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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제임스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금값의 급격한 상승을 두고 "각국 중앙은행이 '골드러시'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금 사재기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린스턴대 제공

금 가격이 정말 ‘금값’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이례적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23일 금 선물 가격은 트로이온스(31.1g)당 2546.3달러까지 올랐다. 5년 전인 2019년 8월 말 가격(1529.4달러)의 1.7배 수준이다. 특별히 경제 위기 상황도 아닌데 대표적인 안전 자산인 금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 까닭은 뭘까. 이 ‘금값 상승 미스터리’를 두고 “각국 중앙은행의 골드러시가 금값 상승의 주범”이란 진단이 나왔다.

경제사 분야 최고 권위자 중 하나로 꼽히는 해럴드 제임스 프린스턴대 교수는 WEEKLY BIZ와 화상으로 만나 “2022년 이후 미국이 적극적으로 적대국(러시아)에 대한 금융 제재를 하고 있고, 유럽에선 미국의 안전 보장 약속이 러시아를 억제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나라가 늘고 있다”며 “미국 정부 채무의 급격한 증가라는 요인까지 겹치며 각국의 중앙은행이 ‘골드러시’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각국 중앙은행은 483.3t의 금을 사들였는데, 이는 “반기 기준 최대 매입량”이란 게 세계금협회의 설명이다.

그래픽=김의균

제임스 교수는 ‘세계화의 종말’ ‘7번의 대전환’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 부채 위기’ 등의 책을 쓴 석학으로, 1986년부터 프린스턴대에서 국제 경제 체제의 발전과 경제 위기에 대한 연구를 이어왔다. 2016년부터 IMF의 역사를 기록하고, 역사 속의 교훈을 바탕으로 정책 조언도 하는 IMF 공식 역사가 역할도 맡고 있다.

◇미국의 대러 제재 등이 촉발한 ‘골드러시’

-최근 금값을 끌어올린 대표적인 요인은 무엇인가.

“적대국(러시아)에 대한 제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부터 미국은 적대 국가와 그 국가의 은행이 달러 기반 금융 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이때부터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금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대표적으로 중국인민은행은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금을 계속해서 매입했다. 이들은 달러(달러 표시 자산)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 미국으로부터 경제 제재를 당하면 자칫 자산이 동결될 수 있다. 이에 보유한 미국 국채를 단시간에 대거 팔아 치우려 한다면 가격이 떨어져 미국 국채를 헐값에 팔아야 할 우려도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금 매입을 통한 자산 다각화는 매우 합리적인 정책인 셈이다.”

-폴란드나 체코 중앙은행이 금을 사는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미국의 (동유럽권에 대한) 안전 보장 약속이 폴란드나 체코와 같은 나라들을 안심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폴란드나 체코의 중앙은행은 ‘국가 안보’의 관점에서 금을 매입하고 있다. 체코는 1990년대 후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면서 중앙은행이 보유하던 금을 대부분 팔아버렸다. 그런데 최근에는 금을 다시 사들인다. 안보 불안이 커지면서 보유한 자산의 일부는 금에 분산시켜 두는 셈이다. 금이라는 대표적인 안전 자산에 투자하면서 불안감을 잠재우는 ‘심리적’ 효과까지 기대하는 것 같다. 불안할 때 가치가 매우 굳건한 것을 확보해두려는 건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국제 분쟁이 발생하면 금값이 크게 오른다. 아프리카의 내전, 중동에서의 갈등, 중국과 대만 사이 긴장 고조 같은 상황 역시 금값을 끌어올릴 수 있다.”

◇“美 부채 증가도 달러 신뢰 약화 요인”

-늘어나는 미국의 나랏빚도 금의 인기에 영향을 주나.

“점증하는 미국 국가 채무도 금값이 오르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인플레이션을 제압했던 1980년대에는 미국의 국가 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GDP의 120%까지 커졌다. 이제는 인플레이션 대응 정책(기준금리 인상)이 미국 정부가 지급해야 할 국가 채무 이자의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우려해 금리 인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면 달러의 가치도 의심받을 수 있다.”

-가까운 시일 내 달러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고 보나.

“달러는 지금까지 안전자산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또한 대부분의 금융거래가 여전히 달러로 이뤄진다. 미국 국가 채무가 ‘어떤 한계선’을 넘어섰을 때 지속 불가능해지고, 달러 가치마저 흔들릴지를 예측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은 달러를 대체할 ‘대체 통화’도 마땅하지 않은 형편이다. 엔화의 경우, 일본의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미국보다 훨씬 높다. 유로화를 대안으로 제시하더라도,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 역시 국가 채무를 기준으로 보면 미국보다 상황이 낫지 않다. 적어도 당분간은 달러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화폐로서 힘을 잃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금값을 자극하는 불안한 국제경제 환경은 과거 ‘냉전’과 비슷한가.

“주요국 국가 채무가 크게 불어난 상태이고, 군비 경쟁과 무력 충돌이 이어지는 상황이란 점은 1950년대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현재 국가들이 교역 상대국으로서 훨씬 더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은 (과거 냉전시대와) 다르다. 또 다른 점은, 과거 냉전시기 소련과 달리 중국은 현재 세계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전자 제품과 친환경 전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천연자원인 희토류의 주요 수출국이기도 하다. 세계 각국은 경제적인 차원에서 중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이 이끄는 양대 진영이 경제적으로 사실상 단절돼 있었던 냉전시대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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