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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Grok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선거, 미국 대통령 선거가 약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공화당)의 당선 쪽으로 풍향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지난 21일 내놓은 ‘2024년 11월 미국 대선 결과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 및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트럼프의 당선뿐 아니라 공화당이 상·하원까지 장악하는 이른바 ‘레드 웨이브’ 확률을 45%로 예측했다. 거꾸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민주당)의 당선과 민주당의 상·하원 승리를 뜻하는 ‘블루 웨이브’ 확률은 10%에 불과할 것으로 봤다. 의회 전문 매체 더 힐과 선거 전문 업체 디시전 데스크HQ가 여론조사를 종합해 내놓은 승리 확률 전망치(23일 현재)에서도 트럼프의 당선 확률(52%)은 해리스(48%)를 앞선다.

그래픽=백형선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두 후보 당선 확률을 50대50 ‘동전 던지기 확률’로 보던 기류가 트럼프 당선 쪽으로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판세 분석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금융시장에서조차 “동전 던지기에 베팅하지 말라”(미 자산 운용사 ‘샌더스모리스해리스’ 대표 조지 볼)던 분위기에서 트럼프 당선 시 수혜주에 투자하는 ‘트럼프 트레이드(Trade·거래)’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신중론도 적잖다. 더 힐은 “주요 접전 7주(州)에서 두 후보의 여론조사 결과는 오차 범위 안에 있고 여론조사의 부정확성까지 감안한다면 결과는 어느 쪽으로든 바뀔 수 있다”고 전했다. 아직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박빙 상황에서 WEEKLY BIZ는 두 대선 후보의 경제정책이 한국에 미칠 영향과 당선 시나리오별 예상 정책 등을 총정리했다.

그래픽=백형선

◇트럼프 뒷심 배경엔 ‘부의 불평등’

해리스에게 밀리던 트럼프가 대선 막바지에 뒷심을 발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전통적으로 민주당에 몰표를 줬던 흑인 유권자들의 결집이 이번엔 예상보다 강하지 않은 추세고, 지난 트럼프 임기 첫 3년 동안의 강력한 경제적 성과에 대한 기억이 아직 미국민들에게 짙게 남아있다는 등 여러 원인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근본적 원인 중 하나로는 미국의 ‘불평등’ 문제가 꼽히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고소득·고학력 가구의 소비 지출은 갈수록 커지고, 저소득·저학력 가구는 쪼그라드는 ‘부의 쏠림’ 현상이 심해지자 트럼프가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연방준비제도가 지난 11일 발표한 ‘가구 소득별 소매 지출 분석’에 따르면, 연소득 10만달러가 넘는 고소득 가구의 지출 증가율(2018년 1월 대비 올해 8월 지출)은 14.7%를 기록, 6만달러 이하 가구의 7.9%를 크게 앞섰다. 석사급 이상 교육을 받은 가구의 지출 증가율은 19.4%로, 고졸 이하 가구의 증가율 8.9%와도 큰 차이를 보였다. 미국 의회예산처(CBO)가 최근 내놓은 자료에서도 미국 내 ‘부의 불평등’은 확인된다. 2022년 기준 상위 1% 가구 자산 및 소득은 미국 가구 전체 자산의 27.1%로 1989년 22.7%에 비해 크게 늘었는데, 같은 기간 하위 50%의 몫은 6.4% 수준에 머물렀다.

프랑스 금융 그룹 소시에테제네랄은 이런 현상을 두고 “이런 격차는 2008년 금융 위기를 앞두고 급증한 소득 불평등에 대한 (토마) 피케티(파리 경제대 교수)의 연구를 되돌아보게 한다”며 “불평등은 주요 정치 이슈로 남게 되고 선거 베팅 확률이 트럼프 쪽으로 기울게 한다”고 지적했다.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당시 ‘부의 불평등’을 주장하며 가난한 백인 노동자를 공략했던 전략이 이번에도 먹혀들리라는 뜻이다. 피케티 교수는 2014년 펴낸 ‘21세기 자본’과 2020년 ‘자본과 이데올로기’ 등에서 현재 해리스 후보가 이끄는 민주당이 노동자 권익 보호나 저소득층 보호를 위한 정책보다는 페미니즘, 환경 보호, 이민자 수용 같은 사안에만 신경을 쓴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이런 민주당을 두고 ‘브라만 좌파(한국으로 치면 강남 좌파)’라고 표현하며 노동자·저소득층을 실제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했다.

◇미국 정책의 트럼프화

트럼프가 인기를 얻는 또 다른 이유로는 그가 2016년 당선됐을 때 내세웠던 자국 우선주의가 꼽힌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들겠다는 슬로건이 보수 진영뿐 아니라 진보 진영에도 먹히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양 진영의 정책을 살펴보면 트럼프가 당선되든 해리스가 당선되든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기치 아래 비슷하게 수렴하는 현상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반(反)중국 정책을 이어가는 등 미국 내 우경화 수렴 추세를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정책의 트럼프화(Trumpification)’라 칭하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11월 5일 선거의 승자가 누가 되든 결국 트럼프의 아이디어가 승리할 것”이라며 “해리스가 아니라 트럼프가 이번 선거 승리의 조건을 정한 셈”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해리스의 정책을 살펴보면 상당 부분 트럼프식이 된 경우가 적잖다. 이민 정책만 보더라도 해리스는 불법 이민자의 유입이 많아지면 이민 신청을 중단하겠다고 밝히며 이민자에 대해 배타적인 트럼프의 정책을 어느 정도 수용했다. 관세나 세금과 관련해서도 트럼프 1기 정부에서 도입한 정책이 조 바이든 정부를 거쳐 해리스 정부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와 관련해서도 해리스는 프래킹(셰일가스 수압 파쇄 추출법)에 찬성하는 것으로 돌아섰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석유와 가스를 채굴하는 행정부의 일원이 됐다”고 지적했다. 해리스는 과거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셰일가스를 캐는 프래킹 금지를 주장했지만, 최근 CNN 인터뷰에서 “프래킹을 금지하지 않고도 청정 에너지 목표를 달성할 방법이 있다”며 말을 바꿨다.

이 밖에도 바이든 정부가 중국에 기술 수출을 금지하거나 중국산 전기 자동차 수입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한 것처럼 해리스는 대중국 강경책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무역 전쟁을 시작한 트럼프와 대중국 정책의 방향성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중동 문제에서도 해리스는 이스라엘을 편들고 이란을 적대시하는 등 트럼프의 노선과 닮아간다.

◇트럼프는 ‘관세’, 해리스는 ‘소다자주의’가 무기

그러나 공화와 민주,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두 당의 정책이 마냥 똑같이 흘러갈 수는 없는 일. 당연히 차이점도 적잖다. 동전이 트럼프에게 완전히 넘어가지 않은 상황에서 두 후보의 경제정책과 예상되는 파장을 골고루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대외 무역 정책과 관련, 트럼프의 가장 큰 특이점은 관세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당선되자마자 관세를 끌어올리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60% 고정 관세를 부과해 중국산 제품의 미국 시장 접근을 막고, 모든 수입품에 보편 관세 10%를 부과하겠다는 시나리오가 이미 나와 있다. 김종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무역통상안보실장은 “미국·캐나다·멕시코무역협정(USMCA)을 통한 무역 적자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트럼프가 당선되면 이걸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라며 “특히 트럼프는 대외 무역에서 관세로 상대국을 다스리려는 경향이 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백형선

해리스는 당선되면 기본적으로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본인 색깔로 보완 입법을 할 가능성이 크다. 대외·무역 정책에서 트럼프의 전가의 보도가 ‘관세’라면 해리스는 ‘소다자주의’로 아메리카 퍼스트를 이행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 전망이다. 예컨대 ‘지속 가능한 글로벌 철강 및 알루미늄 협정(GASSA)’ 형식의 일종의 환경 동맹을 만들고 이들에게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해리스는 환경이나 노동 등 이념적인 도구를 활용해서 종전에 쓰지 않던 디테일한 소다자협의체를 만들 수 있다”며 “친환경 이미지를 살리면서 중국 압박 수단으로도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또 다른 경제정책 특징은 ‘물가 잡기’ 우선이다. 트럼프가 조 바이든 정부의 환경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하는 것도 결국은 물가를 잡으려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는 미국인들의 장바구니 물가에서 비중이 큰 유가를 낮추기 위해 화석연료 개발이라든지 셰일가스 채굴 장려 등과 같은 정책을 내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두 후보 중 한 명이 대선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지 못하면 당초 내걸었던 공약을 모두 이행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일례로 트럼프의 관세 인상 정책도 대통령령으로 도입하더라도 향후 의회 승인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상·하원은 공화당·민주당으로 양분되는 확률을 5%, 해리스가 당선되고 상·하원은 양분되는 확률은 40%쯤 된다고 내다봤다.

◇한국은 반도체·자동차 분야 타격 예상

두 후보의 대외·무역 정책 방향의 차이점이 적잖은 만큼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한국에 미치는 영향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미래에셋증권 고객자산배분본부의 미 대선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으로서는 트럼프가 당선될 때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 트럼프 당선 시 한국과 중국의 무역 관계가 더 분리되고 미국과는 무역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대선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트럼프의 공화당이 압승했을 경우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보조금을 받는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은 불리해질 수 있고, 반도체와 자동차 분야도 관세나 미중 갈등으로 부정적 파급이 클 것이란 설명이다. 해당 보고서는 “2018~2019년 트럼프 행정부 당시에도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정, 미중 무역 갈등, 방위비 분담 등의 여파로 전반적 경제와 기업 수익이 둔화됐던 경험이 이미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익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대중 제재 동참 요구라든지 미국 자동차 산업 부흥을 위한 관세 부과 등으로 한국에 위기 요인이 있다”며 “대중 견제로 인한 제조업 분야 반사 이익도 있을 수 있고,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 수출 등의 기회 요인도 있을 수 있겠지만 위기·기회 요인을 모두 따져 정책 대응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해리스가 당선된다고 한국 경제에 마냥 ‘꽃길’만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이 부연구위원은 “해리스 정부도 미국 제조업과 일자리를 되살리기 위한 바이든 정부의 기조를 계승할 것이기 때문에 동맹국에 어느 정도 손실을 감내하도록 요구할 것”이라며 “반도체법 등을 기반으로 미국 제조 업체와 근로자를 지원하면서 반도체 제조 시설의 이전 압박이나 미국 주도의 기술 통제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주식 종목별 희비도 엇갈릴 것

시장에서는 해리스나 트럼프 당선 시 수혜를 볼 종목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뜨겁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종목별 희비가 크게 엇갈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로 정권이 바뀌고 관세 인상이나 에너지 정책 변화까지 이어지면 바이든 정부에 발맞춰 가던 기업들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예상이다. 모건스탠리 고객자산배분팀은 관세 인상 시 피해를 볼 수 있는 한국 기업으로 SK하이닉스, LG전자, 삼성전자,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을 꼽았고, 클린에너지·전기차 정책 변화 시 피해를 볼 수 있는 기업으로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LG화학, 포스코, LG전자, 고려아연 등을 꼽았다. 관세 인상으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들은 미국 수출 비율이 적게는 14%에서 많게는 41%에 이르러 관세 정책에 민감할 것이란 설명이다.

피해를 보는 종목이 있다면 수혜를 보는 종목도 나올 전망이다. 미래에셋증권은 트럼프 당선과 함께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압승할 경우 에너지(탈탄소화 정책 후퇴), 금융(규제 완화), 방위산업(동맹국 방위비 분담 확대), 산업재(설비 투자) 등 분야에 속한 종목이 수혜를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해리스가 당선되면 클린 에너지(IRA 유지), 전기차·2차전지(IRA 유지), 주택 건설(주택 공급 확대), 산업재(전력 설비) 등 종목이 혜택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아직 어떤 후보가 당선될지 불확실한 만큼, 특정 후보 정책에 연동되는 종목보다는 두 후보가 공통적으로 지지하는 공급망 재편과 방위 지출에 따른 수혜를 볼 수 있는 방산, 원자력 부문 등을 주목하는 게 합리적이리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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