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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밤 미국 일리노이주 버뱅크에 있는 전자 제품 소매업체 베스트바이 매장 앞에 대기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최대 할인 행사 중 하나인 '블랙 프라이데이'에 몰린 소비자들이다. 3분기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베스트바이는 11~12월 연말 쇼핑 시즌 매출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전자 제품 중에서 수입되지 않는 것은 극히 드뭅니다. 관세 인상 때문에 늘어나는 비용은 소비자들에게도 전가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최대 전자 제품 소매업체 ‘베스트바이’의 코리 배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6일 진행된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재선된 후 열린 첫 실적 발표에서 트럼프가 밀어붙이는 관세 인상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셈이다. 내년 1월 임기가 시작되는 트럼프가 ‘보편 관세 10% 인상’ 같은 고강도 관세를 예언한 가운데, 해외 제조사뿐 아니라 미국 소매업체들도 걱정에 휩싸였다. 판매 상품 대부분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만큼 관세로 인한 부담이 불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관세발(發) 인플레이션에 대해 경고도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의 내수 시장은 ‘관세 충격’을 버텨낼 만큼 탄탄할까. 이 중에서도 빅테크들의 주요 전장인 전자 제품 시장은 어떨까. WEEKLY BIZ는 미국 최대 전자 제품 소매업체인 베스트바이의 3분기 실적 자료 등을 분석해 미국의 소비 동향을 살펴봤다.

그래픽=김의균

◇매출 감소, 미 대선 등 불안 요소 탓

베스트바이는 올해 3분기에 시장 예상보다 부진한 실적을 냈다. 지난달 26일 공개된 3분기 실적 자료에 따르면, 매출은 94억4500만달러(약 13조원)를 기록해 전년 동기 97억5600만달러보다 3%가량 감소했다. 이 중 국내 매출은 86억9700만달러, 해외 매출은 7억4800만달러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3%, 1.5% 줄었다. 국내 매출이 사실상 전체 매출을 끌어내렸다.

실적 보고서 및 간담회에선 매출 하락의 주된 원인이 크게 두 가지 지목됐다. 배리 CEO는 “3분기 매출 하락은 거시 경제의 불확실성, 그리고 미국 대통령 선거의 여파가 뒤섞인 결과”라고 했다. 미국 내 매출이 줄어든 원인이 회사 내부 상황보다는 전쟁을 비롯한 글로벌 불안, 대통령 선거 등 외부적 요인에 있다는 뜻이다. 배리 CEO는 “지금은 대통령 선거가 끝났고, 연말 연휴를 앞두고 있는 매우 긍정적인 상황”이라며 “이미 4분기의 첫 몇 주간 연말 행사 시작과 함께 늘어나는 소비를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發 관세 인상, 소비자에게 전가될 위험”

베스트바이는 3분기의 실적 부진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실적 보고서에 “올해는 예상과 달리 (전자 제품 판매업) 시장이 안정화되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이 성장세를 되찾아 매출·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적었다.

하지만 ‘꽃길’만 예상되는 상황은 아니다. 실적 발표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배리 CEO는 트럼프가 내세우는 관세 인상의 후폭풍에 대한 우려를 여실히 드러냈다. 트럼프는 “내년 1월 취임 첫날부터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물리고, 중국에는 관세를 10% 더 부과할 것”이라고 예고한 상태다. 판매 상품 중 중국과 멕시코를 통해 공급되는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 묻자 배리 CEO는 “우리가 (수입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의 50%는 중국에서 나오고, 멕시코는 둘째로 크다”고 밝혔다. 베스트바이가 파는 물건을 생산하는 주요국들이 고관세라는 부담을 지게 된 셈이다. 그는 “(관세로 인해 늘어나는) 비용은 베스트바이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관세는 물품을 수입하는 회사나 사람이 부담하며, 결과적으로 가격에 전가돼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배리 CEO는 “우리는 이런 (관세 인상) 조치가 미국의 산업에 어떤 타격을 주는지 알리려고 노력하면서 소비자를 위한 적정 가격을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노트북 등 디지털 기기 매출은 증가

이번 실적 보고서를 보면 가전 분야의 부진이 전체 매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가전제품의 미국 내 매출이 15%가량 감소했다. ‘홈시어터(집 안 극장)’와 게임 관련 제품 매출도 크게 감소했다. 반면 매출이 많이 늘어난 제품도 있었다. 컴퓨터, 태블릿PC 관련 제품은 전년 대비 매출이 5.2% 증가했다. 노트북 컴퓨터 매출은 7% 불어났다.

배리 CEO는 “(노트북 등 디지털 기기) 소비자들은 혁신 기술이 탑재된 새 제품으로 갈아타거나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욕구가 강하다”며 이런 수요가 앞으로도 계속돼 회사 실적을 견인할 전망이라고 했다. 그는 또 “가격과 할인을 중요시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필요한 물건에는 기꺼이 비싼 돈을 지불하는 손님도 있다”며 “우리는 이처럼 다른 소비자 유형에 (모두) 실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독보적인 입지를 확보했고, 따라서 미래의 상황을 낙관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앱 많이 쓰는 소비자, 돈도 잘 쓴다

베스트바이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소비자 ‘경험 혁신’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베스트바이는 자사 앱에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을 돕기 위한 AI 서비스 ‘베스트바이 기프트 파인더(선물 탐색기)’를 도입했다. 배리 CEO는 “소비자들이 베스트바이 기프트 파인더와 (대화를 나누는 등) 상호작용하다 보면 자신이 알지도, 생각지도 못했던 최고의 선물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분기엔 AI 기술로 제품의 배송 시간을 분(分) 단위로 파악할 수 있는 ‘ETA(Estimated Time of Arrival·도착 예정 시간)’ 기능을 추가했다. 배리 CEO는 “소형 제품을 대상으로 배송 도착 시간을 두 시간 단위로 설정하는 ‘스케줄 배송’도 새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촘촘한 배송 일정과 시간을 지켜내는 일이 사업자 입장에선 까다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스마트폰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고객들이 베스트바이 앱을 통해 쇼핑의 모든 여정에 함께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이런 전략을 취하는 것은) 앱을 더 자주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돈도 많이 쓴다는 사실이 데이터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프라인 매장은 양보다 질

베스트바이는 오프라인 매장 부문에선 공격적인 확장보다는 ‘재정비’에 무게를 두기로 했다. 각지에 흩어진 대형 매장을 줄이는 방식으로, ‘양보다는 질’에 무게를 두겠다는 방침이다. 배리 CEO는 “지난 수년에 걸쳐 우리는 매장 포트폴리오를 ‘합리화’하고 있다”며 “올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는 전통적인 형태의 매장 열두 개를 없앴다”고 밝혔다. 오프라인 사업을 축소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베스트바이 실적 보고서엔 “최근 신규 매장 두 곳을 열었다”면서 “거대한 홈시어터 공간과 가전제품 전시관을 마련했다”고 적었다. 수퍼마켓식 제품 전시를 벗어나 ‘집’의 경험을 재현하는 식으로 오프라인 매장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해, 방문 소비자를 위해 해당 브랜드 담당자가 파견돼 직접 상품을 설명하는 ‘외부 도우미’도 늘릴 계획이다. 베스트바이는 실적 보고서에 “삼성전자·버라이즌(미국 최대 통신사) 등이 우리 매장에 인력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했다. 매장을 방문까지 하는 소비자는 구매할 뜻이 상당히 강한 경우가 많은데, 베스트바이를 통해 물건을 파는 기업에서 나온 이들의 전문적인 설명이 구매 확률을 높여 베스트바이와 해당 기업이 ‘윈·윈’ 할 수 있게 해준다고 베스트바이는 설명했다.


✏️WEEKLY BIZ 키워드: 관세

국가 간 무역을 할 때 상품에 부과하는 세금. 대표적인 보호무역 조치로 알려져 있어 수출국이나 수출 기업이 낸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수입하는 회사나 사람이 낸다. 수입사는 통상 관세로 인해 늘어난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기 때문에 관세는 소비자에게도 부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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