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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년 전 유럽 남서쪽 끝자락 포르투갈에서 건조된 대형 범선이 ‘대항해 시대’의 주역이 됐듯, 이곳에선 새 역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최근 미국 텍사스주(州) 휴스턴. 세계 최초로 민간 우주 정거장을 건설하는 우주 기업 액시엄 스페이스의 거대 작업장엔 길이 3~6m짜리 목조 목업(mock up·실제와 유사한 모형) 구조물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마치 레고 조각처럼 2030년까지 우주 정거장을 조립해 지을 때 한 조각이 될 모듈(특정 기능을 수행하도록 만든 독립 구조물)들이다. 이를 앞에 두고 우주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은 삼삼오오 모여 목업 표면에 글씨를 휘갈기거나 노트북을 두드려가며 무언가를 정신없이 논의 중이었다.
인류사에 큰 획을 그을 ‘우주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스페이스 X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20년 후엔 약 100만명이 화성에 정착할 것”이라며 정착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민간 기업까지 나서 우주 정거장을 짓고, 우주선을 경쟁적으로 쏘아 올리며 21세기 신대륙을 찾아나서고 있다. 새 정착지가 될 우주에서 어떻게 입고 먹고 지낼지에 대한 연구도 진일보하고 있다. WEEKLY BIZ는 우주 대항해 시대를 준비하는 세계 각지의 현장과 우주 전문가를 찾아 지척으로 다가온 우주 시대를 미리 엿봤다.
◇전환점 맞은 우주 정거장 시대
암흑의 우주에서 쏟아지는 별빛을 보는 기분은 어떨까. 취재진이 찾은 액시엄 스페이스 작업장에서 눈길을 끈 건 정거장 시설 일부인 우주 관측 돔이었다. 로켓 머리를 닮은 모양의 관측 돔은 사방이 투명해 외부를 잘 볼 수 있게 만든 구조인데, 우주를 관람하고 명상할 공간으로 활용될 것이란 게 업체 설명이다.
“우리가 6년 뒤에 완성할 우주 정거장 ‘액시엄 스테이션’엔 우주를 연구하는 박사들만 오는 게 아닙니다. 민간 관광객도 올 수 있고, 기업들이 (우주 관련) 제품을 만드는 공간으로 쓸 수도 있어요.” 안내를 맡은 조지 모터 액시엄 스페이스 수석 엔지니어는 모듈 사이를 잇는 통로를 가리키며 “마치 호텔처럼 넓고 깔끔하지 않은가”라고 했다.
미국·러시아 등 여러 나라가 참여해 지난 20여 년 동안 우주 개발 전초기지 역할을 하던 ‘국제 우주 정거장(ISS)’ 시대가 저물고, 민간 우주 기업들이 앞다퉈 우주 정거장을 개발하는 신(新)우주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주 정거장이 단순 연구 시설을 넘어 우주 관광 등으로 새로운 노다지 업종이 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액시엄은 이 민간 우주 정거장 분야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데, 이들이 꿈꾸는 미래는 멀지 않다는 설명이다. 액시엄의 첫 번째 모듈은 2026년 말이면 우주로 발사되고, 2030년엔 전체 ‘액시엄 스테이션’이 완성될 예정이다.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은
우주 개발 생태계가 정부 주도에서 탈피해 민간 기업과 대학 연구소로 빠르게 확대되면서 우주 정착 기술도 급속도로 발전하는 추세다. 미 휴스턴대 사사카와 국제우주건축센터(SICSA)에선 ‘케이지(Cage)’라 불리는 연구 공간에서 우주 정착지 설계와 건축 실험을 하고 있다. 얼마 전 휴스턴대 캠퍼스에서 만난 올가 반노바 SICSA 센터장은 “최근 허리케인 ‘베릴’로 건축학부 건물 지붕이 날아가자, 휴스턴대에선 ‘건축학부 건물이 건축학적으로 제일 잘못 지어졌다’는 농담이 오간다”며 “중요한 건 지구에서든 우주에서든 건축물은 해당 지역의 환경을 견뎌낼 수 있게 지어져야 한다는 것”이라 했다. 이에 SICSA에선 가능한 한 우주 환경에 비슷하게 실험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 우주복을 입은 채, 우주 유영을 경험하며 ‘우주 건축’을 해보는 연구를 진행한다. 반노바 센터장은 “최근 우주 건축 연구의 트렌드는 3차원(3D) 프린팅 기술을 쓰거나, (수영 튜브에 바람 넣듯) 팽창식 튜브로 짓는 방식, 조립형 모듈을 이용해 짓는 방식 등이 있다”고 설명을 보탰다.
지나치게 두꺼워 움직이는 것조차 불편했던 우주복도 바뀌고 있다. 액시엄 스페이스 본사 한편에선 나이 지긋한 여성 재봉사 20여 명이 재봉틀 앞에서 ‘핸드 메이드’ 우주복을 만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현장 관계자는 “우주복은 우주인들 체형에 맞게 맞춤형 제작을 해야 해서 이렇게 수제 제작이 이뤄진다”고 했다. 하지만 고전적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이 수제 우주복 안엔 첨단 기술이 탑재된다. 존 헌트 액시엄 선외 활동(EVA) 프로그램 매니저는 “노키아의 4G LTE 통신망을 통해 우주인들이 서로 통화할 수 있고, 지구에 있는 본부와도 소통할 수 있는 신기술을 우주복에 장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스페이스X가 상대적으로 얄팍하고 기동성을 확보한 우주복을 개발한 덕분에, 지난 9월 ‘폴라리스 던’ 프로젝트에 참가한 민간인들이 이 우주복을 입고 우주 유영을 하기도 했다.
우주에서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연구도 성과가 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우주인들이 먹는 음식을 모두 지구에서 가져갔지만, 앞으로 우주 정착 시대를 개막하려면 우주에서의 식량 자급자족은 필수적이다. 화성에 고립된 우주인의 생존기를 다룬 영화 ‘마션(Martian·화성인)’에서 주인공이 감자를 길러 먹었듯, 지난 7월 존슨우주센터에서 막을 내린 차피(CHAPEA·Crew Health and Performance Exploration Analog) 프로젝트에서 네 명의 참가자는 ‘마스 듄 알파’라 불리는 158㎡ 크기의 모의 화성 기지에서 378일 동안 갇혀 지내며 토마토와 고추, 잎채소 등을 직접 재배하는 실험을 했다.
◇우주 시대, 넘어야 할 산은
민간 우주 기업까지 앞다퉈 우주 개발에 눈독을 들이는 신(新)우주시대에도 ‘우주 점령’을 향한 길은 험난하다. 평생 지구 환경에 길들여졌던 사람 몸이 중력과 기압 등이 지구와 전혀 다른 우주 환경에서 견디는 것 자체가 난관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지구 밖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인체 내 뼈와 근육 등이 빠르게 소모된다고 설명한다. 우주 정거장에 머무는 우주 비행사들은 이러한 신체적 쇠약과 싸우기 위해 하루에 몇 시간씩 운동을 하지만, 그럼에도 쇠약을 아예 막을 순 없다고 한다. 또 지구 보호 대기와 자기장을 벗어난 공간의 방사선 수치는 지구 표면보다 높기 때문에 암 발생 위험도 높아진다.
이에 인간이 우주에서 살기 위해선 ‘우주형 인체’로 개조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천문학자이자 전 영국 왕립학회장인 마틴 리스 경은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에 “호모 사피엔스는 체질적으로 우주 여행에 적합하지 않다”며 “새로운 아종(亞種)인 호모 스페이시엔스를 유전공학적으로 조작하는 것이 우주 식민지화를 만드는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발 딛고 살아갈 땅도 문제다. 예컨대 화성에는 흙 대신 ‘레골리스’라 불리는 모래, 먼지 등의 혼합물이 표면을 덮고 있다. 따라서 화성에서 식물을 재배하려면 우선 씨앗이 자랄 수 있는 토양층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표면에 덮인 독성 물질인 과염소산염을 없애야 하는데, 이론상으론 이를 태우거나 물로 씻어내 없앨 수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미지수다.
◇우주의 경제적 가치는
하지만 아무리 험난해도 오늘날 인류는 우주로 향한다. 대항해 시대 유럽인들이 각종 금은보화와 향신료를 싣고 돌아와 부를 일구려는 꿈에 대양으로 범선을 띄운 것처럼 오늘날 우주 개발은 성공만 하면 ‘잭팟’을 터뜨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소행성엔 희토류, 헬륨-3 등 희귀 광물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드 앤더슨 미국 스페이스 캐피털 CEO는 저서 ‘스페이스 이코노미’에서 우주 경제의 신흥 산업으로 ‘우주 정거장’ ‘달 산업’ ‘우주 물류업’ ‘우주 중공업’ 등을 꼽았다. 우주에서 귀한 광물을 실어 나르고 우주 호텔에 머물며 달 관광을 하는 시대가 도래하면 관련 산업이 폭발적인 성장을 할 것이란 예견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해 우주 통신, 위성 제조 등 우주 산업과 관련한 경제 규모가 약 6300억달러(약 880조원)에 달하며, 2035년엔 그 규모가 1조800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제러미 제건스 세계경제포럼 전무이사는 “우주에서의 인간 활동은 전례 없는 속도로 가속화하고 있다”며 우주로 향하는 인류의 여정이 순항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선일보 우주 대항해 시대 기획 시리즈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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