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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

미국 법무부가 빅테크 기업인 애플을 상대로 지난 21일 반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다. 메릭 갈랜드 미 법무장관은 “애플은 단순히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아니라 연방 독점금지법(셔먼법)을 위반함으로써 스마트폰 시장에서 독점력을 유지해 왔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애플을 제소하면서 소장(訴狀)을 공개했다. 이 문서엔 공정한 경쟁이 살아 있는 자유 시장을 지키기 위해 미 법무부가 여러 해에 걸쳐 수집한 귀한 정보가 촘촘히 담겨 있다. WEEKLY BIZ는 88쪽에 이르는 법무부 소장과 애플의 최신 연례 보고서 등을 밑줄 치며 분석했다. 이를 통해 알아낸 다섯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정리해 소개한다.

◇1. 아이폰은 초기부터 ‘폐쇄적 생태계’를 노렸다.

법무부 소장은 애플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에 관한 2010년의 소설 같은 일화로 시작한다. “애플 간부가 킨들(전자책) 단말기 신제품의 광고를 잡스에게 보낸다. 사용자가 아이폰에서 킨들을 읽다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으로 바꾸는 장면이 나온다. 간부는 잡스에게 ‘아이폰에서 안드로이드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광고에) 담겼습니다. 좋아 보이지 않네요(Not fun to watch)’라고 한다. 잡스는 이 간부에게 개발자·사용자를 애플에 묶어두기(lock in) 위해 개발자들이 애플의 결제 시스템만 쓰도록 ‘압박(force)’하자고 답한다.”

첫 아이폰 출시는 2007년이었다. 법무부는 내부 이메일을 입수해 밝혀낸 것으로 보이는 이 대화를 애플이 아이폰 출시 3년 후, 이미 ‘폐쇄적 생태계 구축’을 사업 목표로 삼았다는 증거로 제시했다.

◇2. 아이폰 가격은 지나치게 많이 올랐다

현재 팔리는 아이폰 가격은 1599달러(아이폰15 프로 맥스 기준)다. 소장에 따르면 처음 나온 아이폰 가격을 지금 물가로 환산하면 450달러 정도였다. 물가 상승분을 감안하더라도, 가격이 순수하게 약 3.6배로 올랐다는 뜻이다. 전자 기기의 성능이 좋아진다고 가격이 반드시 상승하라는 법은 없다. 공정이 효율화하거나 경쟁이 심해지면 가격이 내려가는 제품도 많다. 예컨대 애플의 노트북컴퓨터인 ‘맥북에어’는 지난 3년 동안 오히려 가격이 낮아졌다.

소장은 애플이 화웨이 등 경쟁사가 훨씬 많은 중국에선 미국보다 낮은 가격을 적용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미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 점유율은 60.3%이고, 중국 내 점유율은 24.4%다.

그래픽=김의균

◇3. 소비자의 불편이 가격 인상의 지렛대가 됐다

법무부는 애플이 아이폰에 설치 가능한 소프트웨어의 품질을 제한(저하)함으로써 하드웨어(아이폰) 가격을 올리는 특이한 방법을 썼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인터넷만 연결되면 어느 기기에서건 작동 가능한 ‘클라우드 게임’ 등을 설치할 수 없게 만들고 게임이 휴대폰 안에서만 구동되게 하는 식이다. 이 경우 그런 게임을 하려면 소비자는 반드시 아이폰을 써야 하기 때문에 애플의 생태계에 묶이게 된다. ‘탈출’할 수 없는 소비자에게 가격을 올리기는 쉬운 일이다. 법무부가 입수한 또 다른 내부 이메일에 적힌 이 문구가 애플의 이런 전략을 드러낸다. ‘중고 세일에서 25달러짜리 싸구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사서 클라우드에서 작동을 시킨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런 사례가 얼마나 늘어날지 생각해보란 말입니다.’ 이런 일을 방지해야 한다는 맥락의 발언이다.

◇4. 미 정부는 스마트폰을 ‘플랫폼’이라고 규정한다

법무부는 소장에 ‘스마트폰은 플랫폼(Smartphones are platforms)’이라고 못 박았다. 플랫폼(원래는 기차 승강장이라는 뜻)이란 판매자와 소비자가 모여 거래를 할 수 있도록 구축한 서비스를 뜻한다. 과거엔 (판매자와 소비자를 ‘결제’로 연결해 주는) 신용카드가 대표적 플랫폼이었고 디지털 시대엔 판매자와 생산자가 물건을 사고파는 오픈마켓(온라인 쇼핑몰), 운전자와 승차자를 연결해 주는 차량 공유, 집주인과 여행객을 연결해 주는 숙박 공유, 식당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배달 앱 등으로 영역이 훨씬 넓어졌다.

법무부는 애플을 제소한 소장에서 특이하게 휴대폰 그 자체가 플랫폼이라는 논리를 폈다. 아예 ‘스마트폰은 플랫폼’이라고 이름한 장(章)까지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디지털 시대에 선점 효과 등으로 지배력이 지나치게 세진 플랫폼 기업의 독점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 중인데, 애플에 대한 제소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다만 법무부는 휴대폰이 과거의 플랫폼과는 차별화되는 매우 특별한 플랫폼이라고 보았다. 소장을 인용한다. ‘스마트폰은 플랫폼으로, 플랫폼은 그곳에 모이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 스마트폰 플랫폼은 다만 기기의 성능과 가격 등 (플랫폼 참여자의) 거래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요소들을 두고도 경쟁한다는 측면에선 신용카드 같은 다른 플랫폼과 차별된다.’

◇5. 애플은 연구·개발보다 주가 부양에 돈을 더 쓰고 있다

애플의 매출 중 가장 큰 비율은 여전히 아이폰이 차지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약 52%다. 하지만 이 비율은 점점 줄어드는 중이다. 2015년까지만 해도 66%였다. 반면 앱스토어 매출 등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5년 8%에서 지난해 22%로 늘었다. 서비스 매출의 상당 부분은 독립적 개발자들이 만들어 앱스토어에 올리는 앱에서 나온다(애플은 앱스토어에서 번 돈의 최대 30%를 수수료로 뗀다).

좋은 앱이 많이 나오면 아이폰의 성능은 따라서 좋아진다. 소장의 표현을 빌리면 ‘외부의 앱 개발자들이 가치 있는 새 기능을 만들면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득을 보고 아이폰의 가치도 올라가게’ 된다. 역으로 말하면, 앱 개발자들이 애플만을 위해 좋은 앱을 많이 만들수록 애플은 여러모로(수수료 및 아이폰 가치 상승) 득을 본다. 애플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앱 개발자들을 애플의 생태계 안에만 머물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법무부의 논리다.

애플의 이런 사업 구조는 스마트폰의 성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게 만들었다고 법무부는 보았다. 소장은 ‘애플은 지난해 연구·개발비로 299억달러를 지출한 반면 같은 해 (주가 부양을 위한) 자사주 매입에는 약 770억달러를 썼다’는 점을 지적했다. 애플이 소비자를 위해 더 좋은 제품을 만들려고 연구하기보다 주가 상승을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입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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