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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일본 닛케이평균이 ‘거품 경제’ 시절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 터널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분위기 속 일본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부활’을 내걸고 자국 내 반도체 매출액을 2030년 15조엔으로 2020년 대비 세 배로 끌어올린다는 목표까지 세웠다.
하지만 일각에선 아직 일본 경제의 발목을 붙잡는 내부 문제들도 적잖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즈키 가즈토 도쿄대 공공정책대학원 과학기술정책 교수는 WEEKLY BIZ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일본은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이 미래 세대를 책임질 ‘핵심’이라 여기고 관련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인적 자원 부족, 낮은 임금, 연공서열 등이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스즈키 교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이란 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지리적 환경과 경제를 중심으로 국제질서를 분석하는 일본의 ‘지경학 연구소(IOG·Institute of Geoeconomics)’ 연구소장으로 일본 내 최고 지경학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연공서열’ ‘낮은 임금’에 발목 잡혀”
-일본은 최근 반도체 산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같다.
“반도체는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디지털경제 등 모든 미래 산업에 필요한 핵심 기술이다. (수퍼컴퓨터를 뛰어넘는 초고속 연산능력을 가진)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들을 대체하는 날이 올 때,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반도체를 만들지 못하면 기술 발전에 뒤처지고, 다른 나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수소 연료 등 에너지 산업에도 집중하고 있는데, 이 역시 모두 다음 세대를 위한 기술력과 산업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다.”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최대 과제는.
“투자 자본과 인적 자원 확보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고령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비록 최근 반도체가 주류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젊은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적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일본은 임금 수준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못 미칠 정도로 낮고, 최근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다른 선진국과의 실질 임금 격차)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안팎으로 인재 확보가 어려워진 셈이다.”
-임금 외 다른 문제가 있다면.
“연공서열도 변화가 필요하다. 일본은 1950년대부터 근속 연수가 길수록 임금을 많이 주는 연공서열을 도입했고, 고속성장 속에서 기업들은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조직을 관리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연공서열 탓에 젊은 사람들은 능력이 있어도 돈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는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고, 이는 유능한 인재 확보가 핵심인 첨단 산업에는 치명적이다. 일부 스타트업들은 성과제를 도입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안정성을 중시하는 대기업들은 아직 주저하고 있다. 일본 경제 버블 붕괴 당시에도 기업들은 이를 바꾸지 못했는데, 아직도 달라지지 못하고 있다.”
◇일본도 미·중 갈등 속 고민 깊어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데 일본의 선택은.
“미국은 중국이 첨단 반도체를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고 보고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나섰고, 일본에도 일찍이 동참을 요구해왔다. 일본은 이런 주장을 수용했지만, 만약 미국이 압박 수위를 계속 높여 간다면 미국과 독립 노선을 걸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은 이념적·군사적으로는 미국과 같은 편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노선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미국과 다른 노선은 어렵지 않나.
“개인적 의견이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불가피하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일본은 반도체 산업 육성에 힘을 쓰고 있는데,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에 계속 동참하다 보면 성장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관세 인상 등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설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의 이익을 위해 미국을 제외하고서라도 뜻이 맞는 국가들과 자유 무역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한국, 친중(親中) 대가 치르는 중”
-한국의 지경학에 대해 평가하자면.
“한국 경제는 지난 정부의 ‘친중’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엔 친중 정책에 치우쳤다는 평가가 많다. 중국이 거대한 내수시장을 갖춘 경제 대국이란 점을 감안하면 당시 정책이 이해는 되지만, 이에 대한 리스크는 고려하지 못했다고 본다. 한국은 반도체가 주력 산업인데, (중국에 너무 의존적이었다가) 지금처럼 미·중 갈등으로 인해 대중국 수출이 어려워지면 타격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도 현 정부는 지경학적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현대차,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을 앞세워 미국에 공장을 짓는 등 투자를 하고 있다. 뒤늦게라도 리스크를 수습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한국과 일본의 협력 방안은.
“한국과 일본은 산업 구조에서 상호 보완적인 부분도 많다. 일본은 제조 장비, 화학 원료를 잘 만드는 반면, 한국은 제품 생산, 디자인, 연구·개발에 장점이 있다. 협력했을 때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삼성이 일본 요코하마에 연구 거점을 만들어 일본 기업과 힘을 합쳐 칩렛(다양한 기능의 반도체를 하나로 결합한 반도체)을 생산하는 것과 같은 사례가 늘어나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 손잡고 하나의 경제 공동체로 세계 시장에 접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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