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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을 위해 탁자 위에 살짝 앉아보라”고 했더니 호시노 리조트의 호시노 요시하루 대표는 “직원들이 이 모습을 보면 ‘건방져 보인다’고 혼낼 것 같다”면서 웃었다. 지난 7일 서울 중구의 한 커뮤니티 하우스에서다. 그는 이날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의 셔츠와 통바지, 워커화 차림이었다. 가방은 백팩이었다. 그는 “평소 너무 편하게 입고 다녀 직원들에게 종종 잔소리를 듣는 편”이라고 했다. /장련성 기자

“살아야 했습니다. 서바이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어요.”

일본 호시노 리조트의 대표 호시노 요시하루(星野佳路·64)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았던 코로나 당시를 돌이키며 이렇게 말했다. 2019년 말 당시만 해도 일본 관광업계는 들떠 있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한창 준비하던 시점이었다. 너도나도 관광객이 밀려들 것이라고 믿고 돈을 풀고 시설 확장에 나섰다. 이때 거짓말처럼 손님이 끊겨버린 것이다.

그래픽=양진경

도산(倒産)의 도미노. 일본의 유명 호텔들이 줄줄이 휴업하거나 폐업했다. 직원들을 정리 해고하는 곳이 잇따랐다. 호시노 대표는 이때 뜻밖에도 다른 길을 택했다. 직원을 해고하는 대신 IT(정보기술) 시스템을 강화했다. 온천이나 레스토랑이 가장 붐비는 시간을 빅데이터를 통해 분석해 고객 동선을 분산시키고 호텔과 리조트 내 밀집도를 낮췄다. 직원들은 ‘워크 셰어링(work sharing)’을 통해 서로 업무를 도왔다. 월급이 조금 줄어도 시간 효율을 높이니 만족도는 떨어지지 않았다. 안전과 위생이 확인되니 고객이 차츰 돌아왔다. 이익률도 다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이 리조트의 지난해 연간 거래액은 822억엔(약 7500억원)으로 코로나 확산 이전보다 40% 넘게 뛰었다. 올해는 ‘오모(OMO)5 도쿄 고탄다 바이 호시노 리조트’ ‘호시노 리조트 카이 아키우’ 등 다섯 개의 시설을 새로 열었다. 현재 일본을 비롯한 외국까지 68개의 호텔과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남들은 몸집을 줄여도 살아남기 쉽지 않았을 때 그는 어떻게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을까. 일본 최대 호텔·리조트 브랜드이자 올해 창립 110주년을 맞은 호시노 리조트의 호시노 대표를 WEEKLY BIZ가 지난 7~8일 양일에 걸쳐 서울에서 만났다. 그는 “위기는 어차피 매일 찾아오는 것이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결국 이런 위기를 넘기 위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위기가 키운 110년의 회사

-코로나 시절에도 거의 유일하게 성장한 호텔·리조트 업체로 흔히들 호시노 리조트를 꼽습니다.

“결과를 보면 다들 성장했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이건 애초 계획에 있었던 성장은 아닙니다. 우린 그저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했거든요. 코로나 확산기 때도 손님이 리조트에 오게 만들려면 우리에겐 무엇이 더 필요할까. 이것 하나만을 생각하고 모든 전략을 짰어요. 그래서 음식은 해당 지역이 아니면 쉽게 먹을 수 없는 독특한 메뉴로 바꿨고, 사람이 붐비는 시간과 공간을 (고객들이 보다 편하도록) 정리했고요. 다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죠.”

-정리 해고, 임시 휴업 같은 방법을 택한 곳도 많지 않습니까.

“그건 답이 아니라고 봤어요. 저흰 오랫동안 인재를 뽑기 위해 노력한 회사입니다. 료칸(일본 전통 여관)이나 호텔은 뛰어난 직원을 뽑는 것이 쉽지 않아요. 다른 업계에 비해선 월급을 많이 주지도 않고 일이 고되니까요. 저흰 오랫동안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찾았고, 직원 훈련을 위해 애써왔거든요. 코로나가 왔다고 이런 직원들을 갑자기 해고하는 건 답이 아니죠.”

-그래도 남들이 규모를 줄일 때 도산한 호텔들을 인수하고 직원을 더 뽑겠다고 투자를 결정한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위기는 도리어 기회일 수도 있거든요. 불황이야말로 최고의 기회일 수 있고요. 코로나로 인해 쓰러진 호텔 중엔 재건해 잘 살려내면 훗날 재평가받을 수 있는 곳들이 꽤 있고, 업계에서 오래 일한 우수한 직원들이 관두고 나온 경우도 무척 많았죠. 이들과 손잡을 수 있다면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되는 거겠죠. 돌아보면 제가 4대손으로 도쿄 북서쪽 가루이자와에 있는 호시노온천료칸을 이어받았을 때도 비슷했어요. 당시 일본은 불황으로 곳곳에서 오래된 호텔과 리조트들이 고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덕에 경쟁자가 거의 없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죠. 물가가 떨어져 싼값에 시설 공사를 할 수 있었어요. 취직난이 심했던 덕분에 일 잘하는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구할 수 있었죠.”

-사장을 맡고 가장 먼저 바꾼 건 무엇인가요.

“료칸이 덩치만 크고, 접객 서비스는 무미건조했어요. 직원은 여러 명인데, 손님이 없는 시간엔 놀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요. 먼저 호시노온천료칸의 전면 보수 공사를 시작했어요. 이게 무려 14년 걸렸습니다. 2005년에 비로소 ‘호시노야 가루이자와’를 열 수 있었죠.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도 바꿨습니다. 료칸이나 호텔에선 보통 청소, 요리, 프런트 데스크 담당이 다 따로 있는데, 제 리조트에선 직원들이 모든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도록 다시 훈련했어요. 그래야만 일이 없다고 노는 사람이 줄고, 특정 사람에게만 일이 몰리는 현상도 사라질 테니까요.”

-저항이 심했겠는데요.

“만만치 않았죠(웃음). 제가 쓴 방법이 있어요. 먼저 수치를 보여줬습니다. ‘올해 매출이 이렇고, 이익은 이렇다. 앞으로는 이렇게 바뀔 것이다. 다만 이렇게 되려면 여러분의 업무 분담 방식을 바꿔야 한다. 대신 앞으로는 돈도 못 받고 일을 더 하는 상황은 줄고, 업무 불평등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죠. 새로운 시스템은 3개월 안엔 정착해야 합니다. 그동안엔 고객 만족도나 수익성이 떨어져도 참고 버텨야 해요. 그 기간을 견디면 직원들이 달라지고 안정이 찾아옵니다. 희생 없이 그냥 되는 건 없죠.”

◇쓰러진 리조트들이 내게 찾아왔다

호시노온천료칸 보수 공사를 지속하면서 료칸 운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던 2001년쯤, 호시노 대표는 다시 기로에 섰다. 일본 정부가 버블 경제 붕괴로 인해 쏟아져 나온 불량 채권 정리 작업을 이때 시작하면서, 이 중 도산한 일부 리조트와 스키장을 회생시키는 작업을 호시노 리조트 측에 부탁한 것이다. 호시노 대표가 료칸 운영을 맡은 이후로 10년 동안 매출이 꾸준하게 오르는 것을 정부가 눈여겨봤다고 했다. 호시노 대표로선 그러나 료칸 하나 잘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그는 “고민이 많았지만 잘나갈 때가 알고 보면 제일 무서울 때라고 생각했고, 결국 나는 또 다른 위험을 떠안는 쪽에 주사위를 던졌다”고 했다.

-망해가는 리조트를 떠안은 것이니 위험이 꽤 컸겠죠?

“보통 큰 게 아녔죠. 제가 그때 맡은 게 야마나시현 호쿠토시에 있는 ‘리조나레’ 리조트였어요. 건설비만 250억엔이 들어간 곳인데 온천이 없어서 손님이 거의 오질 않는 곳이었어요. 저는 문제를 잘 보면 답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이곳은 안타깝게도 운영진이 문제가 뭔지조차 모르고 있었어요. ‘왜 손님이 오질 않나요’라고 묻자, ‘그러게요. 저희 리조트에 오시는 분들은 다 만족하시는데요’라고 대답하더라고요. 고객 만족도 조사를 다시 시작했고, 어린아이를 키우는 고객들은 온천이 없어도 놀기 편안한 가족형 리조트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여기에 맞춰 수영장과 카페, 음식이 맛있는 레스토랑,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각종 숲체험 같은 서비스를 준비했습니다.”

야마나시현에 있는 리조나레 야쓰가타케 리조트는 3년 만에 흑자를 냈다.

-이후에도 계속 인수·재생 작업을 했고요.

“스키 리조트 알츠반다이(지금의 호시노 리조트 네코마 마운틴)도 2003년 인수·재생했어요. 적자였지만 3년쯤 지나니 결국 흑자가 됐죠. 쓰러져 가는 회사들을 바꾸는 작업이 쉽진 않지만 좋은 점도 많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그야말로 우리 편이 되거든요. 회사가 다시 기지개를 켜는 과정을 함께하니,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충성 직원이 됩니다. 가령 망해가던 리조나레에서 만났던 한 직원은 지금 우리 회사 마케팅 팀장이에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일하죠.”

-이번에도 위기가 회사를 키웠네요.

“처음 망해가는 리조트들을 떠안을 땐 두렵고 막막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다음 지평이 넓어졌어요. 성장통이 없다면, 성장이 아닌 거겠죠.”

책 ‘호시노 리조트 스토리’를 쓰고 있다는 일본 류츠케이자이대학 윤경훈 교수는 WEEKLY BIZ와 통화에서 “호시노 리조트는 여러 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일어선 대표적인 기업”이라고 했다. 그는 “호시노 리조트는 특히 코로나 시기 자체 앱 개발 프로그램을 만들어 수기(手記)에만 의존해서 손님을 관리하던 직원들도 누구나 필요한 앱을 만들어서 쓸 수 있게 획기적인 IT매니지먼트를 도입했다”며 “리조트 직원들은 이제 객실 예약과 판매, 레스토랑 관리와 고객 인원 체크, 고객 만족도 조사 같은 모든 활동에 필요한 앱을 언제든 새로 만들고 관리할 줄 안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우리는 이제 ‘도심’을 판다

호시노 리조트는 2018년 ‘오모(OMO)’, 2019년엔 ‘베브(BEB)’라는 호텔 브랜드를 새롭게 내놨다. 기존의 럭셔리 리조트인 ‘호시노야’, 고급 지역 료칸인 ‘카이’, 가족형 리조트 ‘리조나레’ 외의 새로운 호텔 브랜드를 론칭한 것이다. 호시노 대표는 “기존에 없던 개념의 리조트를 새로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도전했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어떤 점이 새로운가요.

“‘오모’의 경우엔 도심 관광 자체를 패키지로 내놓는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면이 있다고 봤어요. 사람들은 갈수록 심도 있는 여행을 원하거든요. 특히 코로나 이후에 연 호텔의 경우엔 호텔 인근의 골목 전체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기획했어요. 가령 ‘오모5 도쿄 고탄다’의 경우엔 근처 회사원들이 오래 다닌 숨은 맛집을 발굴해서 이곳을 다 같이 즐길 수 있도록 했어요. 호텔리어가 직접 가이드를 하면서 함께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요.”

-베브는 20대 고객을 타깃으로 한다고 들었는데요.

“조식 시간, 체크아웃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호텔만의 규칙 같은 것을 깨봤습니다. 편하게 늦잠 자도 아침밥을 먹을 수 있고, 늦게 체크인 하면 늦게 체크아웃 해도 되죠. 이런 작은 즐거움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덕분에 젊은 고객이 꽤 많이 늘었다고 들었어요. 이들이 많이 찾아올수록 호텔이 뿌리내린 도심도 활력을 얻겠죠.”

-확장 계획이 또 있을까요.

“코로나 기간 인수해 새롭게 바꾼 리조트와 호텔 몇 곳이 조만간 또 문을 열 겁니다. 해외에도 계속 론칭할 거고요. 올해는 또한 한국 고객을 더 많이 모셔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작년에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의 4분의 1 이상(28%)이 한국분들이었는데, 이분들이 아직도 호시노 리조트는 ‘잘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많이 알리려고 애쓰고 있어요. 올해 한국인 직원 채용을 작년보다 1.5배가량 늘렸고, 앞으로 더 채용할 생각입니다.”

호시노 리조트 BEB5 가루이자와의 24시간 오픈 라운지 '타마리바' /호시노리조트
호시노 리조트 오이라세 게류 호텔. 단풍을 바라보면서 야외에서 식사할 수 있다. /호시노 리조트
오모(OMO)7 오사카 신세카이의 '오모레인저 투어'. 호텔리어들이 직접 가이드로 나서 도심 곳곳을 함께 탐방하는 것을 돕는다. /호시노리조트

◇팀장도 사장도 같은 책상

호시노 리조트의 본사는 도쿄역 근처에 있다. 이곳엔 다른 회사엔 보통 있는 몇 가지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이사 자리가 따로 없고, 대표이사 전용 차량과 운전기사가 없다. 부장, 차장, 과장 같은 직책도 없다. 팀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팀장(Group Director)만 있을 뿐이다. 팀장은 팀원들이 투표로 뽑는다. 팀장이 되고 싶다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사장 자리는 왜 따로 안 두는 겁니까.

“제가 방에만 있으면 직원들이 저랑 얘기를 안 할 테니까요. 전 보통 휴가를 떠난 직원의 빈자리에 앉아서 일합니다.”

-직책은 왜 따로 안 만드는 거죠.

“윗사람·아랫사람·상사·부하직원, 이런 개념이 있으면 아무도 의견을 제대로 내지 않고, 다들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게 돼 있어요. 모두가 같은 입장에서 싫은 이야기도 좋은 이야기도 할 수 있어야 조직이 굴러가요. 직원들이 일을 스스로 하는 시스템도 이런 위계질서 같은 게 없어야만 제대로 돌아가죠.”

-그래도 누군가는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하지 않나요.

“윗사람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보단 데이터가 보여주는 결정이 옳을 때가 많아요. 저는 그래서 늘 데이터를 모든 직원에게 공개하고 누구나 어느 때나 들어가서 볼 수 있도록 합니다.”

호시노 리조트는 매년 2000명이 넘는 대학 졸업 예정자들이 지원서를 낼 정도로 인기가 높은 기업으로 꼽히기도 한다. 호시노 대표는 “우린 월급을 대단히 많이 주진 못해도 누구에게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만큼은 평등하게 제공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저는 이 회사에 영원히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언젠간 퇴임하게 돼 있거든요. 제가 물러나고 50년, 100년 후에도 이 회사가 살아남길 원한다면, 누가 와도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틀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할 겁니다. 잘 갖춘 시스템이라면 사람보다 오래 조직을 끌고 갈 테니까요.”


☞호시노 요시하루 대표

1960년 일본 나가노현 동부의 가루이자와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1914년부터 가루이자와에서 료칸을 운영해왔다. 게이오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도쿄 시내의 유명 호텔에서 1년 동안 근무했고, 이후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1988년 호시노 리조트의 부사장이 됐다. 그러나 6개월도 안 돼 그는 일을 때려친다. 오래된 호시노온천료칸을 새롭게 리조트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와 아버지가 충돌했던 탓이다. 회사를 나가 2년 반을 시티은행에서 일하던 그를 다시 불러들인 것은 호시노 리조트의 주주들이었다. 이들의 지지를 얻어 1991년 호시노는 아버지를 물러나게 하고 대표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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