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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코인 쇄국(鎖國)’이라 통하던 일본의 가상화폐 시장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른바 ‘마운트곡스 사태’ 충격 이후 가상화폐 시장을 강력한 규제로 꽁꽁 묶었던 일본이 최근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제도 정비에 나섰기 때문이다. 마운트곡스 사태란 2014년 초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이었던 일본의 가상화폐 거래소 마운트곡스가 5억달러(약 7000억원)어치 비트코인 85만개를 도난당해 파산했던 일을 말한다. 유수의 금융지주회사 사무실이 즐비한 도쿄 미나토구 이즈미가든 타워에서 지난 14일 WEEKLY BIZ와 만난 오다 겐키(小田玄紀) 일본암호자산거래업협회(JVCEA) 회장은 “급변하는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에 대응해 일본도 관련 규제를 유연하게 바꿔나가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규제의 틀을 마련한다면 일본 등 규제를 먼저 만든 나라의 사례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래픽=김의균

◇쇄국 빗장을 연 자율 규제 기관 JVCEA

일본은 주요국 가운데 가상화폐 규제를 가장 발 빠르게 마련한 나라다. 마운트곡스 사태를 겪으며 2016년 자금결제법을 개정하고 가상화폐를 공식 자산으로 인정했다. 다만 규제의 강도가 셌다. 일본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일본 금융청(FSA)에서 관리하도록 하고, 신규 가상화폐를 각 거래소에 상장하려면 JVCEA의 최종 허가를 받았다는 의미의 ‘화이트리스트’ 등록부터 하게 했다. 2018년 태동한 JVCEA는 정부로부터 규제 권한을 위임받아 가상화폐 사업자 영업과 거래소들의 상장 종목 등을 결정하는 막강한 힘을 부여받았다.

다만 화이트리스트에 등록되려면 각종 서류를 제출해도 심사 과정에만 1~2년이 걸릴 정도로 절차가 까다로워 가상화폐 업계 불만이 컸다고 한다. 이때 JVCEA는 산업계의 고충을 귀담아듣고 규제 완화라는 ‘숨 쉴 틈’을 마련했다. 2022년에 회원 거래소 세 곳 이상에서 이미 거래가 이뤄지는 등 일정 조건을 만족한 가상화폐라면, 최초 상장 시 요구하는 복잡한 절차를 일부 완화해주는 ‘그린리스트’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오다 회장은 “(그린리스트 도입 이후) 심사 기간이 짧게는 5일 이내로 줄었다”며 “2021년 37개였던 일본의 상장 가상화폐 숫자도 2023년 들어 100개를 돌파했다”고 말했다. 자율규제 기구인 JVCEA가 정부와 산업계 사이 가교 역할을 하면서 규제 완화를 이끌어 낸 셈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7월부터 가상자산법(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만큼 일본 자율 기구인 JVCEA처럼 정부와 가교 역할을 하는 곳이 필요하다는 게 오다 회장 조언이다. 국내에도 JVCEA와 비슷한 자율 규제 기구 닥사(DAXA·디지털 자산 거래소 공동 협의체)가 있긴 하지만, 전문가들은 닥사의 기능과 역할이 아직 불분명하다는 평가다. 닥사는 개별 거래소의 상장과 상장폐지 결정에 개입할 권한이 없는 데다, JVCEA처럼 정부 인가 공식 기구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오다 겐키 일본암호자산거래업협회(JVCEA) 회장은 “한국에도 규제안을 정부에만 맡기기보다 정부와 업계 사이 가교 역할을 할 JVCEA 같은 공인 자율 기관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도쿄=김동현 기자

◇日 등 주요국, 법인 계좌까지 허용

일본을 비롯한 해외 주요국의 가상화폐 규제와 국내 제도의 주요 차이점 중 하나는 법인 계좌 허용 여부다. 일본·미국·유럽연합(EU)에서도 각 법인은 법인 차원의 가상화폐 계좌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법인 계좌 개설을 막는 실정이다. 국내의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기업 자금도 (가상화폐 시장에) 들어올 수 있어야 국내 가상화폐 관련 산업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법인 계좌가 허용되면 교육기관이나 봉사단체가 기부받은 가상화폐를 현금화하는 게 수월해지는 순기능도 있다”고 했다.

일본 현지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가상화폐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는 만큼 법인 차원의 투자를 아예 막는 건 시대착오적이란 의견이 많았다. 도쿄에서 만난 일본 금융청 관계자는 “가상화폐에 대한 법인 거래가 이뤄지면 거래 주체의 폭이 넓어지게 돼 가상화폐 시장이 보다 활성화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법인계좌를 허용했을 때 기업들의 대규모 자금 세탁 등의 위험이 커지는 등의 부작용은 막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일본 금융청 관계자는 “일본의 가상화폐 업체들은 범죄수익이전방지법 및 관련 가이드라인에 따라 투자자 계좌 개설 및 거래 내역을 관리·감독하는 의무가 있는데 법인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특히 법인의 경우 ‘실질적 지배자’라고 부르는 대표자를 특정해, 그 사람의 거래 내역을 감시하고 있어 부정 이용 방지 조치가 (개인과 마찬가지로) 충분하게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도 자금 세탁 등 부정 이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업계에선 시중 은행에 구축된 AML(자금 세탁 방지) 및 법인 대면 인증 시스템으로 일본과 유사한 절차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관련 당국은 시중 은행을 중심으로 법인 가상화폐 계좌에 대한 단계적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화폐 세금은 걷어야 하나

가상화폐 수익의 과세 문제도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최근 한국 정치권은 가상화폐로 번 돈에 내년부터 세금을 당장 매길지 추가 유예 기간을 둘지 공방 중이다. 주요국에선 이미 가상화폐에 세금을 부과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가상화폐에 따른 수익을 잡소득(한국의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투자한 사람의 소득에 따라 15~55% 세율로 세금을 매긴다. 미국은 1년 미만 보유한 가상화폐를 매도해 수익을 내면 10~37% 세율을 적용하는데, 1년 넘게 장기 투자할 땐 세금을 면제하거나 수익의 15~20%만 세금으로 걷는다. 오다 회장은 “한국에서도 과세 시점을 자꾸 미루기만 하는 건 시장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며 “다만 일본처럼 과세 체계를 처음 도입할 때는 투자자 보호 시스템도 철저히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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