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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강한 미국의 힘 탓에 이 세상의 여러 문제들이 불거졌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앞으론 사람들이 오히려 미국의 힘이 너무 약해져 문제라는 걸 깨닫기 시작할 겁니다. 우리(미국)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다른 나라에 관여하는) 외교 정책을 훨씬 최소화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잖습니까.”
퓰리처상을 세 차례 받은 세계 최고 논객,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는 지난 16일 WEEKLY BIZ와 화상으로 한 단독 인터뷰에서 내년 1월 시작될 트럼프 2기 시대에 펼쳐질 세계 정세의 맥을 이렇게 짚었다.
‘중동 최고 전문가’ ‘세계화의 전도사’ 등으로 불리는 그는 인터뷰 내내 트럼프의 귀환으로 중동 등 세계 곳곳에서 미국의 힘이 빠져나갔을 때의 파장을 우려했다. 내수 소비를 진작해야 할 중국 경제와 대중국 무역 관계를 재조정하려는 미국 경제를 두고선 “우리(미국)는 더 많은 일론 머스크가 필요하고, 중국엔 더 많은 테일러 스위프트가 필요하다”고 했다. 프리드먼은 불안한 중동 정세와 ‘두 전쟁’, 미·중 관계 등에 대한 폭넓은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다 한국의 탄핵 정국과 관련해선 “경제적으로 이만큼 잘 성장한 나라가 왜 이리 정치적으로 불안한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석유, ‘아랍의 봄’ 실패의 원인
-중동은 2011년 ‘아랍의 봄(중동 민주화 운동)’ 이후에 기대한 만큼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뭔가.
“하나만 이유를 대자면 ‘석유’다. 중동 국가들은 엄청난 석유를 갖고 있다. 이에 국가 내부의 정치적인 경쟁은 곧 ‘누가 석유를 잡을 것인가’로 귀결된다. 석유를 차지하는 정권은 그 정권이 왕정이든 독재 정부든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게 중동에서 민주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첫째 원인이라 본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는 얘기인가.
“친족(親族) 문제를 오래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도 민주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중동은 굉장히 다양한 (친족 집단이 섞여 있는) 사회인데, 유럽 열강이 식민지 시대에 그어놓은 국경 안에 갇혀 있다. 그래서 시아파·수니파·기독교인 등 다양한 종교를 가진 민족들이 공존할 방법을 찾은 나라만 살아남고 있다. 시리아는 알아사드 일가의 철권통치 아래서 이를 해냈지만 (철권통치) 이후엔 미지수다. 사담 후세인 이후 이라크도 마찬가지다. (중동 국가들이) 새로운 권력 분담 협정을 맺거나, (민주주의 체제처럼) 밑에서부터 합의된 정치 형태를 찾아가길 바란다.”
◇요동치는 중동의 지형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1년 넘게 이어진다. 중동의 미래는 어떻게 내다보나.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인) 하마스의 이스라엘을 향한 야만적 공격과 이에 맞선 이스라엘의 파괴적 대응으로 벌어진 전쟁이 가자 지구를 폐허로 만들었다. 이제 가자에서 하마스 세력은 (거의) 사라졌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결정하지 않았다. 가자는 사실상 ‘권력 공백’ 상태고, 이 전쟁 스토리가 어떻게 끝날지 아직 모른다.”
-이스라엘이 입장 정리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스라엘이 가자를 직접 통치할지, 국제 파트너를 찾을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개입시킬지, 아니면 일부 극우 세력이 선호하는 대로 가자를 병합할지 아직은 불확실하다.”
-이스라엘은 최근 시리아를 공격하는 등 중동 지역 내 영향력을 키우려는 듯하다.
“나는 (영향력 확대 차원으로) 그렇게 보진 않는다. 시리아 알아사드 정부가 붕괴되고, 이로 인해 시리아군도 붕괴됐다. 그 빈자리를 차지한 이들(이슬람 근본주의에 뿌리를 둔 반군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누구인지는 아직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 이런 가운데 시리아 전역에 아직 많은 무기가 남아 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적대적인 지하디스트(이슬람 근본주의를 따르며 무장 투쟁을 하는 사람들) 정권이 등장할 것에 대비해 미리 시리아 핵심 전략 자산을 파괴한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갑자기 붕괴된 상황을 상상해 보라. 한국은 (북한에 남은) 무기들과 이 무기를 누가 차지할지 굉장히 걱정하지 않겠나.”
-HTS가 이끄는 시리아의 미래는 낙관적으로 보나.
“나는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그냥 지켜보고 있다. 왜냐면 아직 많은 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특히 HTS가 어떤 존재인지 진짜 잘 모르겠다. 그들은 알카에다의 분파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들이 권력을 잡은 이후엔 소수민족을 존중하고, 대규모 학살 같은 일도 없었다. 복수심도 없었고. 하지만 동시에 13년 동안 내전을 거친 나라를 재건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또 많은 외국 세력이 개입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래서 (시리아의 미래는) 쉽지 않을 거다. 시리아는 중동 한가운데에 있는 ‘주춧돌(keystone)’ 국가다. 안정된 방식으로 재건돼야 한다. 그래야 레바논에도, 이라크에도 좋고, 무엇보다 지난 13년 동안 떠돌아 다닌 시리아 난민들에게 정말 좋은 소식이 될 것이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
-트럼프는 중동 상황에 대해 ‘우리 일이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어떻게 보나.
“나는 미국이 (중동 지역에) 아주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점이다. 위험도 크지만, 한편으로는 기회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시리아가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이웃 나라) 레바논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될 거다. 이는 이라크 내 민주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이란 내부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도 있다. (이런 시나리오는) 성공 확률이 낮고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다면 그곳(중동)에서 이런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나는 트럼프가 이 기회를 이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트럼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분위기인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에 수십억 달러를 쓰게 한다. 트럼프 입장에선 이 상황을 완화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트럼프는 ‘평화’를 원하고, 푸틴은 ‘승리’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일부 지역만 뺏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반면 트럼프는 평화, 즉 휴전을 원한다. 문제가 어려워지는 이유다.”
-당신은 지난 9월 17일 자 NYT 칼럼에서 ‘자녀에게 어떤 장래 희망이든 상관없지만, 미국 국무장관만은 하지 말라고 한다’고 적었다. 왜 그랬나.
“현 국무장관인 토니 블링컨과 1970년대에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를 비교했기 때문이다. 키신저는 1973년 발발한 이집트와 이스라엘 전쟁을 통화 단 세 통으로 중재했다. 그때 키신저는 시리아 대통령, 이집트 대통령, 이스라엘 총리에게만 전화하면 됐다. 이후 그의 비행기는 이 지역을 두세 달 돌아다녔고, 키신저는 창의적인 외교를 펼쳤다. 강한 미국의 힘으로 지역 강국들을 상대로 ‘틱택토(Tik Tak Toe·세 원을 한 줄로 이으면 이기는 간단한 게임)’처럼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하지만 지금 블링컨이 시리아에 가면 어떤가. 시리아 정부와 이란 정부, 심지어 러시아 정부까지 신경 써야 한다. 약해진 미국이 (자국에 대한 통치력이) 약해진 타국 정부를 상대해야 하니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
-미국은 동맹국들조차 경제적 이익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한국에선 주한 미군 철수를 걱정하는 이가 많은데.
“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번(트럼프 1기 행정부)에도 트럼프는 그런 위협을 했지만 실제로 실천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주한미국 유지를 기본 옵션으로 보지만, 예측은 할 수 없다. (동맹국인) 미국과 한국은 70년 넘게 호혜적인 관계다. 그게 변한다면 나는 놀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트럼프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고, 그의 생각을 잘 알지는 못한다.”
◇세계화와 미·중 갈등
-트럼프 시대 자유무역과 세계화엔 어떤 변화가 있을까.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긴 이유는 인플레이션과 이민 문제를 가장 큰 이슈로 부각했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정말 걱정한다. 그런데 관세는 (수입품 가격을 올려) 결국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트럼프가 내놓은 (수입품에 대한 관세 폭탄) ‘위협’은 실제로 관세를 매기려는 의도보다는 (외국과 무역 거래를 할 때) 협상 수단으로 봐야 한다. 그가 실제로 어떻게 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나는 결국 미국이 중국·멕시코·캐나다 등과 (무역) 협상을 할 것이라 예상한다.”
-고관세 발언이 그저 협상용이라면 미·중 갈등도 나아질까.
“잘 모르겠다. 다만 미·중은 아직 탈동조화(디커플링)하지는 않았다. 아직 두 나라 무역 규모가 약 6000억달러(약 870조원)에 이른다. 나는 (미·중 갈등으로) 우리 세계가 탈세계화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리글로벌라이징(re-globalizing·재세계화)’하고 있다고 본다. 예전엔 중국에서 생산하던 많은 제품이 이제 베트남·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심지어 한국 같은 다른 나라에서 나오고 있다. 그런 흐름이 더 세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미국은 각종 대중(對中) 강경책을 쏟아내는데.
“나는 코로나 이후 최근 5년 동안 중국이 특히 전기차와 로봇 분야 등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다고 믿는다. 트럼프가 협상할 중국은 ‘8년 전 중국’이 아니다. 훨씬 강력한 제조업 국가다. 중국은 이제 전 세계 제조업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그만큼 강력한 상대가 됐다.”
-중국 경제를 평가하자면.
“지금의 중국은 마치 상체는 거대한 근육질인 보디빌더처럼 보이지만, 하체인 소비 경제는 완전히 위축된 모습이다. 중국의 많은 지방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파산 상태거나 그 직전에 있다. 더는 부동산을 팔아서 자금을 마련할 수 없어서다. 지금 중국 경제는 엄청나게 강한 수출 엔진과 아주 약한 국내 소비 엔진이 뚜렷이 나뉜 상태다. 미국은 중국과 (무역) 관계를 재조정해야 하고, 중국 또한 자신들의 내부 경제와 세계의 관계를 재조정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더 많은 일론 머스크가 필요하고, 중국은 더 많은 테일러 스위프트가 필요하다. 즉 중국은 내수 소비를 키울 방법을 더 찾아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친환경 기류
-당신은 책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에서 기후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기후 위기 대응에 무관심해 보이는데.
“대자연은 그저 화학·생물학·물리학의 결과물일 뿐이다. 야구에 빗대 표현하자면, 대자연은 항상 마지막 타석에 서서, 확실한 성과를 만들어낸다. 트럼프가 기후 문제에 대해 뭐라 하든 그건 상관없다. 중요한 건 대자연이다. 앞으로 4년 동안 점점 더 극단적인 날씨와 기후 현상이 나타나면 (무관심했던) 트럼프도 다른 판단을 내릴 것이다. 트럼프의 의견이 대자연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트럼프 집권으로 미국 내 친환경 사업도 차질을 빚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풍력과 태양광을 가장 많이 도입한 미국의 주(州)는 텍사스 등 공화당이 우세한 주다. 트럼프가 ‘(기후변화 같은 건) 믿지 않는다’고 해도, (친환경 물결은) 경제적인 흐름으로 강화되고 있다. 많은 자동차 회사도 이미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량에 투자하고 있어서, 이제 회귀하기 어렵다. 중국이 전기차 시장에서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 미국은 큰 불이익을 보고 있다. 그래서 (미국이) 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중국이 전기차 시장을 완전히 지배할 날이 올 것이다.”
-2025년 꼭 일어났으면 하는 일이 있다면.
“현재 세계의 가장 큰 이슈는 미·중 무역 갈등, 대만 문제, 기후변화, 인공지능(AI) 관리 문제, 그리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분쟁과 무질서다. 미국과 중국은 가장 큰 강대국이니까, 특히 기후와 AI 관리·통제 문제에서 협력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런 문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미·중의 폭넓은 협력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년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매달 한 번 전화하면서 이런 문제를 논의하고, 서로 불편한 점을 풀어나갔으면 좋겠다.”
-최근 한국에선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당신 생각은.
“뉴스 제목 정도만 알고, 한국 상황을 잘 몰라서 말하기 어렵다. 다만 경제적으로 이만큼 잘 성장한 나라가 왜 이렇게 정치적으로 불안정한지 이해가 안 된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토머스 프리드먼
권위 있는 언론인 상인 퓰리처상을 세 차례 받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계는 평평하다’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썼다. 특히 중동 문제와 세계화, 기후 위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 전문가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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