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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의균

영국 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MS)와 AI(인공지능) 개발 스타트업 ‘인플렉션(Inflection)’의 협력 관계가 반(反)독점 규제를 피하기 위한 ‘편법 인수’라고 보고 조사에 착수했다고 16일 밝혔다. 영국 정부의 반독점 주무 부처인 경쟁시장국(CMA)은 이날 MS가 인플렉션의 창업자와 직원을 자사의 AI 관련 부서에서 일하도록 파트너십을 맺은 것이 인수·합병을 피하기 위한 방안이었는지를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미국의 경쟁 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도 같은 사안을 조사 중이라고 알려졌다.

기업 간 파트너십 및 인력 교류는 예전부터 있어 왔다. 그런데 왜 영국·미국 정부는 기업 간 파트너십이 AI 분야의 독점으로 이어진다며 견제에 나섰을까. WEEKLY BIZ는 AI 규제, 그중에서도 빅테크 기업의 AI 시장 독점을 막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는 영국 CMA가 MS 조사에 앞서 발표한 85쪽짜리 ‘AI 기초 모델(Foundation Model·FM)’ 보고서를 분석했다. ‘기초 모델’이란 영국 정부가 ‘다른 작업의 기초가 된다’는 의미로 고성능 AI를 부르는 용어다. 생성형 AI(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결과를 만들어내는 AI)나 LLM(거대 언어 모델)과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

◇인재 확보 전쟁 ‘부익부 빈익빈’ 위험

역설적이게도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자원은 ‘인간지능’이다. 실력 있는 AI 개발자 등 고급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기업들 사이에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보고서는 적었다. 예를 들어 MS가 사실상 최대 주주인 오픈AI는 구글의 인력을 빼오기 위해 연봉 1000만달러(약 138억원)를 제시했다고 알려졌다. 구글이 이런 오픈AI의 인재 빼가기에 대응하기 위해 고참 AI 연구진에게 주식을 수백만 달러어치 지급했다는 뉴스도 지난해 11월 나왔다.

막대한 돈이 투입되는 이런 인력 전쟁은 돈 많은 빅테크 기업에만 유리하게 작용해 기업 자체의 부익부 빈익빈, 나아가 독점을 강화하는 요인이라고 보고서는 지목했다. ‘좋은 인재 유치→좋은 제품→높은 수익→좋은 인재 유치…’식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빅테크 기업에만 형성되고, 신규 시장 진입자는 ‘좋은 인재 유출’로 시작하는 정반대의 어려움을 겪을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인 전쟁은 빅테크 기업이 아래 언급할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그래픽=김의균

◇경쟁 제거책이 된 ‘파트너십’

빅테크 회사는 대부분 AI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기업들의 특장점은 이미 전 세계에 많은 소비자를 확보하고 있고, 오랜 기간 축적된 데이터 또한 방대하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AI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빅테크 기업을 GAMMA(구글·아마존·메타·MS·애플)라고 지칭했다. 여기에 고성능 AI 반도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Nvidia)까지 합치면 GAMMAN이 된다.

보고서는 AI 분야의 파트너십을 빅테크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기업들이 단순히 자사의 기존 제품·서비스만 활용해 AI 시장을 독점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GAMMAN끼리, 혹은 GAMMAN과 다른 유망한 스타트업 등이 파트너십을 맺는 방식을 통해 ‘그들만의 AI 생태계’를 강화하는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다음은 보고서 내용이다. “2019년 이후 GAMMAN 기업과 파트너 사이에 90건이 넘는 파트너십을 파악했다. 대부분의 파트너십은 인수·합병 혹은 지분 50% 이상 획득을 하지 않는 수준의 투자였다. 이는 인수 등을 할 때 거쳐야 하는 반독점 심사를 피하려는 목적으로 추정된다. 여러 GAMMAN 기업이 같은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는 등 중복되는 파트너십도 많았다.” 파트너십을 통해 시장 경쟁자를 ‘우리 회사’의 틀로 끌어들여, AI 분야를 독점하려는 의도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MS·인플렉션 파트너십, ‘선’을 넘었다

CMA는 보고서에서 이처럼 의심이 가는 파트너십의 사례로 MS와 인플렉션을 들고 있다. 지난 16일 발표한 반독점 조사에 앞서 그 배경을 보고서에 적은 셈이다. 인플렉션은 미국의 AI 기업으로 챗GPT 등에 비해 더 감성적으로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AI를 지향한다. 딥마인드 공동 창업자이자 구글 인공지능 부서장 등을 거친 무스타파 슐레이만이 창업한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의 FM 기업 보고서 및 인플렉션이 발표한 보도 자료 등에 따르면 MS는 지난해 AI 부서를 신설하면서 슐레이만을 부서장에 앉혔고, 인플렉션 인력 대부분을 그 부서에서 일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인플렉션에 6억5000만달러를 주었다.

인플렉션은 아울러 지난해 6월 13억달러나 되는 신규 투자를 유치했는데, 이 투자를 주관한 회사가 MS 및 엔비디아였다. CMA는 돈을 주고 인력을 흡수하고, 이후에 주도적으로 추가 투자를 유치하는 등 MS와 인플렉션의 밀접한 관계를 볼 때 ‘파트너십’이 MS에 의한 인플렉션의 인수·합병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빅테크 기업이 인수·합병할 때는 까다로운 반독점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이를 피하려는 ‘꼼수’를 썼다고 본 것이다.

◇AI 학습용 데이터도 독점 조짐

CMA는 빅테크 기업이 AI 분야의 독점을 강화할 가능성이 큰 또다른 요인으로 ‘데이터 독점’을 꼽았다. AI를 학습시킬 데이터는 온라인에서 아무나 가져다 쓸 수 있는 무료 데이터부터 유료 학술지처럼 저작권이 매우 철저하게 관리되는 논문까지, 접근성이 많이 다르다. 보고서는 “방대한 데이터는 AI를 훈련하는 데 필수”라면서 “최근 저작권 규제 강화 조짐에 맞춰 개발사들은 AI 훈련을 위한 데이터를 합법적으로 확보할 방법을 점점 더 많이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조치엔 데이터 파트너십, 저작권 사용 계약 등이 포함된다. 모두 돈이 드는 문제다.

데이터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트렌드는 일단 긍정적이다. 그런데 ‘독점’의 틀로 보면 문제도 보인다. 데이터에 비용을 지불할 자금력이 있는 기업의 AI가 (좋은 데이터를 써서) 더 빨리 발전하고, 이 성능 좋은 AI가 돈을 더 많이 벌어들여 데이터를 사들일 여력이 더 생기는 부익부 빈익빈 구조가 만들어지고 독점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보고서에 소개된 ‘데이터 계약’ 사례는 대부분 빅테크 기업이었다. 예를 들어 오픈AI는 학술지 회사인 ‘악셀 스프링거’와 콘텐츠 사용 계약을 맺었고, 지금도 웹사이트에 ‘데이터 파트너’를 찾는다는 공지를 올려두고 있다. 구글은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 ‘레딧’에 연간 6000만달러를 내고 게시물 데이터를 AI 학습에 활용 중이다.

◇“업계 주도형 AI 규제는 위험”

CMA는 이런 요인을 감안할 때 AI 관련 규제를 만드는 절차가 AI 관련 기업, 특히 이미 IT 분야의 독점을 강화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에 의해 주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서에 반복해서 경고한다. 예를 들어 특정 기업이나 기업군(群)의 AI 독점을 막으려면 한 AI 서비스에서 다른 서비스로 바꾸려 할 때 걸림돌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표준’ 마련이 중요한데 이런 규제 등을 빅테크 업계에 맡겨서는 위험하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접촉한 많은 전문가는 빅테크 기업들이 앞장서서 FM에 관한 ‘게임 규칙’을 정하지 못하도록 방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했다.

☞인공지능 기초 모델 보고서

영국 정부의 반(反)독점 주무 부처인 경쟁시장국(CMA)이 지난해부터 내고 있는 AI 분야의 독점에 관한 보고서 시리즈. 빅테크 기업의 AI 독점이 어떻게 고착될 수 있고 그 위험은 무엇인지를 주로 다룬다. 지난해 9월 보고서 초안을 공개했다. CMA는 초안을 토대로 기업·소비자 및 주요국 AI 관계 부처 등의 의견을 수렴해 지난해 4월 업데이트된 보고서를 내놨다. 올해 안에 추가 보고서를 낸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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