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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독일 바이센하우스에서 열린 ‘프리스타일 체스’ 시범 경기 현장. 10년간 세계 챔피언 자리를 지킨 망누스 칼센(35)이 ‘킹’을 옮기자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상대 선수 알리레자 피로우자(22)의 심박수가 140bpm을 넘어 160bpm까지 치솟기 시작했다. 그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지만, 승리를 예감한 듯 심박수는 계속 치솟았다. 해설가는 “이 정도면 헬스장에서 사이클을 타는 것 아니냐”며 흥미를 북돋았다.
서양의 대표적 게임 체스가 새로운 룰로 무장하고, 마치 연예 프로그램 중계하듯 보는 재미를 끌어올려 체스의 새로운 전성시대를 열 준비에 나서고 있다. 다섯 개 대륙에서 열리는 그랜드 슬램 투어엔 경기마다 최고 100만달러(약 14억5000만원)의 상금이 걸렸다.
◇말 무작위 배치해 긴장감 올려
완전히 새로워진 체스 리그는 체스 세계 최강자 칼센과 독일의 투자자 얀 뷔트너가 힘을 합쳐 지난해 출범했다. 노르웨이 출신의 칼센은 2013년 세계 체스 챔피언에 등극, 2023년 스스로 이를 반납하기까지 10년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켜내 ‘체스의 왕’으로 꼽힌다.
이번에 시작되는 리그를 통해 체스 선수들이 겨룰 프리스타일 체스는 고전적인 체스와는 다른 점이 적잖다. 우선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말의 위치를 무작위로 배치한다. 기존 체스는 가로 여덟 칸, 세로 여덟 칸 총 64칸으로 이뤄진 정사각형 모양의 체스판 위에 각각 16개의 말을 정해진 위치에 놓도록 한다. 16개 말은 킹·퀸·비숍·나이트·룩·폰 등 여섯 종류인데, 이들 위치는 엄격히 정해져 있다. 하지만 프리스타일 체스에선 뒤쪽 두 줄 중에서 앞줄에 놓아지는 여덟 개의 폰을 제외하고, 맨 뒷줄에 있는 나머지 다섯 종류의 말을 무작위로 두도록 한다. 공식처럼 흘러가는 ‘정석 플레이’에서 벗어나 선수의 깊이 있고 독창적인 전략을 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칼센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프리스타일 룰은 기존의 룰보다 나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게임마다 말의 위치가 달라져 ‘새로운 판’을 접하는 선수들은 짜릿함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예능처럼 고백 인터뷰 중계까지
체스 경기 중계 방식도 연예 예능처럼 확 바꾼다. 흥미를 북돋기 위해 선수들에 심박수 측정기까지 채운다. 선수들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또 경기 중간 선수의 심경을 토로하는 ‘고백 인터뷰’도 도입했다. 별도의 공간에서 출연자의 솔직한 심경을 인터뷰하는 연출 방식인데, 예능 TV 프로그램에서 많이 사용된다. 선수의 개성과 인간적인 면을 보여 인지도를 높이고, 팬층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뷔트너는 “경기의 맥락이나 경기 뒷얘기, 선수들의 개인사 등을 (고백 인터뷰를 통해) 끌어내 방청객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칼센과 투자자들은 이 같은 새로운 룰과 중계 방식을 가미한 리그가 체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어올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F1이나 NBA처럼 수많은 팬들이 한 시즌 내내 관심을 갖도록 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 같은 시도가 곧바로 수익 창출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대중의 취향만 끌 수 있으면 추후 경기 중계 판권을 팔아 수익을 얻는다는 계산이다. 체스 닷컴(Chess.com)을 통한 온라인 중계 역시 새로운 시도로 꼽힌다.
◇’퀸스 갬빗’ 인기 타고
프리스타일 체스 그랜드 슬램 투어는 올해 2월부터 네 개 대륙에서 순차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다음 달에 독일 바이센하우스에서 첫 공식 대회가 열리며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인도 델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개최된다. 첫 대회에선 인도 출신의 2024년 세계 최연소 챔피언 구케시 도마라주(19)가 참가를 확정지으며 칼센과의 진검승부가 펼쳐질 예정이다.
이번 체스 투어는 넷플릭스 시리즈 ‘퀸스 갬빗’이 끌어올린 체스 인기를 더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에 방영됐던 넷플릭스 시리즈 퀸스 갬빗은 체스 영재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로, BBC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TV 시리즈 100선에도 선정됐을 정도로 흥행했다. FT는 “역사상 모든 체스 챔피언을 합쳐도 베스 하먼(주인공)이 체스에 기여한 것보다는 적을 것”이라 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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