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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이란현 카발란 증류소의 숙성고에서 리위팅 킹카그룹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카발란 제공

스코틀랜드에선 물과 보리, 거친 바람이 위스키 원조의 맛을 만든다면, 여기에선 물과 보리 그리고 더위가 열대의 풍미를 더한다.

지난 21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남쪽으로 1시간쯤 달려 도착한 이란현(縣) 카발란(KAVALAN) 증류소. 낮 기온이 섭씨 35도를 찍은 이날, 직원들은 2m 남짓한 토치를 오크통 안으로 들이밀고 오크통 안쪽 벽면을 새까맣게 태우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숯처럼 그을린 오크통은 증류액을 품고, 숙성고 안에서 아열대의 더위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그 인고의 시간이 증류액에 달큼 쌉쌀한 향과 열대 과일의 풍미를 덧입히는 것이다. 2010년 전 세계 유명 위스키 대회인 스코틀랜드 ‘번즈 나이트’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유수의 위스키를 물리치고 깜짝 1위를 차지한 위스키, 세계적인 위스키 품평가 찰스 맥린(MacLean)의 입에서 “열대 과일의 맛이 나네요. 오 마이 갓”을 튀어나오게 한 그 위스키는 이렇게 태동했다.

그래픽=김현국

글로벌 위스키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대만 위스키의 비법을 들어보려 WEEKLY BIZ가 현지 증류소를 찾아 카발란의 모기업인 킹카(金車) 그룹 리위팅(李玉鼎) 대표를 만났다. 오크통에서 간장 수준의 찐한 색감의 위스키 원액을 따라 보이던 리 대표는 말했다. “한국 영화, K팝 덕 좀 봤습니다. 카발란이 K콘텐츠에 소개되니, 동남아와 유럽에까지 카발란 판매량이 뛰어오르더군요.”

실제로 BTS(방탄소년단) RM이 유튜브 채널 슈취타에 출연해 카발란을 들고 “개인적으로 되게 좋아합니다”고 한마디 하자 면세점에선 카발란 씨가 말랐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한 카발란을 보고 ‘카발란 마실 결심’을 했다는 이들도 적잖다. “한궈(韓國), 감사합니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섞어 감사를 표한 리 대표는 “한국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아, 이르면 오는 10월 카발란 ‘한국 특별 에디션’을 내놓을 계획”이라며 “한국은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이기 때문에 준비한 선물”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세간의 편견을 깨고 탄생한 카발란

대만에서 천사들은 유독 가혹하게 자신의 몫을 떼어갔다. 술을 오래 보관하다 보면 증류액이 공기 중으로 증발해 양이 줄어드는 현상을, 천사가 자신들 몫을 챙겨간다는 뜻으로 ‘에인절스 셰어(Angel’s Share)’라 부른다. 그런데 늘 서늘한 스코틀랜드에선 매년 평균 2%가 천사의 몫으로 날아갔지만, 연평균 섭씨 23도인 아열대 기후 대만에선 매년 15% 안팎이 사라졌다. 이런 아열대 날씨에선 10년 만 지나도 위스키 원액이 거의 사라질 정도란 뜻이다. 이미 미스터브라운(Mr.Brown)이란 커피 브랜드로 대만 식품 대기업에 오른 킹카그룹이 무더운 대만에서 위스키를 만든다고 할 때 사람들이 손사래를 친 이유다. 하지만 킹카그룹 창업자 리텐차이(李添財) 회장과 그의 아들 리 대표는 “방향성이 맞다면 어려움은 헤쳐나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2005년 초부터 바다 건너 오크통과 증류기를 사들였다. 그러고 9개월 만인 2005년 12월, 대만의 원주민 중 하나인 카말란(Kamalan)의 이름을 본뜬 대만의 첫 위스키 카발란의 증류소를 지어냈다.

-유럽엔 수백 년 된 증류소도 많은데, 왜 하필 위스키 사업에 뛰어들었나.

“1956년 설립된 킹카그룹은 커피, 차와 같은 음료 사업을 주로 했다. 2000년대 들어선 대만 국내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갖추게 됐고, 제품군을 확장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아버지(리텐차이 회장)와 나는 기업이 세대를 거듭해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전망이 괜찮은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우리는 글로벌 위스키 시장의 성장세를 읽어냈고, 고급 술인 위스키가 장기적으로 킹카그룹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왼손으로는 하던 사업을 하고, 오른손으로 싱글 몰트(맥아만 사용해 만든 위스키) 증류소를 짓기 시작했다.”

-대만에서 위스키를 만든다고 했을 때, 더운 날씨 탓에 부정적 시선도 많았다던데.

“사업 평가 단계에서 우리는 해외에 있는 수많은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이해는 됐다. 위스키 종주국인 스코틀랜드는 물론 같은 아시아에서 위스키로 유명한 일본도 날씨가 선선한 편이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조차 대만 같은 아열대 기후에서 위스키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위스키를 숙성했다가는 높은 기온 탓에 오크통에 술이 남아나질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숙성 환경은 위스키의 맛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물’과 ‘발효 노하우’에다 ‘성공시키겠다는 마음’이 모이면 100점짜리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픽=김현국

◇깎고, 굽고, 태운 ‘역발상’의 맛

연평균 기온이 섭씨 23도인 대만 기후는 위스키 생산에 이상적 환경은 아니다. 그러나 킹카그룹은 더위를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보는 역발상으로 접근했다. 더위에 증류액 증발량은 많지만, 숙성도 금방된다는 점을 이용해 아열대 기후에 최적화된 위스키 생산법도 고안했다. 여기에 위스키 맛집의 비법을 추가했으니, 오크통 내부를 깎고(Shaving), 불로 굽고(Toasting), 다시 강한 불로 태우는(Recharring) 이른바 ‘S.T.R 기법’이었다. 이렇게 완성된 오크통들은 숙성고에서 차곡차곡 쌓인 채 더위를 머금고 카발란의 풍미를 만들어낸다. WEEKLY BIZ는 이날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숙성고 내부를 살펴봤다. 더위를 식히려 숙성고 창문을 열어둔 게 아니라 오히려 꼭꼭 닫아둬 사우나처럼 열기가 찬 모습이었다. 카발란만의 숙성 속도를 높이는 비법으로, 3년 묵은 카발란에서 12년짜리 제품이 풍길 법한 깊은 맛과 열대의 향이 더해진다는 설명이다.

-더운 날씨가 오히려 짧은 숙성 기간에도 특유의 진득한 열대 과일 맛을 내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가 많다.

“그렇다. 기온이 높다는 건 오히려 짧은 기간 내 오크통의 향과 맛이 위스키에 잘 녹아드는데 도움을 준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만드는 과정은 상당히 단순하다. 원료도 물, 맥아(싹을 틔운 보리), 효모가 사실상 전부다. 중요한 건 제조 단계별로 사용되는 각 증류소만의 기술력이다. 카발란은 기술력으로 열대과일처럼 달달한 풍미와 높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목넘김을 만들어냈다.”

-카발란 제품들은 대부분 50~60도로 알코올 도수가 높은데, 이유가 있나.

“차별화를 위해서다. 우리가 위스키 시장에 막 진출했을 때, 유명 제품들은 알코올 도수가 대부분 40도였다. 그래서 우리는 오크통에서 직접 꺼내 도수가 높고, 맛과 향이 깊게 농축된 ‘캐스크 스트랭스(원액 숙성 후 물을 섞지 않고 바로 병입하는 위스키)’ 제품들을 앞세워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특히 카발란 위스키는 도수가 높지만 고도수 특유의 스파이시함이나 알코올이 튀는 느낌이 없어서 매력적이다.”

-카발란만의 위스키 제조 기술은 무엇인가.

“대표적인 건 ‘S.T.R 기법’이다. 오크통 내부를 깎고, 불로 굽고, 다시 강한 불로 태운다는 뜻인데, 위스키 풍미를 살리기 위한 우리만의 오크통 제조법이다. 오크통 내부를 숯처럼 그을려서 바닐라, 카라멜 같은 풍미를 입힌다. 이 공법은 현재 다른 증류소들에서도 따라 할 만큼 업계에서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우리는 우리만의 차(茶) 노하우를 위스키 증류에도 사용했다. 차를 우릴 때 처음 나오는 찻물은 맛이 덜하고, 마지막 찻물은 쓴맛이 지배적이다. 중간 부분이 찻물의 정수(精粹)로 평가받는데, 우리는 위스키를 증류할 때도 가장 풍미가 강한 중간 증류액만 오크통에 담아 숙성한다.”

-기존 음료 사업이 카발란 위스키의 밑천이 된 건가?

“어떤 음료를 만들든 우리는 ‘품질 제일’이란 원칙을 지켜왔다. 카발란의 맛도 이런 경영 원칙에서 나왔다고 본다. 특히 위스키, 커피, 차는 모두 기본적으로 물이 중요하다. 카발란 증류소가 위치한 이란현은 대만에서도 ‘물의 고향’이란 별명이 있다. 지반이 돌로 돼 있어, 땅으로 물이 스며들면 자연적으로 여과 작용이 일어나 물이 달고 깨끗하다.”

◇카발란 대표의 ‘최애’ 위스키는?

카발란 증류소가 내년이면 설립 20주년을 맞는 가운데, 카발란은 세계 유명 주류 대회를 휩쓸고 있다. 현재 각종 주류 대회에서 누적 907개의 금메달을 거머쥐었고, 카발란 증류소는 지난해 국제 위스키 대회(IWC)로부터 ‘올해의 증류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리 대표는 “한국으로 출장 왔을 때 소주와 맥주를 섞는 술(폭탄주)을 마셔봤다”면서도 “술도 습관이라 출장 갈 때면 나에게 익숙한 카발란 한 병 들고 출장 길에 나선다”고 했다. 카발란 대표는 자사 제품 중 어떤 위스키를 제일 좋아할까. 그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면서 운을 뗐다.

-카발란이 추구하는 맛을 가장 잘 대표하는 제품은 무엇인가.

“‘카발란 솔리스트 비노바리크’라고 생각한다. 비노바리크는 2015년 세계 위스키 어워즈(WWA)에서 ‘세계 최고의 싱글몰트’로 선정된 제품이기도 하다. 비노바리크를 숙성한 오크통은 내부 상태, 굽는 온도 등 하나하나에 카발란의 기술력이 집약됐다. 이렇게 완성된 오크통 안에서 5~8년 숙성된 위스키는 맛이 독보적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카발란 제품은.

“최초의 카발란 위스키인 ‘카발란 클래식’과 2021년 출시된 ‘트리플 셰리 캐스크’ 제품을 가장 즐겨 마신다. 카발란 클래식은 열 개가 넘는 오크통에서 원액을 하나씩 맛보고 직접 골라 만들었다. 트리플 셰리 캐스크는 올로로소, 페드로 히메네즈, 모스카텔 등 세 가지 셰리 오크통에서 나온 원액으로 만들었다. 풍미가 복합적이면서도 마시는 데 부담이 없다. 모든 카발란 제품은 고유의 개성이 강하다. 나에게는 다 자식들과 같은데, 자식들이 얼른 성인이 돼서 자립하길 바랄 뿐이다.”

그래픽=김현국

-위스키는 어떻게 마시는 걸 선호하나.

“얼음을 넣고 마시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무슨 술이든 가장 중요한 건 ‘누구와 마시는지’라고 생각한다. 저렴한 반찬 몇 가지밖에 없는 조촐한 자리라도 좋은 사람, 즐거운 분위기가 있다면 술과 음식 맛은 자연스레 살아난다. 소주를 마시든 몇 십만원짜리 위스키를 마시든, 이건 변함이 없다.”

◇“감사합니다, 한국”

특히 한국은 카발란 사랑에 푹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발란을 수입·유통하는 골든블루 인터내셔널은 “올해 상반기 카발란의 면세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92.9% 증가했다”고 밝혔다. 리 대표도 현재 한국과 일본 시장을 가장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글로벌 위스키 시장 경쟁이 치열한데,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최근 글로벌 경기가 휘청이면서 위스키 경쟁이 더 격해진 건 맞다. 현재 카발란은 전 세계 60국으로 수출을 하고 있는데, 일부 시장에서 매출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몇몇 국가에선 경제가 휘청이며 사람들이 술에 돈 쓸 여력이 없는 것이다. 반면 한국 소비자들에겐 ‘감사합니다’란 말을 전하고 싶다. 몇 년 새 카발란의 한국 내 매출이 크게 늘어났을 뿐 아니라, 한국의 영화나 TV프로그램 등에 소개되면서 동남아와 유럽 일부의 판매량까지 견인하고 있다. 우리가 따로 광고를 내거나 부탁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욱 한국에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래픽=김현국

-현재 가장 주목하고 있는 글로벌 시장은.

“한국과 일본이다. 두 나라는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고, 성장 잠재력이 높다. 특히 한국에선 특별 에디션을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선보이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오크통에서 나온 제품이다.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 한국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다.”

-일부 애호가들 사이에선 카발란이 초기에 명성을 쌓기 위해 좋은 오크통을 소진해서 맛이 예전만 못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인정하기 어렵다. 우리의 품질은 연구소 직원들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된다. 내부 기준으로 품질이 A급이 되지 않으면 상품화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는 사업 내내 변하지 않은 절대 원칙이다. 단순히 판매 실적을 올리거나 소위 ‘장사를 위해’ 품질이 떨어지는 오크통을 무리해서 쓰지 않는다. 눈앞의 돈벌이보다 우리의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품질이 떨어지면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향후 목표는?

“우리는 10년마다 큰 도약을 해왔다. 첫 10년은 투자의 시기, 두 번째 10년은 성장기였다. 앞으로 10년은 고속 성장기인 것 같다. 대만은 섬나라다. 내수만으로는 부족하기에 계속해서 세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카발란의 정신은 돌파와 창신(創新·창조와 혁신)이다. 고착화된 시장을 깨고, 새로운 제품을 앞세워 성공하는 것이다. 남들의 맛을 따라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카발란의 최대 경쟁자는 ‘어제의 우리’다.”

☞킹카 그룹

대만의 식음료 대기업. 1956년 모기퇴치제, 청소용품 등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커피·차 등 식음료 제품을 앞세워 대만 국민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창업자는 리텐차이 회장이며 현재 최고경영자(CEO)는 그의 아들 리위팅 대표다.

☞STR 기법

카발란이 개발한 위스키 숙성용 오크 통 제조 기법. 균일한 품질의 오크 통을 만들기 위해 오크 통 내부 벽면을 깎고(Shaving), 약한 불로 굽고(Toasting), 다시 강한 불로 태우는(Recharring)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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