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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엘리베이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스르르 닫혀 버린 문 안에 갇혀 목적지까지 올라가는 협소한 공간. 그곳은 누구와 함께 탔는지에 따라 대화의 꽃이 피는 ‘사교의 장’이 되기도, 적막으로 얼어붙는 ‘공포의 감옥’이 되기도 한다. 사무실 도착 전까지 방심은 금물.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층마다 막 닫히려던 문을 비집고 열어 당신의 여정에 동행할 수 있다.
서울 용산구 중소기업에 다니는 A(29)씨도 최근 이런 일을 겪었다. 평소 오후 출근하는 그가 점심에 낮술을 걸치고 복귀하던 직속 상관들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것. 불콰해진 얼굴에 알코올 입김을 뿜어내던 상관들은 A씨에게 사무실로 올라가는 내내 훈계를 늘어놓았다. “엘리베이터가 ‘지옥’ 같았다”는 A씨. 이제 그는 직장 1층에 도착하면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주변을 둘러보는 게 습관이 됐다. 상관들이 보이면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이상 무(無)’ 상황이라야 엘리베이터로 돌진한다.
지난해 서울로 이주해 직장 생활을 하는 일본인 B(27)씨도 엘리베이터가 직장 스트레스 주범이다. 한국말이 유창한 그에게 최근 부임한 상사가 시도때도 없이 ‘호기심’을 보이며 사적인 질문을 해대기 때문이다. B씨는 “엘리베이터 탑승 시간이 마치 10분처럼 느껴지곤 한다”고 했다.
직장인들의 말 못 할 고민을 들어보기 위해 WEEKLY BIZ가 지난 11~12일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를 통해 20~50대 직장인에게 “당신에게 엘리베이터는 어떤 공간인지” 물었다. “엘리베이터 타길 피한 적 있다”는 직장인이 과반(過半)이었다.
◇'엘베 포비아’ 유발자 1위는
이번 설문에서 응답자 1895명 중 1022명(54%)이 ‘직장에서 엘리베이터 타길 피한 적 있다’고 했다. 직장인 절반 이상은 이유가 있어 엘리베이터를 눈치 봐가며 타고 있다는 얘기다. “탑승을 피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복수 응답) ‘사람이 너무 많아서’(70%)란 응답이 가장 많았지만, ‘마주치기 껄끄러운 사람과 타야 해서’(30%)란 답변도 적잖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기 불편한 사람”에 대한 답(복수 응답)은 전(全) 연령대에서 두 군(群)으로 수렴했다. 전체의 65%가 ‘임원·간부’를 1순위로 지목했고, ‘같은 팀이나 부서 상관’(35%)을 지목한 이도 많았다. 즉 ‘나보다 높은 사람’이 불편했다는 얘기다. 서울 중구 신참 직장인 C(28)씨는 지난달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하늘 같은’ 전무이사를 마주쳤다. 그는 “전무이사님이 뒤에서 나를 계속 쳐다보는 것 같아 뒤통수가 녹아 내릴 듯한 경험을 했다”며 “요샌 엘리베이터 문만 열려도 가슴이 콩닥거린다”고 했다.
◇3밀(密) 공간… 담·향·방의 냄새 공격
직장 엘리베이터가 ‘공포의 장소’가 된 건 단순히 불편한 사람 때문만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때 감염 전파 경로가 되기도 했던 엘리베이터는 밀집·밀접·밀폐란 ‘3밀(密)’의 대표 장소로 꼽힌다. 이러다보니 ‘소리’와 ‘냄새’에도 취약하기 마련이다. 이번 설문에서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불쾌한 상황”을 묻는 항목(복수 응답)에 응답자 과반(53%)이 ‘시끄러운 대화 소리’를 꼽았다. 전체 응답자 10명 중 4명(41%)은 ‘직장 상관이나 동료의 험담,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 등 비밀스러운 대화를 의도치 않았지만 들은 적 있다’고도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당신의 ‘속삭임’은 누군가의 귀로도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
설문에서 절반 정도인 49%는 불쾌 유발 요인으로 ‘냄새’를 꼽았다. 응답자들은 주관식 답변에서 ‘담배’ ‘향수’ ‘방귀 등 생리 현상’으로 인한 악취를 엘리베이터 불쾌의 원흉으로 꼽았다. 은은한 향이 아니라 지나친 향으로 숨막힌다든가, 흡연자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담배 냄새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사람들 얼굴을 찌푸리게 한다는 지적이다. 응답자들은 “방귀 살포 금지” 등 생리 현상도 좀 참아줬으면 좋겠다는 주관식 답변을 써내기도 했다.
◇엘리베이터 에티켓은 어디까지
엘리베이터도 공공 장소인 만큼 따라야 할 ‘에티켓(예의범절)’이 있는 법이다. 행정안전부가 2012년에 내놓은 74페이지짜리 ‘공직자가 꼭 알아야 할 직장 예절’ 책자를 보면 엘리베이터를 탈 땐 상위자가 먼저 타고, 승강기 내 ‘상석’은 들어간 방향에서 좌측 안쪽이란 상세한 안내가 나온다. 다만 이 책자엔 ‘승강기의 이용이 부쩍 늘고 세상이 바빠지다 보니 예절도 상황에 따라 편리한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다. 현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승강기 문에 가깝게 서 있던 사람부터 먼저 타고 내릴 때에도 같은 요령으로 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 같다’고 쓰여있다. 엘리베이터 예절이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다 보니 이번 설문에서 ‘엘리베이터 에티켓’에 대한 생각은 다양했다 ‘3층 이하는 웬만하면 걸어가기’(20대), ‘사람 많은 엘리베이터에선 가방 앞으로 메기’(40대), ‘몸을 사방에 최대한 밀착하고 타기’(40대) 등이 그것이다.
조직 문화 전문가인 백재영 IGM(세계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직장인 상당수가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보다 자주 이용하는 이동 수단이 엘리베이터란 점에서 자신의 ‘엘리베이터 에티켓’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며 “동료들과 함께 쓰는 장소인 만큼 서로 간단한 목례부터 나누는 것이 불쾌를 방지하고 에티켓을 준수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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