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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더위에 영향받지 않는 것은 없다. 중력처럼 말이다.”

200여 년 전 프랑스 수학자 조제프 푸리에가 한 말이다. 올해도 여름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우리는 또 한동안 더위와 함께 살 궁리를 해야 한다.

/그래픽=김의균

더위가 경제학과 어떤 관계가 있을 수 있나 싶지만, 실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우리 인간이 경제의 주체이고, 우리가 더위에 영향을 받는데, 더위가 어찌 경제와 무관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더운 날씨는 여러 면에서 경제에 해악이다. 하버드대 멜리사 델 교수, 노스웨스턴대 벤저민 존스 교수,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벤저민 올켄 교수는 이 분야의 뛰어난 3인방이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경제학술지인 미국경제리뷰(AER)에 2009년 게재한 논문이 유명하다. 미주 대륙의 12국을 종합 분석한 결과, 같은 국가 내에서도 더운 지역일수록 소득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어 2012년 후속 논문에서는 ‘더운 나라들은 보통 가난하다’는 통념에만 불과했던 상관관계를 50년 이상의 기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인과관계로 밝혀 버렸다. 물론 싱가포르처럼 예외도 있지만, 기온이 높은 나라가 대체로 가난한 건 ‘우연’이 아니란 것이다.

높은 기온이 어떻게 경제 성장을 저해할까. 날씨가 너무 더울 경우 그렇지 않아도 에어컨 없이 일하는 야외 근로자들은 생산적으로 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농부와 건설 노동자가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신기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기온이 높은 경우 사회적 갈등이나 쿠데타와 같은 정치적 불안 요소가 더 잦다. 그 결과, 정치 지도자들이 더 불규칙적으로, 그리고 자주 바뀌고, 이는 경제 불안정성을 가중시킨다.

혹자는 ‘아무리 더운 날에도 에어컨 바람 빵빵한 사무실에서 일하니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상관이 없지 않다. 최근 학계에선 높은 기온이 실내 근로자 또는 전문직 종사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019년 논문에선 미국 캘리포니아 판사들을 대상으로 연구했는데, 기온이 높은 날일수록 덜 호의적인 판결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푹푹 찌는 날씨에서 하는 출근, 열대야 불면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의 박사 논문도 기업지배구조와 기후변화 관련 연구였는데, 높은 기온이 미국 기관투자자들의 주주 의결권 행사에 어떤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전문성 있는 기관투자자들조차도 날이 더울수록 집중력이 떨어져 경영진에게 보다 의존적이고 관대한 의결권 행사를 한다고 밝혀졌다. 더위가 지배구조 감시에까지 악영향을 주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채널로도 우리 경제를 힘들게 한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사실을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더위는 최소한 경제엔 좋을 것이 없다. 적어도 ‘기후변화 별것 아니야’란 생각은 하지 말자. 너무 더워 실내 생활만 해야 하는 지구라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니까.

김준목 경제 칼럼니스트(재무금융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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