연구자 등과 함께 이번 포럼 주요 주제인 ‘우크라이나 재건’을 두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WEEKLY BIZ는 한국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이 포럼을 현장 취재해 유럽이 바라보는 우크라이나 재건 전략을 들었다. 포럼 참석자들은 앞으로 최소 10년간 4860억달러(약 642조원·세계은행 추산)가 들 것으로 보이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두고 “규모는 물론 지정학적 의미에서

2차 대전 후 황폐화한 유럽을 복구한 ‘마셜 플랜’에 비견되는 역사적 프로젝트”라고 입을 모았다.

그래픽=김의균

◇재건 비용, 韓 1년 예산도 뛰어넘을 듯

이번 포럼은 ‘채텀하우스 룰’로 진행됐다. ‘채텀하우스 룰’이란 자유로운 토론을 위해 발언자를 비밀에 부치는 채텀하우스(영국 왕립 국제문제연구소의 별칭)의 토론 규칙을 뜻한다. 덕분에 유럽 각국 정책 담당자들은 공개적으로 하기 힘든 솔직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들은 우선 “재건 비용은 전쟁이 길어져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현재 추산되는 재건 비용 4860억달러(약 650조원)만 해도 우리나라의 지난해 예산 규모(639조원)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우크라이나의 최근 3년 치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다. 그런데 전쟁이 1년 길어질 때마다 재건 비용이 눈덩이처럼 약 700억~1000억달러 불어날 것이란 게 참석자들 전망이다.

정책 담당자들은 특히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전쟁해 이기는 데 무기 지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후 재건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우크라이나 국민의 사기와 항전 의지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무인기(드론)와 미사일을 이용한 러시아의 민간 인프라(기반 시설) 파괴가 계속되면서, 전방의 전투 못지않게 치열한 ‘인프라 복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참석자들 진단이다. 한 EU 당국자는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EU 회원국들이 투입한 자금과 기술, 인적 자원을 통해 인프라 복구를 돕는 상황”이라며 “이런 의미에서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인프라 복구에 이미 140억달러(약 19조원)가 쓰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유럽은 왜 우크라 재건을 주목하나

유럽 각국 당국자들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두고 “우크라이나의 안정은 물론, 유럽과 세계 안보의 핵심적 요소”라고 평했다. 전후 우크라이나가 강한 경제와 군사력을 갖춘 나라로 재탄생해야 EU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부 국경에서 러시아 및 그 동맹국(벨라루스 등)과 군사적 충돌 위험을 줄이고, 지역 안보 보장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한 나토 회원국 당국자는 “강한 우크라이나야말로 러시아의 확장 정책을 견제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발언도 했다.

이 자리에 나온 미국 측 인사는 “재건 사업의 초점은 우크라이나를 안정적이고 민주적이며 경제적으로 자립 가능한 국가로 만드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를 유럽 및 대서양 공동체, 즉 서방의 일원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실리적 측면도 빠질 수 없다. 한 금융사 고위 인사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은) 전쟁으로 타격을 입은 세계 경제에 큰 수요처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 인프라, 에너지 등 여러 분야의 재건 프로젝트가 서방 기업들에 큰 기회를 열어준다는 뜻이다. 참석자들은 “우크라이나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고 성장하면 유로존 경제를 활성화하고 글로벌 경제 전체로 긍정적 영향이 확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엔 걸림돌도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의 뿌리 깊은 부패 문제, 기업의 불투명한 거버넌스(지배 구조), 금융 시스템의 상대적 불안정성 등이 해외 직접투자(FDI) 유치의 걸림돌로 꼽힌다. 참석자들은 특히 “극심한 지역적 경제 격차로 재건 과정에서 정치적 갈등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며 “사전에 철저히 조율한 지역 개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건 시장’에 참여하는 한국의 전략은

우크라이나 재건은 6·25전쟁 후 불과 두 세대 만에 피(被)원조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변신하며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전후 재건 사례를 보여준 한국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프로젝트다. 한국은 우선 각종 인프라 복구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살피는 한편, 전후 산업과 일자리 부족을 예상해 제조업 진출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또 우크라이나 농업 생산 대부분이 부가가치가 낮은 곡물에 치우친 것을 감안해 한국의 고부가가치 농업 기술을 가져가 대규모 한국식 농업 단지를 조성하는 방안 등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재건 시장에 참여하려면,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주도할 미국과 EU 국가들과 필수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반도체와 배터리, 전자 제조업 등 한국이 압도적 경쟁력을 갖춘 산업 분야의 직·간접투자를 통해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양구 전 우크라이나 대사는 “전후 우크라이나는 우수 인적 자원이 심각하게 부족할 것”이라며 “한국은 좀 더 긴 안목에서 인적 교육에 적극 투자해 우크라이나에서 ‘친한(親韓) 엘리트’를 키워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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