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프랑스 남부 휴양 도시 니스와 붙어 있는 유럽의 소국(小國) 모나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기차들이 지난달 27일 이곳에 모였다. 세계 최대 전기차 경주 대회인 ‘포뮬러E’를 위해서다. 포뮬러E는 흔히 ‘전기차 세계의 F1′이라고도 불린다. F1과 유사한 형태의 차량을 사용하며, 전 세계 주요 도시(8개)를 순회하고 시속 300㎞에 육박하는 짜릿한 질주의 쾌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모나코에서 열리는 포뮬러E 경주는 F1과 달리는 코스도 같다. 포뮬러E는 여기에 한 가지 매력이 더 있다. ‘전기차’라는 새로운 탈 것을 통해 구현된 신기술의 극단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포뮬러E에는 현재 총 23명의 드라이버가 경쟁을 하고 있다. 이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는 ‘태그호이어-포르쉐’ 팀의 파스칼 베어라인(Wehrlein). 경기 전날인 지난달 26일 찾은 태그호이어-포르쉐팀의 차고에선 그의 차량이 최종 점검을 받고 있었다. 이 팀을 비롯 총 11개 포뮬러E 레이스팀의 차량들은 각각 업계의 최신 기술들로 무장했다. 이번 시즌에 사용되는 ‘Gen2 EVO’ 차량에는 52 kWh 용량과 230 Wh/kg의 에너지 밀도를 가진 배터리, 그리고 350마력의 모터가 탑재돼 있다. 수치는 양산 전기차와 큰 차이가 없지만, 레이싱의 극단적 환경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도록 까다롭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또 최첨단 에너지회수시스템(ERS)과 전력관리시스템이 적용된다.
팀 관계자는 “이런 구동(驅動) 장치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차량을 가볍고 튼튼하게 만드는 구조(構造)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포뮬러 E차량은 모터스포츠의 최고봉인 F1의 차량 경량화 기술을 대거 적용했다. 철이나 알루미늄보다도 가볍고 튼튼한 탄소섬유 차체에 특수 금속과 고강도 플라스틱 등을 사용한 각종 부품들이 조립된다.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첨단 접착제’ 기술이다. 금속으로 만드는 일반 차량과 달리, 포뮬러E 차량은 다양한 복합 재료를 쓰기 때문에 용접을 쓸 수 없다. 그렇다고 볼트나 너트, 리벳(rivet) 같은 별도의 고정 부품을 마구잡이로 쓸 수도 없다. 대부분 강철 재질이라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경량화와 에너지 효율성 위한 기술
이날 둘러본 포뮬러E 차량들은 탄소섬유 차체와 여기에 연결된 금속 및 플라스틱 재료를 첨단 접착제를 이용해 매끈하게 붙여놨다. 덕분에 차량의 무게를 대폭 줄였다고 한다. 현재 포뮬러 E차량의 무게는 900㎏ 수준이다. 390㎏에 육박하는 배터리를 탑재하고도 F1 차량 무게(798㎏)와 약 100㎏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양산형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300~500㎏, 약 20~30%가량 무거운 것과 비교하면 격차를 크게 줄인 것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설계에 따라 다르지만, 접착 설루션을 쓸 때와 쓰지 않을 때 전체 차량 무게의 최대 20%까지도 차이가 난다”고 했다.
격렬한 경기 중에 접착제가 쉽게 떨어져 버리지 않을까 싶지만, 태그호이어-포르쉐 레이싱팀의 제임스 린제이 매니저는 “걱정없다”고 했다. “여기에 쓰인 특수 접착제(구조용 접착제) 무게는 볼트·리벳보다 훨씬 가볍지만, 레이싱에서 발생하는 큰 충격과 하중을 거뜬히 견뎌냅니다.”
접착제는 단순히 무게를 줄이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볼트나 용접은 사용 과정에서 충격을 지속적으로 받아 연결 부분이 쉽게 손상되거나 ‘스트레스 점’이 발생하기 쉽다. 또 차량 안팎에 돌출되는 부분이 생기면서 고속 주행 시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한다. 구조용 접착제를 사용하면 이런 문제들이 단번에 해결된다. 접착면 전체로 하중이 분산되기 때문에 스트레스 점이 잘 발생하지 않는다. 또 차량 표면을 이음새 없이 더 매끄럽게 만들어 공기역학적으로도 유리해진다.
◇접착제, 배터리 조립에도 필수
1만분의 1초를 놓고 다투는 경주용차의 특성상 무게와 구조 강성, 외형의 차이는 극단적 가속과 민첩한 커브 통과가 끝없이 반복되는 레이스 트랙에서 큰 영향을 미친다. 자연히 레이싱팀들 간에는 더 가볍고 튼튼한 접착제 기술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태그호이어-포르쉐 레이싱팀의 경우 독일계 글로벌 기업 헨켈(Henkel)의 ‘록타이트(Loctite)’ 제품을 쓰고 있다. 린제이 매니저는 “헨켈의 접착제 기술 없이는 우리 포뮬러E 차량을 만들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접착제 기술은 포뮬러E 차량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안전하고 튼튼하게 만드는 데도 핵심적이다. 헨켈 측은 “고성능 배터리 셀(Cell)과 모듈을 조립하고 장착하는데도 이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접착제가 쓰인다”고 밝혔다. 무게 증가를 최소화하는 것은 기본이다. 리튬 배터리에서 발생하는 높은 온도와 화학 물질 노출에 잘 견디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 충돌 사고 발생 시 배터리가 파괴돼 쏟아져 나오지 않도록 단단하게 잡아주는 강성도 있어야 한다. 헨켈 측은 “이는 비단 포뮬러E뿐만 아니라 양산형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에도 마찬가지”라며 “세계적 전기차 업체들의 차량 배터리 조립에 우리가 개발한 접착제가 폭넓게 쓰이고 있다”고 했다.
이 밖에 배터리와 모터, 전기 공급 장치 등의 발열을 배출하는 데 필요한 냉각판 부착에도 열전달률이 높은 특수 접착제가 쓰인다. 스마트폰에서 충전이나 사용 중 발생하는 내부의 열을 밖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쓰는 접착제와 비슷한 종류다. 헨켈 측은 “항공기와 우주선, 반도체, 카메라, 의료기기, 로봇 등 수많은 첨단 기기를 만드는 데 우리 접착제 기술이 필요하다”며 “혁신적 아이디어를 현실에 더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혁신 기술인 셈”이라고 했다.
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