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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일본 도쿄에 문을 연 대형 복합 단지 ‘아자부다이힐스’는 여전히 인기다. 지난 2월 디지털 아트의 신세계를 연 전시장 ‘팀랩 보더리스’, 3월 SSG푸드마켓 서울 청담점의 미래 모습이라는 ‘아자부다이 힐스 마켓’을 차례로 선보이면서 끊임없이 신선함을 자극하고 있다. 34년에 걸쳐 8.1ha(약 2만5000평)를 6400억엔을 들여 개발했다는 숫자를 나열하면서, 한국에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오랜 개발 기간, 넓은 면적, 대규모 프로젝트 비용만이 정답일까.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한 다른 방법은 없을까.
1만엔 신권의 초상 모델인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1873년 도쿄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가부토초에 일본 최초의 은행을 설립했다. 이후 일본증권거래소를 비롯 다양한 금융기관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월스트리트’라 불렸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증시가 좋은 날엔 이 지역 전체가 들썩였다. 시간이 흘러 건물이 노후화되고 대형 금융기관들이 오테마치, 마루노우치의 고층 건물로 하나둘 이전하기 시작하면서 가부토초의 쇠락은 피할 수 없었다.
이 지역의 맹주는 헤이와 부동산. 일본 증권거래소 빌딩을 비롯 꽤 많은 건물을 보유하고 있기에, 지역 재개발은 헤이와 부동산에 있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하지만 헤이와 부동산의 자산이나 매출 규모는 대형 디벨로퍼(시행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같은 방법으로 접근해서는 답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헤이와 부동산은 답을 찾기 위해 발상의 전환을 했다. 노후된 건물은 과연 쓸모가 없는 것일까. 헤이와가 보유한 건물 중 ‘가부토초 헤이와 제5 빌딩’은 제일국립은행 별관으로 10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다. 오래된 건물답게 ‘레트로’ 느낌이 물씬 난다. 이를 그대로 살리면 어떨까. 감각이 뛰어난 외부 전문가를 모아 신선한 아이디어를 집결시켰다. 그 결과 새로운 복합 문화 공간이 탄생했다. 이름하여 ‘K5′. 가부토초의 K, 제5 빌딩의 5를 결합했다. 이곳은 호텔, 식당, 커피숍, 바 등으로 구성돼 있다. 몇 년 전 이 호텔에 투숙했을 때 방에 TV가 없어 깜짝 놀랐다. 침대 뒤편 공간에 턴테이블이 놓여 있어 더욱 놀랐다. LP 앨범도 몇 장 놓여 있었다. 레트로한 분위기를 잘 살린 탓에, 그리고 북유럽의 세련된 디자인을 잘 접목시킨 탓에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K5가 뜨기 시작하자 주변에 트렌디한 매장이 속속 들어섰다. 2022년 12월에는 헤이와 제7 빌딩 1층에 베이커리 뱅크, 비스트로 옌, 커피 바 코인, 플라워 숍 페테(페테는 ‘모으다’는 뜻)처럼 금융 용어를 브랜드로 사용하는 매장이 출현했다. 낮에는 여전히 증권맨들로 분주하지만, 늦은 오후나 주말에는 트렌드 세터(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도 자주 보인다.
가부토초가 부활한 계기는 무엇인가. 헤이와 부동산은 100년 전에 지어진 낡은 건물을 갖고 있었다. 이를 부채로 여기지 않고, 고유의 자산으로 삼았다. 다른 어떤 경쟁자도 100년 된 낡은 건물을 가질 수 없다. 시간, 즉 헤리티지야말로 가장 복제하기 어려운 핵심 역량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레트로를 접목시켰다. 이는 과거의 스타일이나 문화 요소를 현대적으로 다시 재해석하거나 부활시키는 것을 뜻한다. 단순히 과거의 것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재해석해 독창적인 스타일을 창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왕 새롭게 한다면 밑바탕에 100년 전의 모습을 깔고 있는 편이 더욱 멋지지 않을까.
우리가 갖고 있는 약점은 무엇인가. 이를 오히려 강점으로 바꿔, 경쟁자가 감히 엄두도 못 내게 할 방법은 무엇인가. 그러기 위해선 어떤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한가. 이런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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