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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0대 청년이 2018년 IT(정보기술) 기업이 모인 경기도 판교의 사무실 밀집 지역을 돌며 건물 관리인들을 설득하고 다녔다. 손에는 명함만 한 크기의 고깃집 10% 할인 쿠폰을 한 뭉큼 들었다. “이 건물 회사 직원들에게 이 쿠폰 좀 전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쁜 일이 아니고, 이 회사 분들이 오시면 저희가 10% 할인을 해 드린다는 프로모션이에요. 저희 가게가 지금 망하게 생겨서요...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서른네 살 이웅빈 ‘푸에르코’ 사장은 사업 초기에 발로 뛰며 손님을 한 명 씩 늘려갔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사업하다 어려워지신 부모님이 ‘한 번 삐끗하면 망하는 게 사업’이란 말씀을 많이 하셨던 기억이 많이 났다”고 했다. 스페인어로 돼지를 뜻하는 ‘푸에르코’는 연말 회식이 많은 요즘 더욱 붐비는 고깃집이다. 광화문·여의도·강남·판교 등 서울·경기도의 핵심 상업 지구에 있는 지점 열 곳은 거의 매일 손님으로 가득 찬다. 이달 초 판교점에서 만난 이 사장은 “최근 큰 화재가 나서 리모델링 끝에 다시 열었다. 이곳이 첫 매장인데 ‘개인이 하는 이름 없는 고깃집을 뭘 믿고 자리를 내주느냐’는 건물주가 많아 간신히 가게를 구해 지금까지 왔다”고 했다.
푸에르코가 여느 고깃집과 차별화하는 포인트는 크게 셋이다. 소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를 주력으로 하고, 와인·위스키 등은 모두 콜키지(주류를 반입할 때 받는 돈) 없이 가져다 먹어도 되고, 대부분 좌석이 개별 방이라는 점이다. 1인분에 5만원이 쉽게 넘는 한우 식당에 비하면 고기 가격이 저렴한 편(150g씩 돼지고기 다섯 부위가 나오는 ‘시그니처 세트’가 13만8000원)인 데다 술값을 아낄 수 있어 직장인에게 회식 장소로 특히 인기가 많다.
가게를 찾는 이들에게 호기심을 키우는 의외의 ‘장식물’도 있다. 식당 입구에 길게 늘어선 개업 축하 화분이다. 대기업 간부, 연예인, 유명 법조인 등 보낸 이들의 이름이 화려하다 보니 “이 가게 사장이 엄청난 ‘금수저(부잣집 자제)’라더라”, “조직폭력계의 큰손이다” 등의 소문까지 돌았다. 할리우드 최고 배우 톰 크루즈와 일본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까지 방문하면서 이런 소문은 더 돌았다. WEEKLY BIZ와 만난 이 사장은 이에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싶은 평범한 청년일 뿐”이라며 웃었다.
-평범한 청년이 이런 인맥은 어떻게 구축한 겁니까.
“화환 보낸 분 중에 푸에르코를 열기 전 알았던 분들은 단 한 분도 없습니다. 모두 손님으로 오셨다가 인연을 이어간 분들이에요. 한번 와서 관계를 맺은 손님이 다음에 오실 때 ‘나 오늘 간다’라는 식으로 연락을 주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제가 되도록 직접 방에 가서 고기를 구워 드리고 서비스를 챙겼습니다.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강남점에 있다가 광화문·여의도까지 이동하면서 5분이라도 꼭 직접 뵙고 인사드리려 했거든요. 요즘은 지점이 늘며 전만큼은 못 하고 있지만요.”
-톰 크루즈와 기시다 전 총리는 어떻게 왔습니까.
“알아서 예약하고 오신 겁니다. 사업하며 가장 보람찼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톰 크루즈는 지난해 여름이었죠. 광화문 매장에 있었는데 삼성점 점장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마감 시간을 좀 넘겨서 먹겠다는 팀이 있는데 괜찮겠냐. 무슨 영화 관계자들이라고 한다’고 하기에, 매출도 올릴 겸 그러라고 했죠. 무슨 영화냐고 하니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거예요. ‘혹시?’ 하는 마음으로 강남점에 갔는데 진짜 톰 크루즈가 나타났습니다. 너무 놀랐죠. 기시다 당시 총리는 지난 5월 오셨어요. 그때도 그냥 일본 대사관이라고만 해서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강아지’(위험물 탐지견)가 왔다 갔다 하고 하는 게 심상치 않더라고요. 그리고 총리가 방문하셨죠.”
-경영학과를 나와서 왜 식당을 하려고 했나요.(이 사장은 숭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때 부모님이 사업하다 실패하셔서 생활이 좀 어려웠습니다. 방 하나짜리 집에 온 가족이 모여 살아야 했죠. 그때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굳게 결심했고, 그러려면 사업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좀 잘된다는 고깃집에서 6개월씩 먼저 일을 해보았고, 그 돈을 모아 당시 살던 곳 부근인 분당 쪽에 작은 가게를 냈어요. 벌이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규모가 너무 작아서 매출이 잘 올라가지 않았어요. 이왕 외식 사업에 뛰어든 참에 서울에 있는 대형 고깃집처럼 키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가게 두 개를 판 권리금으로 첫 ‘푸에르코’를 판교에 냈습니다.”
-소고기보다 싼 돼지고기를 팔면서 ‘콜키지 프리’까지 하면 남는 게 있습니까.
“한우는 너무 비싸고, 돼지고기는 경쟁이 너무 심하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아이템을 연구하다가 돼지고기 중에 특이한 품종인 ‘이베리코(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에서 자라는 돼지의 종류)’를 주력으로 하게 됐습니다. 스테이크 같은 식감이 와인과 잘 어울리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와인과 함께 팔았더니 ‘와인 좀 가져와서 먹으면 안 될까요’라고 문의하는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돼지고기 팔아서 남는 것도 없는데…’라는 생각에 안 된다고 하다가, 요청이 자꾸 들어와서 ‘손해가 나봤자 얼마나 나겠나’라는 생각에 한번 실험적으로 콜키지 프리를 해보았습니다. 막상 했더니 손님이 늘어나면서 결국 원래 벌던 만큼 매상이 오르더군요. 때로 욕심을 버리면 돌파구가 보인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매출은 올라도 남는 돈(영업이익)이 줄지 않습니까.
“고깃집 영업이익은 높게는 30~40%까지도 나오고, 낮아도 20%는 잡는다고 들었습니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저희는 10%대입니다. 70% 정도는 와인·위스키를 가져와서 드시고, 방이 많다 보니 같은 공간에 좌석 수도 적은 편이거든요. 이게 손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제 입장에선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것이지만, 손님 입장에선 돼지고기 구워 먹으며 방에서 술 가져다 편하게 놀 수 있으니 그만큼 이득이잖아요. 그럼 다시 오실 거고요. 그게 오히려 매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에 사업을 시작했으면, 코로나 위기도 겪었을 텐데.
“사업은 어려워졌죠. 하지만 전화위복으로 삼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강남·역삼·여의도 등 좋은 자리에 공실(空室)이 났고, 임차료도 대폭 싸졌다는 소식이 들렸거든요. 대출을 끌어모아 강남과 역삼에 지점을 열어 사업을 빠르게 확장한 게 (코로나 때인) 2020년 말에서 2021년 초쯤이었습니다. 코로나를 계기로 지점 수를 하나하나 늘려, 지금은 열 개의 직영점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손님과 매출은 어느 정도입니까.
“하루 평균 3000명, 월평균 7만명 정도 손님이 오십니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와 비슷한 250억원 정도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익이 나면 관리자(점장·부점장)에겐 기본급 대비 매월 100%까지도 성과 보수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자랑이라면, 점장·부점장 중엔 아직 퇴사한 직원이 한 명도 없습니다.”
-가게를 더 늘릴 생각은 있습니까.
“열두 개 이상은 늘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직접 다니면서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거든요. 그런데 딱 하나, 해외에는 꼭 해보고 싶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에서 하는 사업이 이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면, 해외에서도 한번 인정받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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