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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하경


미국을 넘어 세계 경제의 지형을 흔들 수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11월 5일)가 딱 한 달 남았다.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민주당)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공화당) 전 대통령의 경합주 지지율도 박빙이라 ‘승자의 왕관’을 결국 누가 쓸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양상이다.

다만 TV 토론에서 날 선 공방을 벌인 두 후보가 사실 경제에서만큼은 ‘우클릭’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의 보호주의 기조는 진영을 넘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는 데다, 표심을 의식한 해리스가 ‘중산층 감세(減稅)’ ‘프래킹(셰일가스 수압 파쇄 추출법) 찬성’ 등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WEEKLY BIZ는 두 후보의 정책 공약과 주요 발언 등을 분석하고, 국내외 전문가 10인에게 자문해 두 후보 경제 정책의 ‘교집합’을 정리했다.

그래픽=김하경

◇전망 ① 반(反)중국 정서는 이어진다

어떤 후보가 승리하든 미·중 사이 해빙 분위기가 오지는 않을 전망이다. 2017년 중국의 지식재산권 도용 및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조사로 촉발된 미·중 갈등이 10년 넘게 길어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이미 재집권 시 중국에 대한 초고율 관세 부과 등을 예고했고, 해리스가 집권하더라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칩4(한·미·일·대만 반도체 동맹)’와 같은 반중 전선을 이어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현재 미·중 무역 전쟁은 미국의 무역 적자를 늘리고 수입품 가격을 올려 가계에 큰 부담을 주지만, 트럼프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60%까지 올리고 싶어 하고, 해리스도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제재안을 철회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해리스는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중국이 아닌 미국이 21세기를 위한 경쟁에서 승리하고,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강화하도록 할 것”이라며 중국 견제의 뜻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그래픽=김의균

반중 심리를 건드리는 건 지지율에 도움이 된다는 걸 두 후보는 잘 알고 있다. 아서 동 조지타운대 교수는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공격적인 관세 언급이 지지자들을 만족스럽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해리스도 중국 공장들에 일자리를 빼앗긴 이들의 분노를 의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망② 미국 우선주의는 강화된다

누가 승리하든 첨단 기술 패권을 사수하려는 정책은 이어질 전망이다. 첨단 기술을 경제는 물론 안보와 패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해리스는 집권 시 현재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법’을 계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법은 미국 내에 반도체 시설을 짓는 기업에 건립 보조금, 연구 개발 지원금 등 총 2800억달러(약 370조원)를 투자하는 게 골자다. 첨단 반도체 시설을 미국에 가둬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게다가 해리스는 반도체를 넘어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과 같은 첨단 산업과 동시에 전통적인 제조업까지 지원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해리스는 지난달 25일 ‘중산층을 위한 새로운 전진의 길’이라는 경제 공약집을 통해 향후 10년간 1000억달러의 세액공제로 제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세액공제 지원 대상 업종엔 AI·양자컴퓨팅·블록체인 등과 더불어 철강과 자동차까지 포함됐다. 첨단 기술과 전통 제조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해리스는 최근 MSNBC 인터뷰에서 일본제철이 인수를 추진 중인 US스틸과 관련, “미국 노동자들이 미국산 철강을 생산하는 ‘미국의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히는 등 전통 제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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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수입 물품에 대한 높은 관세와 법인세 인하로 제조업 리쇼어링(reshoring·해외로 나갔던 기업의 귀환)에 앞장서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조지아주 연설에서 “여러분이 미국에서 상품을 제조하지 않는다면 상당한 관세를 내야 할 것”이라며 “멕시코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모든 자동차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라고 했다. 이어 “현재 21%인 법인세를 15%까지 인하할 계획”이라며 “이것이 내 제조업 르네상스 계획의 핵심”이라고 했다. 미국 밖에 있는 기업엔 ‘채찍’을, 미국 내 기업엔 ‘당근’을 주는 차별 대우를 약속한 셈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트럼프는 종전의 ‘아메리카 퍼스트’를 이어갈 것이고, 해리스는 동맹국 위주로 공급망을 재편하면서도 미국 우선주의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며 “글로벌 경제 리스크가 적지 않은 만큼, 양측 모두 미국의 기술 패권과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강화하는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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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③ 주식시장 강세 전망, 비트코인도 기대감 나온다

미 대선은 전 세계 투자자들도 메인 이벤트로 여기는 만큼,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미국 투자시장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는 추세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는 ‘빅컷’을 단행해 증시를 밀어 올렸지만, 실업률이 요동치며 경기 침체 우려가 불식되지 않는 등 불확실성도 여전한 상태다.

그래픽=김하경

전문가들은 전통적으로 미국 대선이 있는 해에는 글로벌 주식시장이 강세였다는 통계적 근거를 바탕으로 긍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피셔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1925년 이래 선거가 있던 해 중 83%가 미국 주식이 올랐고, 달러 기준 평균 11.4%의 상승률을 보였다. 또 당선인이 결정되면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높아져 오히려 투자자들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켄 피셔 피셔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선거가 있는 해의 하반기엔 후보자가 정해지고, 정책 계획이 드러나며 불확실성이 줄어드는 게 전형적”이라며 “결국 승자는 나타날 것이고, 확실성이 강화돼 주가를 더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당선되느냐와는 별개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는 것이 주식시장엔 호재라는 얘기다. 물론 당선인이 결정되면 신임 대통령의 경제 노선에 따라 업종별로 수익률은 달라질 수 있다. 팀 에드워즈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다우존스인다이스 지수 투자 전략 총괄은 “역사적으로 미 대선은 주식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지만, 당선인이 결정되고 나서 투자가 어디로 몰리는지, 규제가 어떤 분야에 적용되는지에 따라 산업별로 승자와 패자는 나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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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암호화폐가 이번 미 대선을 통해 최대 혜택을 얻을 것이라 보고 있다. 먼저 트럼프는 그동안 공개적으로 암호화폐 시장을 지지해 왔다. 그는 지난달 뉴욕 이코노믹 클럽 모임에서도 “미래 산업을 공격하는 대신 포용하겠다”며 “미국을 암호화폐와 비트코인의 세계 수도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당선될 경우 비트코인 100만개를 미국 전략 보유량으로 삼고, 미국 내 비트코인 결제를 허용하는 등 구체적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게다가 그동안 암호화폐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던 해리스마저 늘어나는 미국 내 암호화폐 투자자를 의식해 암호화폐 시장에 긍정적으로 돌아섰다는 평가다. 해리스는 지난달 22일 뉴욕에서 열린 선거 자금 모금 행사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디지털 자산과 같은 혁신 기술을 장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암호화폐 시장 분석 업체인 10x 리서치의 마르쿠스 틸렌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인 약 5000만명이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는데, 직전 선거에서 5만표로 승패가 갈린 걸 감안할 때 후보자들은 암호화폐 시장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공화당과 민주당은 지금처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암호화폐 시장 규제와 감독을 맡기는 것이 아닌, 따로 법을 제정하는 등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데 동감하고 있다”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가상 자산 제도화는 진전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전망④ 에너지 정책은 극단으로 쏠리지 않는다

산업 관련 정책 중 트럼프와 해리스가 가장 뚜렷한 차이를 보여온 주제는 ‘친환경’이다. 트럼프는 적극적인 화석연료 채굴을 주장해 온 반면, 해리스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육성하는 친환경 기조를 줄곧 강조해 왔다. 이에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철강, 에너지 등이 부상하고, 해리스의 당선은 전기차, 재생에너지 등에 호재라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선거가 다가올수록 이런 이분법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최근 펜실베이니아·미시간주 등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발달한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가 대선의 판세를 가를 핵심 경합주로 떠오르자 생긴 일이다. 특히 2016년 대선 때 트럼프가 민주당 텃밭이었던 러스트 벨트에서 승기를 거머쥐면서 승리했기 때문에, 해리스는 전통적 제조업 종사자들을 더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모양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는 해리스가 승리하는 ‘경우의 수’ 가운데 미시간과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주 등 러스트 벨트 세 곳에서 승리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해리스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선 러스트 벨트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해리스는 과거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셰일가스를 캐는 프래킹(Fracking·수압 파쇄법) 금지를 주장했지만, 최근 CNN 인터뷰에선 “프래킹을 금지하지 않고도 청정 에너지 목표를 달성할 방법이 있다”며 말을 바꾸기도 했다. 더스틴 팅글리 하버드 케네디스쿨 공공정책 교수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화석연료 프로젝트들이 확대되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이미 텍사스 등 일부 주에서는 태양열, 풍력발전과 같은 청정 에너지 사업이 크게 성장했기 때문에 이런 흐름을 역행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해리스가 당선된다고 해도 최근 전통 에너지 사업에 친화적 태도를 보인 만큼 파격적 변화가 생기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김종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무역통상안보실장은 “트럼프는 친환경 보조금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만, 기업 차원의 의사 결정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고 있다”며 “해리스도 에너지 안보와 인플레이션 등을 고려해 셰일석유와 셰일가스 채굴을 위한 프래킹을 금지하겠다는 종전 태도에서 한발 물러서는 등 누가 당선되든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망⑤ 한국 기업들엔 부담 커질 수 있다

미 대선 이후 우리 기업들 부담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후보가 되든 미·중 갈등이 장기화하며 원자재 공급에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불똥이 한국 등 외국 기업에 튈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주요 공약 중 하나는 대중 관세 60%와 더불어 보편 관세 10% 부과다. 현 정부는 올 들어 중국 전기차 관세를 25%에서 100%로 올리고, 배터리 관세는 25% 올리는 등 중국을 겨냥한 조치에 집중해 왔는데, 트럼프는 이런 보호무역 조치를 확대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그래픽=김하경

특히 한국 산업계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IRA는 배터리, 전기차 등이 북미에서 생산될 경우 해당 기업에 세액을 공제해주거나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기업들은 이런 혜택을 누리기 위해 미국에 대대적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는 “IRA를 전면 폐지하겠다”며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해리스가 당선된다면 IRA 등 종전 정책 기조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해리스는 ‘중산층 1억명 세금 우대’를 경제 공약으로 내세웠고, 스타트업에 대한 세액공제도 현재 5000달러에서 5만달러로 10배 올리는 대신, 부족한 세수는 법인세율을 현행 21%에서 28%까지 올려 충당한다는 계획이라 마냥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준경 교수는 “트럼프의 IRA 폐지와 해리스의 법인세 인상은 모두 미국 의회에서 통과돼야 하는 사안인 만큼 현실화 가능성은 두고 봐야 한다”면서도 “그럼에도 이미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미국 내 활동을 늘리는 한국 기업으로선 양측 공약이 모두 부담”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의 핵심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 산업도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감수해야 될 전망이다. 이현익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부연구위원은 “미국은 자체적인 첨단 반도체 제조 능력을 갖춰 동아시아에 대한 반도체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지금은 미국이 중국에 (반도체와 관련된) 강력한 제재를 하며 상대적으로 제조 능력 우위에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들이 반사 이익을 얻지만, 앞으로 이 반사 이익 ‘과실’을 따내기 위한 과잉 투자가 벌어지면서 경쟁은 점점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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