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그래픽=김의균

“현대 사회의 빅테크는 봉건시대의 영주와 같이 군림합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이들의 땅(플랫폼)에서 밭을 일구는 농노가 됐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노예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는 노예인데, 어쩌면 우리가 그런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 재무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 아테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WEEKLY BIZ와 화상으로 만나 이처럼 말했다. 2015년 그리스 경제 위기 시절 6개월 동안 재무장관직으로 일하고 사임했던 그는, 지난 9월 ‘테크노 퓨달리즘(feudalism·봉건주의)’란 책을 펴내고 “현대인들이 새로운 봉건제 아래 살게 됐다”고 주장했다. 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 플랫폼이란 ‘땅’을 제공하는 디지털 시대 영주들 아래에 개인들이 끌려다니게 됐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래픽=김의균

◇현대판 봉건 영주가 된 빅테크들

-우선 ‘테크노 퓨달리즘’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을 꼽자면 ‘시장’과 ‘이익’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엔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 기업의 플랫폼이 시장을 대체하고 있는데, 플랫폼은 엄밀히 말해 시장의 동의어가 아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에 의해 통제되는 디지털 시스템이다. 베이조스는 마치 봉건시대 영주가 영지를 제공하는 대가로 지대를 받는 것처럼 이 디지털 시스템에서 나오는 이익을 챙긴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테크노(기술)’와 ‘퓨달리즘(봉건주의)’의 합성어인 ‘테크노 퓨달리즘’이란 말이 탄생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빅테크들이 만든 플랫폼이 인류의 편의를 크게 증진시켰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는데.

“물론 플랫폼이 세상에 엄청난 변화들을 가져온 건 사실이다. 문제는 빅테크들이 플랫폼을 소유하는 방식이다. 플랫폼은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게끔 만들어 물건을 판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머신러닝과 알고리즘의 통제를 받게 되며 생각의 자유는 제한된다. 그리고 플랫폼의 주인들은 이런 시스템을 이용해 가만히 앉아서 엄청난 이윤을 얻는다. 이런 구조가 문제란 얘기다.”

◇플랫폼의 농노로 전락한 현대인들

-플랫폼 이용자를 농노라 했다. 과한 표현 아닌가.

“어떤 사람이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 한다고 치자. 그는 ‘좋아요’도 받고, 팔로어도 늘리고 싶어 하기 때문에 다양한 영상과 게시글을 꾸준히 올릴 것이다. 물론 자발적인 행위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본인의 동기와 상관없이 빅테크 주인들의 자산 증식을 위해 무료 노동을 한 꼴이 된다. 우리가 X(옛 트위터)에 게시물을 올리면 일론 머스크의 자본이 늘어나지 않나. 나도 모르는 새 머스크의 농노가 돼 있는 셈이다.”

-농노들은 먹고살기 위해 영지를 가꿔야 했지만, 플랫폼 이용자들에겐 언제든 그만둘 자유가 있지 않나.

“플랫폼은 미국·중국 등 소수 국가의 몇 안 되는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하고 싶다면 유튜브, 인스타그램, X, 틱톡 등 선택지 자체가 제한적이다.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15세기 유럽에 가서 농노들을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이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선조들이 살았던 집에 살면서 종교 행사도 하고, 축제에 참여하며 나름 만족하는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지를 받아들이고 있는 현재 우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콘텐츠 소유권, 빅테크 아닌 개인에 있어야”

-이용자들이 소셜미디어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대가를 받아야 한단 얘긴가.

“대가를 받아야 한다기보다는 소유권을 가져야 하다. 우리의 X 계정과 그 안에 있는 게시물들은 X에 귀속돼 있다. 내가 100만 팔로어를 거느리든, 게시물이 500개든 (X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넘어가 소셜미디어를 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콘텐츠의 소유권이 사실상 창작자 본인한테 없는 것이다.”

-개인에게 소유권 주는 게 어렵지 않을까.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휴대전화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를 생각해봐라. 당시 사람들은 전화번호를 바꾸고 싶으면 통신사를 바꿔야 했다. 내가 돈 주고 이용하지만, 그 번호는 통신사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번호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번호를 갖고 통신사를 옮길 수 있게 됐다. 이처럼 플랫폼 생태계에서도 콘텐츠와 데이터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해야 하고, 기술적으로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

◇”독점 없애고, 알고리즘 오픈해야”

-테크노 퓨달리즘 탓에 불거진 문제점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독점을 타파해야 한다고 본다. 예전에 구글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구글 덕분에 검색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됐고, 우리는 이제 구글의 검색 서비스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인터넷 검색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즉 인권이 됐다. 지금까지 당신들은 이걸로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인권을 소유할 수 없다. 앞으로 행운을 빈다’고 덧붙였다. 마치 인터넷 검색이 당연한 인간의 권리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특정 기업이 이를 영리에 이용하거나 독점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앞으로 빅테크들의 사업도 제한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취지였다”

-독점을 어떻게 깰 수 있나.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중 미국 석유 시장을 독점한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라는 기업을 해체한 적이 있다. 석유는 공공재 성격이 있어 특정 기업이 독점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조치다. 플랫폼이란 공공재를 사유화하는 기업의 영업 방식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

-독점을 타파하는 것 외에 필요한 조치는.

“어떤 방식으로 알고리즘이 흘러가는지 공개해야 한다. 알고리즘은 플랫폼의 이윤 추구에 최적화돼 있다.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스티브가 오븐을 사려고 아마존에 검색하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 알고리즘 자체가 가장 좋은 오븐 제품을 제시하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라, 구매자가 가장 살법한 상품을 추천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는 매출을 극대화해야 하는 빅테크 입장에선 당연한 방식일 수 있겠으나, 공익적 관점에선 옳지 않다고 본다.”

◇”그리스 경제, 여전히 겨우 연명 중”

-당신이 그리스 재무장관으로 재임 중이던 2015년,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 채무 상환에 실패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해달라.

“2008년 금융 위기로 세계 경제가 무너졌다. 그리스도 덩달아 경기 침체에 빠졌고, 은행들의 빚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국내총생산(GDP)은 꺾이고, 세수가 줄어드는 악순환은 지속됐다. IMF는 그리스가 돈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돈을 빌려줬다. 예상대로 갚을 수 없었고, 모든 것은 그저 정해진 ‘나쁜 결말’이었다고 본다.”

-그래도 그리스는 최근 법인세율 인하로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고, 퍼주기식 복지를 줄여 국가 부채 수준을 많이 개선하지 않았나.

“부채가 줄어든 건 그저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으로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부채의 가치도 떨어진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그리스 경제는 아직 코마(의식불명) 상태로 수액을 맞은 채 연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의 임금은 지나치게 낮고, 물건 값은 여전히 비싸다. 젊은이들에게 점점 더 부끄러운 나라가 돼 가고 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전 재무장관. /21세기북스

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