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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갑진년 용의 해는 용 대신 돼지가 파란을 일으킨 한 해였다. 일명 PIGS라 불리며 ‘남유럽의 문제아’란 조롱을 받았던 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이 올 한 해 국가 경제 운영에서 약진을 이뤄냈다. 최근 시사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한 해의 경제 성과를 바탕으로 국가별 순위를 매겼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국(코스타리카 제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스페인(1위), 그리스(3위), 이탈리아(5위), 포르투갈(16위)이 모두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010년대 유럽 경제 위기 때만 해도 막대한 부채로 디폴트까지 몰렸던데다 시에스타(낮잠)로 불린 특유의 문화로 인해 식량만 축내는 ‘돼지’로 치부됐던 국가들이 부활에 나서면서 이코노미스트는 “그들은 피에스타(축제)를 즐길 자격이 있다”고 평했다.
사실 PIGS의 부활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WEEKLY BIZ는 특히 그리스와 포르투갈에 주목하며 올 초부터 이 국가들의 성장을 집중 조명했다. 그렇다면 이 국가들은 어떤 동력을 가지고 환골탈태에 성공했을까. 올해 뜬 국가가 PIGS 4국이라면 산업·기업·인물·투자 수단 중에서는 어떤 것들이 올해 급부상했을까. WEEKLY BIZ가 2024년 다뤘던 주요 이슈들을 중심으로 올 한 해 경제를 돌아봤다.
◇1. PIGS 뜨고 日·英·獨·佛 지고
먼저 실업률 측면에서 그리스(전년 대비 0.6%포인트 감소)와 이탈리아(-1.4%포인트), 스페인(-0.7%포인트)은 모두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건강한 고용 지표를 자랑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0월까지의 실업률 추이를 계산한 이번 조사에서 PIGS 국가들의 노동시장이 지난해보다 활발하게 돌아갔다는 뜻이다. 포르투갈은 실업률이 0.2%포인트 오르긴 했지만, 지난해 이미 PIGS 국가 중 가장 낮은 실업률(6.5%)을 달성해 놓은 상태였다.
특히 포르투갈은 엄격한 재정 관리로 OECD 국가 가운데 몇 안 되는 재정 흑자(국내총생산<GDP> 대비 2.2%) 국가에 올랐다. 그리스도 GDP 대비 2.1%의 재정 흑자를 기록했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기반한 과잉 복지로 재정 적자에 빠졌던 국가들이 체질 개선에 성공한 것이다. 포퓰리즘 연구의 대가인 마누엘 푼케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 박사는 “포퓰리스트가 집권한 경제는 집권 후 2~3년까진 차이가 크지 않지만, 15년쯤 흐르면 포퓰리즘이 아닌 나라보다 1인당 GDP가 10% 정도 낮아지고, 국가 채무 비율은 10%포인트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반면 전통적인 경제 우등생이었던 독일(23위)·일본(25위)·프랑스(26위)·영국(31위)은 올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3분기까지의 GDP 성장률을 보면 독일(0.1%)과 일본(0.2%)은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이었다. 특히 이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 4국의 GDP 대비 재정 적자 폭은 1.3%에서 6.0% 수준이었다. 재정을 쏟아부어 유렵의 병자가 됐던 PIGS의 전철을 경제 강국들이 답습한 셈이다.
올해 경제 성적이 좋은 나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곳은 리투아니아(이코노미스트의 경제 성과 8위)다. 인구가 약 290만명에 불과한 중유럽 소국(小國) 리투아니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중단한다거나, 중국 눈치를 보지 않고 자국 내 대만대표부를 신설하는 등 강단 있는 국가로도 유명하지만, 실제 그 저력은 ‘레이저’ 등 원천 기술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0년대부터 레이저 기술을 개발해 현재 전 세계 80여 국에 레이저 관련 기술을 수출하고 있는 리투아니아는 올 한 해(11월까지) 자국 기업의 주식수익률만 10.7%에 달하고 경제성장률도 3.4%를 기록하는 등 약진을 이뤄냈다.
◇2. AI 대약진 속 ESG는 뒷전으로
올해의 국가별 경제 성적은 열등생 취급받던 국가들의 전세 역전 형국이었다면, 산업계에선 ‘새로운 스타’가 등장했다. 올해 산업계의 스타는 인공지능(AI)이었다. AI를 빼놓고는 산업계를 얘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파생 산업이 탄생했다. 단순한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AI를 넘어서서 올해는 오픈AI의 동영상 생성형 AI ‘소라(Sora)’가 출시되는 등 영상 제작에서 드로잉과 편곡 등에까지 AI의 쓰임새가 대폭 확대됐다. AI가 게임에도 활용돼 게이머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게임의 몰입감을 더하는 기술까지 발전하는 중이다. 이에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관련 AI 시장은 2030년까지 994억8000만달러(약 145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그랜드뷰리서치)이다.
AI를 능수능란하게 업무에 활용하는 AI 네이티브(원어민)가 늘면서 ‘AI 디바이드(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프레더릭 안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 교수는 “AI는 마치 운동 선수의 약물 복용(도핑)처럼 ‘지식 근로자를 위한 도핑’이 되고 있다”며 “AI는 인력에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가져와 AI 디바이드가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만 치료제나 인공육 등 실험실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힌 신기술도 올해 속속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당초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은 비만과 더불어 알츠하이머나 중독 치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동물 세포를 인공적으로 성장·증식시켜 만든 배양육은 이미 싱가포르에서 판매가 시작됐으며, 이스라엘에서도 판매를 승인해 도축 없는 식량 증식이 현실화하는 추세다.
반면 산업계를 새롭게 재편할 것으로 기대 받았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념은 올 들어 힘이 빠진 모습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2004년 5월 유엔글로벌콤팩트(UNGC)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라며 ESG란 개념을 제시한 지 20년이 되는 해였다. ESG에 대한 숭배가 퇴색한 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데 따른 반작용 성격이 컸다. 진보 환경 운동 진영이 탈화석을 정치 무기화한다거나, 사회적 책임을 우선시하고 흑인 우대 정책을 강요하면서 반발이 터져나온 것이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 직후 행정명령을 통해 퇴직연금(401K)의 ESG 투자를 영구적으로 막겠다고 했다.
◇3. 엔비디아 돌풍 속 반독점 규제도
산업계에서 AI의 발전이 두드러졌다면 엔비디아는 이런 AI 발달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은 기업이다. 엔비디아는 AI 학습 및 추론 반도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면서 올해 들어서만 주가가 180% 이상 오르기도 했다. 엔비디아는 특히 차세대 AI 반도체로 꼽히는 신제품 ‘블랙웰’을 내년부터 본격 출하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때문에 당분간 엔비디아의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이란 전망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월 실적발표회에서 “새로운 고지에 가장 먼저 도달하는 회사가 혁신적 수준의 AI를 도입할 수 있고,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고지를 향해 달려가 가장 먼저 도달하는 것이 (시장의) 리더십을 구축하는 방법”이라며 자사 제품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다만 AI 관련 기술을 일부 빅테크들이 독점하는 경향이 생기며 미 법무부나 유럽연합(EU)이 이에 대해 제동을 걸기도 했다. 구글·애플·마이크로소프트(MS)·메타(페이스북)·아마존 등 기업이 지난 1년 사이 모두 반독점 관련 조사를 받았으며, EU로부터는 최대 730억달러에 이르는 벌금이 매겨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기술 기업이 아닌 소비재 기업으로 눈을 돌리면 올해의 스타는 ‘아시아 위스키’였다. 일본의 산토리·닛카 위스키가 그렇고, 대만의 카발란이 그렇다. 올해는 일본 위스키가 탄생 100년을 맞은 해이며, 대만의 카발란도 세상의 빛을 본 지 20년째가 됐다. 일본 위스키는 탄생 100년 만에 ‘세계 5대 위스키 강국’ 반열에 올랐고, 카발란은 현재까지 각종 주류 대회에서 누적 907개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스코틀랜드만이 위스키의 유일한 생산지라는 편견을 깨고 세계 무대를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카발란의 모기업인 킹카 그룹 리위팅 대표는 WEEKLY BIZ 인터뷰에서 “(카발란 돌풍은) 한국 영화나 K팝 덕도 있었다”며 “‘BTS가 좋아하는 술’,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등장한 술’이란 소문에 카발란을 찾는 글로벌 팬이 늘었다”고 했다.
◇4. 당선 전부터 세계 뒤흔든 트럼프
2024년 올해의 인물로는 단연 트럼프가 꼽힌다. 이미 ‘트럼프의 미국’을 경험했던 세계는 그가 대통령에 재선이 되기 전부터 걱정스러운 분석을 내놓고 있었다. 트럼프가 특히 세계의 불안을 야기하는 것은 그가 공언하고 있는 고(高)관세 정책 때문이다. 트럼프는 집권 후 1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고 예고했는데, 이는 무역 상대국엔 관세 장벽으로, 미국 스스로에겐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해 랄프 오사 세계무역기구(WTO)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무역 분절화는 모든 국가에 해롭다”며 “WTO 연구 결과를 보면 무역 분절화는 최악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실질 소득이 5%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가 세계 경제와 미국 내수에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반면,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는 올해 엄청난 내수 증진을 끌어온 인물로 꼽힌다. 그가 지난 2년 동안 콘서트로 올린 티켓 수입만 20억7761만8725달러(약 3조원)에 이른다. 에라스 투어는 지난해 3월부터 21개월 동안 북미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진행됐으며, 누적 관객만 1016만8008명에 이른다. 블룸버그는 그를 일컬어 “(팝스타를 넘어) 현대 음악 산업 그 자체”라고 불렀다. 그가 끌어올린 음악 시장은 ‘스위프트 노믹스’란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올해 저물어간 인물로는 미 대선에서 패배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등이 꼽힌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로 따지면 세계 경제의 주춧돌 역할을 하던 베이비부머(1946~1964년생) 은퇴 러시의 충격파가 더 컸다. 베이비부머의 막내 격인 1964년생이 올해로 60세가 되면서 대부분의 베이비부머가 은퇴할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독일에서 경제 5현(賢)으로 불리며 독일 연방 정부의 경제 자문 역할을 하는 경제전문가위원회에 속한 마르틴 베르딩 보훔루르대 교수는 “베이비부머의 노동시장 이탈은, 이후 세대의 저출생 문제와 겹쳐 2060년까지 계속해서 성장 잠재력을 깎아 먹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이코노미스트의 올해의 국가별 경제 성과 발표에서 좋지 못한 성적을 낸 독일·일본 등은 제조업 중심의 국가이면서 베이비부머 은퇴로 인한 급작스러운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5. 비트코인 뜨고… 국장은 울상
자산 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당초 탈중앙화를 노린 대체 투자처였던 비트코인이 지난 5일 10만달러 돌파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우면서 주류 자산으로 도약했다는 평가다.
비트코인의 상승세를 이끈 것은 올해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과 ‘반감기’ 등 수요·공급 차원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했는데, 이는 비트코인이 제도권 상품의 투자 대상이 됐다는 의미다. 반감기는 비트코인의 신규 생산량이 4년 주기로 절반으로 줄어드는 현상을 말하는데 올해 4월 이 반감기가 도래하면서 비트코인의 추가 공급이 줄었고, 가격은 크게 올랐다. 가상 화폐 거래소 ‘쿠코인’의 얼리샤 카오 이사는 “비트코인 가격이 여섯 자리 영역(여섯 자리 숫자인 10만)에 진입하면서 비트코인을 글로벌 금융 시스템 내에서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는 ‘용감한 언더도그’로 보긴 어려워졌다”고 했다.
올해는 비트코인과 더불어 금 가격도 크게 뛰었다. 금 가격은 트럼프 당선 직후 불확실성이 해소된 효과로 일시적인 하락이 있었지만 최근 다시 트로이온스당 2800달러 선에 도달했다. 앨릭스 에브카리안 얼리전스골드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앞으로도 비트코인이 오랜 시간 검증받은 금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본다”며 “금 가격이 내년에는 300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고, 3~5년 이내 5000달러 선 돌파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전망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주요 자산이 상승하는 동안 한국 증시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국민 주식으로 불린 삼성전자의 주가가 5만원대로 하락했으며, 이 때문에 주가 부양을 위한 10조원어치 자사주 매입에 나서야만 했다. 여기에 이달 초 계엄 국면에 들어서면서 코스피가 장중 2400대까지 붕괴하는 등 주가 하락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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