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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

미국 부동산 중개업자들 사이에선 요즘 “이제 챗GPT 없이 일하는 건 상상도 못 한다”는 말이 나온다. 아이오와주(州) 중개업자인 JJ 요하네스씨는 “최근 매물로 나온 방 4개짜리 주택에 대한 온라인 소개 글을 몇몇 키워드와 함께 챗GPT에 맡겼는데, 혼자서 썼더라면 1시간도 넘게 걸릴 글쓰기가 5초도 안 걸렸다”고 CNN에 말했다.

국내에서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업무는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법무 법인 린 박시영 변호사는 “사무실에서 업무 중일 땐 판례를 검색해 확인하곤 하지만, 급하게 이동하거나 시간이 촉박할 땐 퍼플릭시티 등 생성형 AI 검색 엔진을 종종 활용한다”며 “최근엔 임의 경매 관련 내용을 물었는데 관련 판례까지 줄줄 검색돼 초임 변호사의 리서치 수준과 엇비슷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이처럼 AI를 능수능란하게 업무에 활용하는 AI 네이티브(원어민)가 늘면서 ‘디지털 디바이드’보다 더 무서운 ‘AI 디바이드’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디지털 디바이드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 격차를 일컫듯, AI 디바이드는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 격차를 의미한다. 프레더릭 안실(Anseel)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UNSW) 교수는 “AI는 마치 운동선수들의 약물 복용(도핑)처럼 ‘지식 근로자를 위한 도핑’이 되고 있다”며 “AI는 인력에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가져와,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WEEKLY BIZ는 최근 ‘AI 디바이드’와 관련한 논문·보고서 및 설문조사를 분석해 AI 디바이드 현상을 심층 해부했다.

그래픽=김의균

◇AI를 활용했더니…25% 더 빠르게, 12% 더 많이

최근 직장에선 생성형 AI를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느냐에 따라 보고서나 회의록을 몇 분 만에 뚝딱 만드는 사람과 몇 시간 동안 끙끙대는 사람으로 나뉜다. 외국계 기업의 PR 업무를 하는 최모(42)씨는 영어권 국가에서 18년 동안 살아 영어가 유창하지만 공식 영어 문건을 만들 땐 챗GPT와 AI 번역 프로그램 딥엘(DeepL)을 활용해 초안을 만든 뒤 수정·검토 역할만 한다. “AI로 영어 초안을 작성하면 한 2시간 걸리던 영어 원고 작성 업무를 한 30분 정도면 해치울 수 있어요.”

AI를 활용한 업무 효율성 향상은 통계치로도 입증되고 있다. 지난해 9월 하버드 경영대학원이 내놓은 보고서 ‘날카로운 기술적 경계를 넘어서: 지식 노동자 생산성과 품질에 미치는 AI 효과의 현장 실험적 증거 탐색’이 대표적 연구 사례다. 이 보고서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의 컨설턴트 758명을 대상으로 챗GPT4를 사용한 그룹과 사용하지 않은 그룹 사이 업무 차이를 계량해 냈다. 그 결과, 챗GPT4를 활용해 일을 한 측은 그러지 않은 집단보다 평균 12.2% 많이 작업을 해내고, 25.1% 더 빠르게 수행했다. 그만큼 생산성이 높았다는 뜻이다. 아울러 신제품 아이디어를 내는 과제는 AI를 활용한 쪽이 그러지 않은 동료들보다 42.5% 높은 품질의 결과물을 냈다고 평가받았다.

비슷한 조사는 또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자사의 생성형 AI앱인 ‘코파일럿’을 사용한 297명에게 물어본 결과를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설문에 따르면, 코파일럿 사용자의 70%가 종전보다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답했고, 68%는 작업 품질이 향상됐다고 응답했다. 안실 UNSW 교수는 온라인 기고에서 “AI 활용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이 풍부한 ‘인턴 군대’를 거느린 것 같다”며 “일반 AI는 더욱 전문화된 또 다른 AI를 프로그래밍하고 실행하도록 도울 수 있어, 이들의 생산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마법 같은’ 생산성 향상은 임금 격차를 벌릴 수도 있다는 게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 예상이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세계경제포럼(WEF) 발표에서 “2030년까지 (근로자) 총임금의 약 13%가 높은 수준의 디지털 기술이 필요한 작업으로 전환돼 임금 상승을 일으키는 반면, 디지털 기술이 낮은 근로자는 임금의 정체 또는 감소를 경험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양진경

◇국내 직장인 “64%는 AI 업무에 활용 안 해”

하지만 국내 직장에서 AI 활용 문화는 아직 널리 퍼지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WEEKLY BIZ가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에 의뢰해 10~11일 이틀간 20~50대 직장인 1173명을 조사한 결과 ‘직장 업무에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활용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이는 3분의 1가량인 422명(36.0%)에 불과했다. ‘활용한 적 없다’는 응답은 751명(64.0%)이었다. 연령별로도 20대 직장인만 업무에서 AI 활용 비율이 47.6%로 거의 절반에 육박할 뿐, 30대(32.4%)·40대(34.3%)·50대(33.8%) 등 30~50대 직장인 중 ‘AI를 활용한다’는 응답은 30% 초반대에 머물렀다.

지난해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20~50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도 ‘챗GPT를 이용한다’는 비율은 32.8%에 그쳤고, 유료 이용자는 전체 응답자의 5% 수준에 불과했다.

여론조사 방식 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해외 직장인들의 AI 활용도와 국내 직장인들의 AI 활용도 차이는 크게 벌어졌다. 글로벌 HR 서비스 기업인 아데코 그룹이 지난해 23국에서 직장인 3만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선 ‘직장에서 생성형 AI를 쓰고 있다’는 답변은 70%에 육박했다.

이번 WEEKLY BIZ 설문을 보면, 국내 직장인들은 AI를 잘 다루는 사람과 잘 못 다루는 사람들 사이 직장 내 성과 차이가 커질 것이라고 보면서도 AI를 잘 다루려 기울이는 노력은 크지 않은 편이었다. 설문에서 국내 직장인들은 ‘직장 업무에서 AI를 잘 다루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 사이 성과 격차가 앞으로 커진다는 데 동의하느냐’고 묻자 71.4%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AI를 잘 활용하기 위해 들인 노력에 대해 묻자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 등으로 활용법을 공부했다’(40.3%·복수 응답)는 답변을 제외하면 ‘관련 수업을 들었다’(17.1%)거나 ‘관련 서적으로 공부했다’(10.7%)는 응답은 낮은 편이었다. ‘아무것도 들인 노력이 없다’는 응답률도 33.3%에 이르렀다.

일러스트=양진경
그래픽=양진경

◇1970~1980년대생도 AI 앞 위축될 수 있어

앞서 디지털 기기를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느냐 차이로 나타난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은 연령에 따라 확 다르게 나타나곤 했다. 대체로 젊은 층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고, 고령층은 미숙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디바이드란 신풍조는 비교적 젊은 3050세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WEEKLY BIZ 조사에서도 30대 직장인이나 50대 직장인이나 직장에서 AI를 활용한다는 비율은 엇비슷했고,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수준도 ‘자료 검색’ ‘외국어 번역’ 등 초보적 수준에 머문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 교수는 “AI 디바이드는 디지털 디바이드와 달리 같은 젊은 세대에서도 처음부터 AI란 도구를 쭉 사용해 익숙해진 사람과 아예 이용하지 않아 낯선 사람들 사이 격차가 벌어지는 특징이 있다”면서 “이는 같은 젊은 세대 안에서도 업무적으로 ‘절박한 필요성’이 있는지, 업무적으로 ‘빠른 업무 속도’보다는 ‘정확성’을 우선으로 하는지, 직장에서 AI 활용을 권장하는지 등에 따라 벌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에 따라 자칫 새 기술을 전향적으로 스스로 배우려는 의지가 없다면 개개인 사이 AI를 다루는 능력 차가 앞으로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치 디지털 디바이드로 키오스크에 주문하기를 두려워하는 고령층이 적잖은 것처럼, 앞으로는 AI만 보면 위축감이 드는 1970~1980년대생도 많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사용자들이 AI에 ‘이러저러하게 해달라’고 하는 명령어를 뜻하는 ‘프롬프트’를 얼마나 요령껏 잘 작성할 수 있느냐가 AI 활용 능력을 가른다고 설명한다. AI를 고차원적으로 활용하는 데엔 다소 교육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인 과정 정도는 몇 시간 만에도 익힐 수 있어 시급히 AI 사내 재교육이나 온·오프 강좌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난트 아르가왈 에드엑스(edX) 창립자 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CNBC에서 “(AI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 정제 및 입력 기술인) 프롬프트에 능숙할수록 이메일과 보고서 작성, 파워포인트 작성과 같은 작업을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서 “모든 이가 배워야 할 (프롬프트) 기초 사항은 2시간 정도면 익힐 수 있다”고 했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가 최근 출시한 인공지능 모델 ‘GPT-4o’의 구동 화면. 기존 모델은 주로 텍스트로 대화가 가능했다면, 이 모델은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실시간 질문과 답변이 가능해졌다. /게티이미지

◇기업들, AI를 무기로

AI 격차는 개인뿐 아니라 기업 사이에서도 나타나는 추세다. 일부 기업은 이미 AI를 활용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회사들은 이미 매장 재고 관리나 의류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를 활발히 활용하고 있다. 아이스크림 회사 벤앤제리스는 AI 기능이 있는 카메라를 설치해 식료품점 냉장고 이미지를 체크한 뒤 어떤 제품이 얼마나 부족한지 유통업체에 실시간으로 알린다. 벤앤제리스 모기업 유니레버의 캐서린 레이놀즈 대변인은 “AI 기술을 적용한 카메라를 설치한 가게에선 가장 인기 있는 아이스크림 제품이 신속하게 보충됐기 때문에 매출이 13% 늘었다”고 밝혔다.

미국 의류 기업 아베크롬비 앤드 피치에선 의류 디자인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인 ‘미드저니(Midjourney)’를 사용해 초벌 작업을 하며 업무 효율을 높인다. 농기계 회사 존디어에선 AI 카메라를 통해 잡초가 있는 곳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해 제초제를 더 효율적으로 뿌리는 방식을 개발했다. 존디어 측은 이런 기술로 지난해 800만갤런(약 3028만L)의 제초제 사용을 절감했다고 소개했다. 미국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Macy’s)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고객들에 이메일을 보내고, 온라인으로 제품 설명을 추가하는 식의 맞춤형 마케팅에 나서기도 한다. AI를 마케팅·영업에 적극 도입한 기업들의 성과가 높아지면서, AI에 서툰 기업들과의 성과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올해 2월 딜로이트 글로벌과 포천이 ‘글로벌 CEO 서베이’를 통해 전 세계 CEO(최고경영자) 107명을 조사한 결과, 업무 자동화 부문에 생성형 AI를 채택 중이라고 답한 CEO는 58%에 이르렀고, 자동화 영역 외에도 생성형 AI를 도입할 계획이 있다는 CEO는 48%에 달했다. 이미 AI 기술이 각 기업들에 빠르게 이식되고 있다는 뜻이다.

네이선 윌머스(Wilmers)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는 ‘생성형 AI와 불평등의 미래’란 연구 보고서에서 “일부 기업은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데 다른 기업보다 훨씬 능숙하다는 점이 머지않아 입증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기업 사이 상당한 격차가 발생하고, 이에 따라 직원 임금 수준도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도 세계경제포럼에서 “AI 혁명으로 인한 격차는 우선 회사 차원에서 나타날 것”이라며 “AI 기술을 채택하는 혁신적이고 선도적인 기업은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할 가능성이 높고, AI 기술 구현하기를 꺼리거나 구현할 수 없는 기업보다 앞서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역과 나라 사이도 격차 벌어져

시야를 넓히면 AI는 개인이나 기업 차원의 격차를 넘어, 한 국가 내에서 지역별 격차를 벌리거나 국가들 사이 차이도 벌리고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미국에서 떠오르는 AI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등 미국 서부 해안 지역은 챗GPT 월간 평균 검색 비율이 높아 AI 활용이 높은 지역으로, 루이지애나·앨라배마·미시시피주 등은 챗GPT 검색 비율이 낮은 곳으로 분류됐다. 미국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도시화됐고, 소득이 높으며, 교육 수준이 높고, 아시아인이 많으며, 기술 관련 일자리가 많은 곳일수록 챗 GPT에 대한 접근성이 높고, 이로 인한 미국 내 AI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는 게 이 보고서 내용이다.

지역을 넘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 AI 디바이드도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선진국은 인구 고령화와 높은 인건비 등으로 AI 도입에 대한 필요가 높은 반면, 개도국은 디지털 기반 시설이 부족하고, 근로자 인건비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 AI 도입에 대한 동기가 약하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IMF 블로그에서 “저소득 국가 상당수는 AI 이점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이나 숙련된 인력이 없어 (국가 사이) 불평등이 심해질 위험이 커진다”며 “국가는 포괄적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AI 기술에) 취약한 근로자를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AI 디바이드(Divide·격차)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의 격차를 뜻한다. 디지털 디바이드가 디지털 기기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와 같은 하드웨어적 차이에서 발생했다면, AI 디바이드는 AI에 무엇을 물어보고 어떤 답변을 이끌어낼지에 대한 소프트웨어적 능력 차이에 기인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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