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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층 빌딩인 부르즈 칼리파에서 내려다본 두바이 시내 전경.

유럽의 ‘수퍼 리치’들이 고향을 떠나 중동으로 향하고 있다. 올해 ‘글로벌 선거의 해’를 맞아 유럽 주요국에서 부자 증세 공약이 이어지며, ‘세금 폭탄’ 피난길에 오른 셈이다. 이에 유럽 부자들이 1인당 수천억원, 많게는 수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들고 이동하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부(富)의 구조’가 완전히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제 투자 이민 자문회사 헨리앤드파트너스는 “전 세계가 지정학적 긴장과 경제적 불확실성, 사회적 격동기를 맞이하면서 기록적인 숫자의 자산가들이 (다른 나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만장자 대이동 시대

18일 헨리앤드파트너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적으로 12만8000명의 백만장자들이 본국을 떠나 새로운 국가로 이주할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해(12만명)보다 8000명이 늘었다. 이 회사의 데이터 연구 책임자인 앤드루 아몰리스는 WEEKLY BIZ에 “최근 몇 달간 유럽 주요국 자산가들로부터 받은 투자 이민 관련 문의는 지난해 4분기 대비 60% 증가했다”며 “수십 년간 이어졌던 평화와 번영 이후 유럽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많은 자산가들이 투자 이민을 ‘필수적 백업 플랜’으로 고려하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자산가들이 앞다퉈 탈출하는 나라는 영국이다. 올 한 해에만 9500명의 영국인 백만장자들이 본국을 떠날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4200명)의 두 배 이상이며, 역대 최다치다. 가장 큰 이탈 요인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인한 경제적 불안정성의 고착화다. 헨리앤드파트너스에 따르면, 브렉시트 직후인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1만6500명의 백만장자가 영국을 떠났다. 세계 백만장자 상위 15국 순위에서 지난 10년간 독일·프랑스·미국·호주 등에서는 백만장자 수가 증가한 반면, 영국의 백만장자 수는 8% 감소했다.

특히 지난 4일 치러진 조기 총선을 앞두고 영국 자산가들의 불안은 최고조에 달했다. 노동당에 정권을 넘겨줄 위기에 처했던 집권 보수당은 부자들이 국외 소득세를 내지 않거나 적게 낼 수 있도록 하는 ‘송금주의 과세제’를 폐지하는 공약까지 내걸었다. 그럼에도 보수당이 패하고 노동당이 총선에서 이기며, ‘부의 이탈’은 더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부자 증세를 주장해온 노동당이 세수 확보를 위해 상속세·자본이득세율(부동산·주식·채권 등을 처분해 발생하는 이득에 부과하는 세금)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불안이 시장을 휩쓸고 있다. 지난달 가디언은 당 고위 관계자를 인용, “노동당이 현재 24%인 부동산 자본이득세율을 소득세율과 같은 40%로 인상하는 급진적 방안도 열어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래픽=김의균

◇자산가들의 신(新)아라비안나이트

이에 영국을 떠난 자산가들이 향하는 곳은 중동이다. 특히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는 수퍼 리치들에게 ‘제2의 고향’으로 인기가 높다. 올해에만 백만장자 6700명이 두바이로 이주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행(3800명)의 두 배에 가깝다. 무(無)소득세, 고급 라이프스타일, 전략적 위치를 갖춘 UAE는 전 세계 백만장자들이 이주해오는 최고의 목적지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최근 투자 이민 업체엔 두바이 이주를 문의하는 프랑스 부유층의 연락도 빗발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0일 치러진 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극우 국민연합(RN)이 득표율 30%를 넘기며 1위를 차지하면서다. RN은 연대세(ISF) 과세 범위 확대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워 왔다. 연대세는 130만유로(약 19억6000만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개인에게 보유액 대비 0.5~18% 과세하는 제도다.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연대세 항목 중 요트·수퍼카·귀금속 등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했는데, RN은 이를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코노미스트는 “과세 정책 때문에 위험에 처할 수 있는 프랑스 부유층들이 (두바이 내) 부동산을 구입하고 있다”며 “유럽인들은 가자지구 분쟁으로 인한 중동 정세의 불안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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