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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시부야의 34층짜리 복합 시설 시부야 히카리에 건물 8층에 마련된 'd47 뮤지엄' 공간. 군마현을 주제로 전시하던 모습이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 제공

‘100년 만에 한 번, 시부야 대개조.’

일본 언론에서 요즘 시부야를 소개할 때 종종 쓰는 말이다. 도쿄 시부야의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2012년에 문을 연 34층짜리 ‘시부야 히카리에’라는 건물이다. 개장 당시 4000여 명의 인파가 몰려, 개장 시간을 10분 당겨 오전 10시20분에 문을 열었다는 사실이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뽑힐 정도였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린다.

히카리에에서 눈여겨볼 곳은 8층에 있는 ‘d47 뮤지엄’이란 공간이다. 이곳을 꾸민 사람은 나가오카 겐메이다. 일본디자인센터에서 근무했던 겐메이는 2000년 ‘디앤드디파트먼트(d&department)’를 세운다. 그는 ‘아무 부담 없이 와서 무심코 손에 든 물건이 모두 멋진 디자인 상품인 곳’ ‘꼭 필요해 사야 하는 물건인데, 디자인까지 멋있게 된 곳’과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회사 이름을 디자인과 백화점을 합쳐 디앤드디파트먼트로 정하고, 1호점을 도쿄에 냈다.

디앤드디파트먼트는 수명이 긴 디자인을 ‘좋은 제품’이라고 말한다. 일본이 막 산업화되던 1960년대, 그 당시 제품 중엔 지금 봐도 세련된 제품이 많다. 나가오카는 이 당시 디자인된 제품을 재해석해 대중에게 오래 전 디자인된 제품을 사용해보라고 권한다. 무슨 뜻일까? 싫증 나기 쉬운 디자인으로 제품을 교체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오히려 오래 볼수록 정감이 가는 디자인을 구사하라는 의미다.

게다가 일본은 지역마다 편차가 심하다. 도쿄는 파리·런던·뉴욕과 경쟁하는 대도시로 성장했지만, 시골에 가보면 여기가 일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낙후된 지역도 있다. 나가오카는 이 같은 지역 간 편차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별로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소개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는 소비자가 꽤 있었다. 2002년에는 1960년대 상품을 복각(復刻)해서 재판매하는 프로젝트 ‘60 비전(vision)’을 추진했다. 과연 1960년대 디자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다. 겐메이의 안목이 대단하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곧이어 디앤디파트먼트 2호점을 오사카에 냈는데, 상업 시설로는 최초로 일본에서 ‘굿디자인’ 상을 받았다.

그 소문은 도큐그룹에까지 들어갔다. 새로운 건물이 손님을 끌려면, 그 곳에만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에 도큐그룹은 도쿄 한복판에 지어진 시부야 히카리에 건물 안으로 디앤디파트먼트를 불러들였다. 특정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이 아닌 일본 전체를 커버한다는 의미해서, 매장 이름도 ‘d47 뮤지엄’이라 명명했다. ‘d47 뮤지엄’의 ‘47′은 일본의 47개 도도부현을 의미한다.

이 뮤지엄에선 두 유형의 전시를 한다. 제품을 중심으로, 예를 들어 ‘발효식품’을 중심으로 전시할 땐 일본 47개 도도부현의 대표 발효식품을 하나씩 선정해서 전시한다. 지역별로 어떤 게 대표 상품인지 보는 자체가 흥미롭다. 지역을 중심으로, 예를 들어 ‘교토’를 중심으로 전시할 땐 그 지역의 식당·숙소·관광지를 선정해 전시한다. 얼핏 ‘기존에 교토 관광서적은 차고도 넘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안목 고수인 나가오카가 선정한 장소답게, 늘 신선하고 새로운 곳으로 넘쳐난다. 두세 달 정도 전시가 끝나면 기존 전시의 결과물을 책자로 발간한다. 다음 달엔 이들의 최초 해외 프로젝트인 ‘디 디자인 트래블 제주(d design travel jeju)’ 한글판이 출간될 예정이다.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하다.

디앤디파트먼트가 스스로 시부야에 진출하려고 계획했다면 그 프로젝트는 성사될 수 없었을 것이다. 시부야의 비싼 임대료 때문이다. 하지만 거꾸로, 도큐그룹이 먼저 시부야에 입점해 달라고 제안했기에 가능했다. 일반 매장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은 임대료를 책정해 준 까닭이다.

수익이 비용보다 커야 비즈니스 모델이 성립한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선 ‘마른 수건을 짜내는’ 방식도 있지만, ‘독특한 공간을 꾸미고자 하는 건물주’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도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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