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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Midjourney

2014년부터 유·아동 대상 디지털 교구(敎具)를 만들어 온 에듀테크 스타트업 플레도는 올해부터 사업을 노년층으로 확장하기로 했다. 디지털 블록으로 아이들에게 한글, 영어, 수학을 비롯해 음악, 미술, 코딩 등을 가르치던 교구를 노년층의 치매 예방 교구로도 써보자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관석 플레도 대표는 “올해 서울시, 강남·마포·용산구 등이 치매 예방에 우리 교구가 도움이 될지 실증 연구를 시작했다”며 “유·아동 대상 교구가 노년층을 대상으로 쓰이는 ‘피벗 투 시니어(pivot to senior·노년층으로 전환)’ 현상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의균

한국이 2025년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는 등 전 세계적 고령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시니어 시장은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특히 최근 두드러지는 현상은 주로 유·아동을 대상으로 사업하던 기업들이 시니어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는 점이다. 시니어 시장 문을 두드리는 사업 종류도 식·음료 등 먹거리에서 쇼핑, 교육 등까지 다양해지는 추세다. 스허링 호주 모내시대 경제학 교수는 “저출생 추세가 일부 기업에는 시니어 시장 진출이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WEEKLY BIZ가 확산하는 ‘피벗 투 시니어’ 현상을 분석했다.

◇시작은 분유·기저귀

노년층 고객을 타깃으로 잰걸음이 확연한 곳은 전통적 유·아동 업계다. 유아용 기저귀 소비 감소에 대처하려 성인용 기저귀를 개발하고, 유아용 분유 대신 노인을 위한 단백질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을 겪는 일본은 제지용품 기업인 오지(王子) 홀딩스 산하 오지네피아가 ‘종이 기저귀 사업’을 종료한다고 지난 3월 발표했다. 1987년 어린이용 종이 기저귀를 처음 생산·판매한 이 회사는 올해까지도 관련 시장에서 점유율 34%를 기록하는 등 건재했지만, 올 9월부터 자국용 어린이 기저귀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자국 사업은 성인용 기저귀 부문에 집중하고 어린이용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시장 확대가 전망되는 외국에 팔기로 했다.

어린이용 기저귀가 덜 팔리고 성인용 기저귀 판매가 늘어나는 일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성인용 기저귀 수입량은 2021년 어린이 기저귀를 앞질렀는데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수입정보마루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용 기저귀 수입량은 2만5532t으로 어린이용 수입량 2만2954t보다 2578t 많았다. 이는 전년 격차(1016t)의 2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다.

이 밖에도 유업계에선 매일유업이 자회사 매일헬스뉴트리션을 통해 노년층을 위한 영양식 브랜드 ‘오스트라라이프’를 지난 8월 출범시켰다. 당초 단백질 음료 ‘셀렉스’를 통해 노년층 공략에 성공했던 회사가 이번엔 식약처가 규정하는 ‘고령자용 영양 조제 식품’ 유형에 맞춰 아예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은 것이다.

◇치매 예방에 뛰어든 장난감·교구 회사

최근 교구나 장난감 시장에서도 시니어 시장으로 전환하는 일이 두드러진다. 당초 아이들의 소근육 발달이나 두뇌 교육을 위해 만든 장난감이 노년층의 치매 예방에 쓰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 교구 회사 에듀케이셔널인사이트의 두뇌 활용 장난감 브레인볼트. 제품 포장에 쓰는 연령 제한 표기에 '7~107세'라고 쓰여 있다. /아마존

미국의 교구 회사 에듀케이셔널 인사이트는 최근 제품 포장에 쓰던 연령 제한 표기를 ‘7~10세용’에서 ‘7~107세용’으로 바꿨다. 이 회사는 램프 20여 개에 빨간색·초록색·파란색 불빛이 무작위로 들어오면 그 순서를 기억했다가 그대로 누르게 하는 방식의 게임 등을 만드는데, 이런 게임이 노년층 사이 치매 예방에 좋다는 소문을 탔다. 결국 이 회사는 아마존에서 자사 제품에 리뷰 수천건이 달리는 것을 확인한 뒤 제품 소개 페이지에 노인이 이 제품을 작동하는 사진을 추가했다. 미국 장난감 업계 전문지 ‘토이북’의 제임스 잔 편집장은 포브스 인터뷰에서 “노년층은 가족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장난감을 소비하고 있다”고 했다. 포브스는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교구를 만드는 회사에 투자하려는 벤처캐피털이 10년 전에 한 곳 정도였다면 현재는 20~30곳에 달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미국에선 교구 업체가 노년층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면 한국에선 학습지 업체가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교원이 운영하는 학습지 구몬은 지난 5월 ‘어른들의 학습지’를 표방하는 ‘구몬 액티브라이프’라는 브랜드를 새로 만들었다. 구몬 선생님이 주 1회 방문해 학습 관리를 돕는 시스템으로, 브랜드 출범 4주 만에 계약 건수가 1만건을 돌파했다. 연령대별 이용자는 50대(43.9%)가 1위였고, 이어 60대(29.2%), 70대 이상(26.8%)이 뒤를 이었다. 과목별로는 한자, 영어, 일본어가 인기를 끌었다.

◇유치원을 노인 교육 시설로 바꾸는 중국

지난해 60세 이상 인구가 다섯 명 중 한 명(21.1%)일 정도로 ‘노인 대국’이 된 중국에서도 시니어 시장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중국의 노인 인구가 지난해 2억9000만명에서 2035년엔 4억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이에 중국 정부는 노인 친화 관광이나 의료 서비스 등 노인을 위한 제품·서비스 시장이 2035년까지 30조위안(약 5800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인은 자꾸 느는데 아이들은 줄면서, 지난해 중국에선 유치원 등록자가 전년 대비 530만명 줄었다. 이에 유치원 1만5000곳이 문을 닫고, 전체 유치원 교사의 5%가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유치원 감소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대안으로 떠오른 게 노인 교육 전환이다. 유치원으로 사용되던 공간을 노인 교육 센터로 바꾸고, 교사들도 노인 교육 교사로 바꾸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내 노인 돌봄 시설 수는 2018년 대비 두 배로 늘었고, 이곳에서 노래·음악·춤·미술 등을 가르친다”며 “노년층은 방학도 없이 1년 내내 출석할 뿐 아니라 부지런한 생활 습관 덕에 늘 수업은 만석이다”라고 전했다.

◇소비 여력 많은 시니어가 이끄는 시장

노년층 대상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은 노년층의 소비 여력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특히 사회 활동이 왕성했던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는 이전 세대에 비해 노후 대비가 잘돼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KB국민카드가 지난해 신용·체크카드 이용 금액을 분석한 결과, 65세 이상 카드 사용액은 2019년 대비 81% 늘어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50대 이상은 39% 늘었고, 40대 이하는 13% 증가에 그쳤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제 막 노년층에 진입하는 예비 집단만 보더라도 자산 소득, 근로 소득이 탄탄해 구매력이 있고, 절대 빈곤을 겪었던 선배 세대에 비해 인식이나 가치관이 다양한 편”이라며 “시니어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업체들은 보통재부터 사치재까지 다양한 소비자의 수요를 파악해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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