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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월 첫째 주.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1966년 올해의 인물을 표지에 실었다. 당시 올해의 인물로 꼽힌 것은 ‘25세 이하의 사람들(Twenty-Five and Under)’. 1927년부터 이 잡지가 올해의 인물을 선정한 이래로 특정 인물이 아닌 인구 집단을 뽑은 것은 처음이었다. 한 세대로서의 베이비부머가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은 셈이다.
나라별로 베이비부머를 나누는 기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 등 서구권에선 대체로 1946~1964년에 태어난 이들을 베이비부머로 부른다. 당시 타임은 이 세대가 위 세대와는 다른 가치관과 생활 태도를 가졌다고 분석했다. 대화하기 어렵고 자기 분열적인 모습을 보이며 마약 사용, 자유로운 성 의식 등으로 부정적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안정된 경제 환경 속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세대라고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 존 F 케네디를 탄생시킬 정도로 젊음과 패기를 중요한 가치로 삼았던 1960년대 미국에서 큰 기대를 받았던 베이비부머가 나이를 먹어 이제는 노년층이 됐다. 막내 격인 1964년생은 올해로 60세가 됐고, 이제 은퇴할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문제는 많은 인구의 베이비부머가 한꺼번에 은퇴하며 급격한 노동력 감소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독일에서 경제 5현(賢)으로 불리며 독일 연방 정부의 경제 자문 역할을 하는 경제전문가위원회에 속한 마르틴 베르딩(Werding) 보훔루르 대학교 교수는 WEEKLY BIZ와 한 인터뷰에서 “베이비부머의 노동시장 이탈은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이들의 은퇴는 이후 세대의 저출생 문제와 겹쳐 2060년까지 계속해서 성장 잠재력을 제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른바 ‘베이비부머 은퇴 쇼크’ 시대의 서막이 올랐다는 얘기다.
◇美, 매일 1만명씩 은퇴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풍요의 시대에 태어난 많은 인구가 최근 썰물 빠지듯 은퇴하는 현상은 글로벌 메가 트렌드다. 퓨리서치는 2030년까지 미국에서 매일 1만명이 ‘65세’를 찍을 것이라며, 이 거대한 인구 집단의 노령화로 인구구조가 극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포브스는 이런 현상을 일컬어 ‘베이비부머 노동력의 종말’이자 ‘실버 쓰나미’ 현상의 도래라고 칭했다.
유럽에서 베이비부머 은퇴로 인한 노동력 감소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현재 겉보기엔 훌륭한 고용 시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난해 연간 실업률이 5.7%였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2019년의 5.0%보다는 높지만, 21세기 들어 가장 높았던 2005년(11.7%)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 수준이다.
문제는 이 같은 비교적 낮은 실업률이 정부와 산업계가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나온 숫자가 아니란 점이다. 독일은 오히려 지난해 -0.3%의 성장률을 기록할 만큼 침체에 빠져 있다. 독일 외교 전문지 인터내셔널폴리틱은 “유럽에서 가장 큰 경제 대국인 독일은 2018년 이후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실업자는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역설은 독일 경제의 침체기와 함께 은퇴하기 시작한 베이비부머로 인한 것”이라고 전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일자리는 대량 남겨졌지만 이를 채울 만큼 직장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실업률이 유지되거나 되레 떨어지는 것이다.
실제 독일의 생산가능인구(20~66세)는 2017년 65.3%에서 2022년 63.8%로 1.5%포인트 줄어들었다. 독일 연방 통계청은 인구수 기준 2035년의 생산가능인구가 2018년 대비 400만~600만명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베르딩 교수도 “최근의 위기 속에서도 고용 숫자는 계속 증가했지만 지금부터 매년 15만~25만명씩, 2040년까지 5% 이상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이민이 계속 증가하고 여성 노동력 참여가 지난 30년간 늘었던 것처럼 증가한다는 가정을 하고도 그렇다”고 말했다. 이런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프랑스(2018년 62.3%→2022년 61.5%) 등 여러 나라에서 나타났다.
◇실버 쓰나미, ‘생산성 하락’이 핵심
경제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최고령 세대였던 베이비부머. 각종 분야에서 최고의 생산성을 내던 그들이 ‘실버 쓰나미’란 말처럼 한꺼번에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생산성 하락’이다. 미국의 지정학(地政學) 전략가이자 인구 안보 전문가인 피터 자이한은 자신의 저서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에서 “베이비부머는 가장 규모가 큰 세대이므로 그들이 노동시장에서 사라지면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며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숙련 기술 근로자 계층이 사라지면 노동력 부족과 임금 상승은 앞으로 불 보듯 뻔하다”고 했다.
실제로 글로벌 곳곳에선 베이비부머 숙련공의 대량 이탈이 현실화하고 있다. 일본·프랑스·이탈리아 등에선 은퇴 연령 진입 인구(60~64세)보다 20대 후반(25~29세) 근로 진입 인구가 적어지면서 1인당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추세다. 미국 민간 경제 연구 기관 콘퍼런스보드에 따르면, 미국의 1인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2001~2005년 1.8%(5년 평균)에서 2006~2010년 1.1%, 2011~2015년 0.7% 등으로 둔화되고 있다. 같은 기간 일본에선 1.2%·0.7%·0.3% 등으로 감소세다. 특히 제조업 중심의 국가에선 일당백을 해내던 베이비부머가 이탈하는 대신에 젊은 층이 그 자리를 채우다 보니 새로운 노동자를 뽑아도 금세 예전의 생산성을 뽑아 내지 못하는 상황도 나타난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자동차 산업에서 4분의 3 이상의 기업이, 기계 엔지니어링 산업에서 70% 이상의 기업이 심각한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며 “숙련된 인력 부족으로 인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업률 개선은 착시일 뿐
은퇴자의 증가는 단순히 이들이 빠져나간 일자리가 ‘빈 의자’ 상태가 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통계의 착시’도 일으킨다. 실업률은 직업을 찾고 있는 사람 중 실제 취업하지 못한 사람을 대상으로 계산한다. 그런데 은퇴를 할 경우 해당 노동자는 더 이상 구직자가 아니게 된다. 실업을 했지만 실업자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통계의 착시 현상이 가장 잘 드러난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독일 등 유럽 국가에 비해 베이비부머의 은퇴 러시에 따른 충격을 가장 최근에 겪고 있는 나라다. 통상 당연히 은퇴했을 나이임에도 계속 일하던 노동자들이 최근 급격히 은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초 통계적으로 노동력이 충분하다고 여겼던 미국에서 갑작스러운 노동력 절벽 현상을 맞닥뜨린 것이다.
그간 미국의 베이비부머는 부족했던 은퇴 준비와 예전보다 건강을 유지하기 쉬운 의료 환경 등으로 60세를 넘어서도 돈벌이에 나서고 있었다. 미국의 산업 구조가 육체 노동이 필요한 공장 일자리 대신 사무직으로 전환되며 실버 일자리가 유지된 덕도 있었다. 이 때문에 1999년 46%에 불과했던 60대 초반 미국인의 취업률(전체 인구 중 취업자 비율)은 2019년 57%로 크게 늘었다가 팬데믹 이후 상황이 바뀐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는 “가장 젊은 베이비부머인 55~64세 구간에서의 구직자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으로 회복됐지만 65세 이상에서는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며 “베이비부머가 수십 년간 만들어온 경제 순풍이 다른 방향으로 불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민이 빈자리를 채울까
실버 쓰나미가 몰아치자 베이비부머의 빈자리를 채울 대안으로 여성·고령 인구 취업 확대 등과 함께 ‘이민’ 카드를 검토하는 나라도 늘고 있다. 그나마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빠져나간 노동력을 외국에서 수혈하기가 용이한 편이다. 미국은 지난해만 해도 외국인 취업자 수를 125만7000명 늘렸다. 올 3월 기준 미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취업자는 3111만4000명으로 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2020년 2월의 2769만7000명보다 12% 이상 늘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더 많은 이민자가 미국의 국가 노령화를 늦출 것”이라며 “이민자들은 평균적으로 미국인보다 젊으며 이미 국가 인구 증가의 주요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문제는 이민을 받아들인 경험이 많지 않은 국가도 적잖다는 것이다. 당장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민자 유입만이 노동력 확보의 대안이 된 국가들은 본격적으로 이민자 끌어들이기를 검토하고 나섰다. 특히 이민자에게 배타적인 보수 정당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2025년까지 비유럽연합 국적자에게 42만5000개의 취업 허가를 발급하겠다고 한 것은 이례적인 조치란 해석이 나온다. 캐나다는 2022년 6월 ‘신속 이민제 개정안’을 통과시켜 업종에 상관없이 취업과 비자 연장을 가능케 했다. 2060년까지 3년마다 해외에서 120만명의 근로자를 ‘수입’해야만 적정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 독일은 6개월간 독일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을 허용하는 이민법을 통과시켰다.
◇여전한 소비 여력… 국가 자산 절반 독점해
다만 베이비부머가 전체 세대 중 가장 많은 부를 축적했다는 점은 이들의 은퇴 이후가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희망적 전망의 근거다. 시장조사 기관 글로벌캐피털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인의 자산은 약 156조달러로 이 중 절반인 78조1000억달러가 베이비부머의 소유였다. 개인 사업체, 부동산, 주식, 연금 등 각종 자산의 절반을 하나의 세대가 독점하다시피 했다는 뜻이다.
만약 베이비부머가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 본격 소비에 뛰어든다면 이들은 단연 소비 시장의 가장 큰 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은퇴 전에는 국가의 생산을 책임졌다면, 은퇴 후에는 국가의 소비를 책임질 수 있는 게 베이비부머라는 것이다. 로널드 리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는 “베이비부머는 평생 동안 축적한 부를 많이 보유한 세대로 소비 여력이 충분하다”며 “오히려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노동자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결국 노동자 1인당 생산성과 임금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영국에선 베이비부머가 최근 지출을 급격하게 늘리면서 인플레이션을 유지시키는 ‘주범’으로 꼽히기도 했다. 국제적인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이자 수익이 증대하자 베이비부머가 돈을 더 쓰기 시작했고, 이런 과소비가 물가를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베이비부머가 부동산 구입부터, 휴가철 항공·호텔·크루즈 예약, 골프 회원권 구매 등 소비에 뛰어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전영수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베이비부머는 양적인 크기도 중요하지만 비율적인 크기가 더 중요하다”며 “저출생으로 아래 연령대가 줄어들면 위 연령대는 가만히만 있어도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밀레니얼에겐 낙수 효과도
추후 베이비부머 은퇴 러시의 낙수 효과가 후손들에겐 득이 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사상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한 베이비부머가 자산을 물려주거나 매각하는 것만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생을 보내는 데 베이비부머의 자산은 유용하게 쓰일 테지만 결국에 이 자산은 자녀 세대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 조사 기관 세룰리 어소시에이트는 2045년까지 72조6000억달러가 상속인에게 전달될 것으로 예상했다. 상속의 수혜자는 자녀인 밀레니얼 세대(1980~1996년 출생)가 될 가능성이 크다.
막대한 자산의 이전은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패턴에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포브스는 “2030년대에 밀레니얼 세대는 현재보다 5배 많은 부를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소비자 지출, 투자, 경제 성장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고, 투자에 자금이 몰리면서 주식 시장이 상승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베이비부머에게 묶여만 있던 자산이 아래 세대로 넘어간 것이 실제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 사례는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전영수 교수는 “일본은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있는 베이비부머의 자산을 유동화시키지 못해 30년 장기 불황에 빠진 측면이 있다”며 “돈이 늙어가는 채로 묶여버리니 어떤 경기 부양책을 써도 안 먹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문제점을 발견한 일본은 교육비 용도 증여에는 세제 혜택을 주거나, 미리 상속을 염두에 둔 유언대용신탁 등의 제도를 활성화하면서 ‘늙은 돈’을 ‘젊은 돈’으로 바꿨다”고 분석했다. 은퇴 이후 묶여만 있던 돈을 스스로 쓰게 하거나 확실한 상속 방안을 마련한 것이 최근 일본 경제 반등을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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