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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시는 ‘입체공원’이 서울 곳곳에 들어선다고 밝혔다. 민간 부지 개발 시 평면적인 형태로만 조성했던 공원을 문화·사업 시설 등 다른 기반 시설이나 민간 건물 상부에도 만들 수 있게 허용한다는 의미다. 그러곤 도쿄 시부야의 랜드마크로 떠오른 ‘미야시타 파크’를 벤치마킹했다고 덧붙였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서울시가 대놓고 벤치마킹했다고 말하는 것일까.
1953년 시부야에 미야시타 공원이 생겼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마이카(My Car) 시대’가 도래했다. 자동차 주차장 수요도 덩달아 늘었다. 미야시타 공원은 1966년, 1층에 주차장, 2층에 공원이라는 형태로 탈바꿈한다. ‘일본 최초의 공중 정원’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 이곳에서 노숙자 문제가 발생했다. 이 무렵 일본 출장을 가면 신주쿠역, 우에노 공원에서 노숙자를 참 많이 봤었다. 이 지역도 상황이 비슷했다. 2009년, 공원 이름을 ‘미야시타 나이키 파크’로 바꾼다는 조건을 걸고, 나이키가 자기네 돈으로 공원 현대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멀쩡한 공원에 웬 외국 브랜드냐는 지역 주민의 반발 탓에 이 프로젝트는 결국 중단된다.
그 와중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다. 우리에겐 덜 알려졌지만 2016년 구마모토 대지진도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잇따른 대지진으로 시설 노후화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프로젝트에 대한 니즈(수요)는 커져가는데, 프로젝트를 실행할 자금은 없었다. 결국 시부야구(區)는 민간 자본 유치를 결정했다. 공원을 재개발하는 대가로 30년간 시설 임대권을 주는 것이다. 공모를 통해 미쓰이 부동산이 파트너로 선정됐다.
일본의 최대 부동산 개발 회사인 미쓰이 부동산은 어떤 회사인가. 미쓰이 부동산은 미쓰이 그룹의 재산 관리를 위해 1914년 미쓰이 합명회사(훗날 지주회사)의 부동산과(課)로 출발했다. 1941년 미쓰이 부동산이란 회사로 독립했지만 그 위상은 낮았다. 영원한 경쟁자인 미쓰비시 그룹의 부동산 개발 회사 미쓰비시 지쇼는 마루노우치 지역에 땅을 잔뜩 갖고 있었던 반면 미쓰이 부동산은 그렇지 못했다. 오죽하면 ‘토지가 없는 부동산 회사’라고 불렸을까. 하지만 에도 히데오(江戸英雄)라는 걸출한 인물이 1955년부터 20년간 사장을 맡으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매립 및 택지 조성 공사, 도쿄 디즈니랜드 오픈 지원 등을 통해 1962년 미쓰비시 지쇼를 추월한다. 1968년에는 36층, 147m라는 초대형 규모의 가스미가세키 빌딩을 도쿄 한복판에 선보이며, 도쿄의 스카이라인을 확 바꾼다.
이 미쓰이 부동산의 손에 2020년 7월, 길이 330m의 미야시타 파크가 탄생했다. 우선 기존 2층짜리 시설을 4층으로 올렸다. 꼭대기 4층이 옥상 공원과 호텔이다. 공원엔 스케이트보드장, 록클라이밍장, 스타벅스 등이 있다. 어린 학생부터 젊은 층까지 삼삼오오 낮이건 밤이건 모여 있다. 공원 길을 걸으면 마치 하늘을 걷는 듯한 묘한 기분이 느껴진다. 다음은 ‘시퀀스 미야시타 파크’라는 호텔이다. 시퀀스는 미쓰이 부동산의 호텔 브랜드다. ‘5시 체크인, 2시 체크아웃’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운영된다. 마지막은 ‘레이야드 미야시타 파크’라는 상업 시설이다. 1층부터 3층까지 상점, 식당으로 가득하다. 키스(Kith)라는 편집숍, 루이비통 등 명품 매장도 눈에 띈다. 이러한 공간 구성 능력은 미쓰이 부동산이 가진 핵심 역량 중 하나다.
미쓰이 부동산은 ‘잔류(殘)시키고, 소생(蘇)시키며, 창조(創)하겠다’는 경영 철학을 갖고 있다. 미야시타 파크를 보자. 공원을 잔류시켰다. 낡은 건물을 새로운 시설로 소생시켰다. 호텔과 상업 시설이 어우러진 활기찬 공간을 창조했다. 기왕 벤치마킹한다면 제대로 하는 게 좋다. 그 건물은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 어떤 철학으로 그런 건물을 만들었는지까지도 알고 벤치마킹한다면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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